공화당을 떠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표심, 속내는 복잡합니다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낸 젭 부시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표심을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공화당이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는 집단인 아시아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좀 더 노력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미였죠.
최근 발표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정치 성향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마음은 공화당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공화당 지지 세력이었던 집단마저 생각을 바꾸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등록된 아시아계 유권자를 기준으로 클린턴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는 4:1로 민주당의 압승이었습니다. 초당적 유권자 단체 APIAVote의 관계자는 트럼프가 고수하고 있는 반 이민자, 반 무슬림 기조가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의 표심입니다. 다수가 베트남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베트남계 이민자 집단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든든한 우군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등록된 유권자 기준 42%였던 공화당 지지자 비율은 8년만에 23%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무소속, 또는 당을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는 유권자는 2016년 기준 47%로 늘어났죠.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또한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비해 시리아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시리아 난민 수용 반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트럼프와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죠. 전쟁 때 난민, 포로로 미국에 건너온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어째서 비슷한 입장에 처한 사람들에게 야박한 것인지 얼핏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시리아 난민 문제에 있어 의견이 가장 양극화된 집단 역시 베트남계였습니다. 미국 출생의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시리아 난민을 환영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연구자들은 시리아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베트남계 미국인들은 시리아계 난민들이 위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은 이들과 구분되는 “착한” 난민이라고 여긴다고 말합니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온 베트남 이민자들에게 공화당은 공산주의에 보다 강경하게 반대하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정당으로 어필했습니다. 하지만 이민 2세대들은 지난 대선에 드러났듯 민주당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오바마케어와 같은 복지 정책에 찬성하면서도 “민주당 지지자”라는 딱지를 불편하게 여기는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 UC어바인 린다 보 교수의 설명입니다.
1985년 베트남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42세 엔지니어 스티븐 마이 씨는 공화당원이지만 언제나 공화당 후보에 표를 주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다가, 트럼프가 이라크 전쟁에서 전사한 무슬림 후마윤 칸의 가족과 설전을 벌인 이후 지지를 접었다고요. 주 예비군 소속인 마이 씨에게 참전용사의 가족을 공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트럼프가 절대 소수자와 난민의 편에 서지 않을 사람임을 확인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민 온 후 계속해서 공화당을 지지해온 그의 부모는 아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공화당 후보를 찍겠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NP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