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 모두가 정치적 우파는 아닙니다
2월 13일,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주도 랠리에서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투표권의 확대를 요구하는 집회였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연합그리스도교(United Church of Christ) 소속의 더그 롱 목사는 “예수님이 인종, 성별 간 평등에 반대하셨을리 없다”며 “때로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믿는 신이 정말 같은 신인지 의심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시위대는 주 의사당 앞까지 행진했고, 연사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집회 주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윌리엄 바버 목사는 “우리 주의 정치인들은 투표를 하는 것보다 총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쉬운 환경을 만들어 놨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런 그림은 흔히 우리가 상상하는 미국 기독교의 모습과 거리가 멉니다. 테드 크루즈처럼 ‘크리스천들을 공략하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대선에 출마한 정치인이 있을 정도로, 미국의 교회는 정치적 우파의 텃밭으로 여겨집니다. 한때 진보 성향이었던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레이건 정부 하에서 TV 출연으로 유명세를 탄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 아래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고, 이후 백인 개신교도는 물론이고 백인 가톨릭 신자들까지 상당수가 공화당 지지세력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단순히 종교가 유일한 동력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계급과 인종의 문제가 한 축을 담당했죠. 그러나 종교의 영향은 분명 변화의 원인이었습니다. 낙태나 동성애 같은 문제 외에,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종교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자립이란 구원의 필연적 결과이고, 부는 성스러운 축복이며, 큰 정부는 반대해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개개인의 의무지만 정부가 나서서 간섭할 일은 아니라는 식이죠.
하지만 모든 기독교 공동체가 이런 것은 아닙니다. 미국 기독교인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어 있는 이유는 미디어 탓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언론계 종사자들이 대부분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라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현실에는 종교적인 관점에서 멕시코 국경에 담을 쌓는 일이나 건강 보험의 혜택을 축소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과 부합하는지를 의심하는 기독교인들도 분명 있다는 겁니다. 윌리엄 바버 목사와 같은 이들입니다. 바버 목사는 “종교적 우파(religious right)”가 “종교적으로 옳은 것(religiously right)”이 아니라며, 교육, 의료 복지의 확장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주의자”가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며, 예수도 급진주의자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에는 동성애를 비난하는 구절보다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구절이 훨씬 많은데 가난한 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성경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미국 현대사에서 흑인 교회가 민권 운동의 근거지가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올리버 앨런(Oliver Allen)이 세운 진보적 오순절파(Progressive Pentacoastal)의 교인 가운데는 동성애자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많습니다. 예배 중에는 알콜 중독과 가난을 극복하고 학교를 다니고 사업을 시작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고, 성적 관용과 에이즈 문제도 설교의 단골 주제입니다. 올리버 앨런은 말합니다.
“(확장된) 민권이 흑인에게만 적용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더 많은 사람들을 해방시키지 못한다면 교회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