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지 “더 선(The Sun)”이 발표한 여론조사가 비판받는 이유
대중지 <더 선(The Sun)>의 월요일자 1면에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큼지막하게 실렸습니다.
위의 갈무리 화면에서 알 수 있듯 제목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영국에 사는 무슬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지하드 전사에 공감”
여론조사는 무슬림식 성(姓)을 가진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 식으로 진행됐으며, 파리 테러 공격이 일어난 뒤 가능한 한 빨리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한정된 예산 안에서 추진됐습니다.
<더 선>은 서베이션(Survation)이라는 업체에게 조사를 맡겼습니다. 서베이션은 이름과 관련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에 사는 무슬림 응답자를 가려냈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여론조사 기관은 이 방식으로는 영국에 사는 무슬림을 통계적으로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추려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어쨌든 응답자의 19.5%가 “영국을 떠나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 합류하는 젊은 무슬림들에게 다분히(a lot) 혹은 어느 정도(some) 공감한다”고 답했습니다.
서베이션 측은 <가디언>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영국인 4,200만 명 데이터베이스 가운데 “무슬림식 성” 1,500개를 쓰는 사람을 먼저 추렸고, 이 가운데 여론조사에 응하겠냐는 의사를 밝힌 이들에게는 무슬림인지 여부를 밝혀달라고 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통 <더 선>의 의뢰를 받고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업체는 유고브(YouGov)입니다. 하지만 유고브 측은 이번 조사의 경우 <더 선>이 제시한 기한 내에 주어진 예산으로는 영국에 사는 무슬림의 의견을 엄밀하게 모으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이 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영국 내 무슬림 전체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조사를 하려면, 특히 이번 조사에서 물은 질문처럼 대단히 예민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경우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자연히 비용도 많이 들고요. 신문사의 주어진 예산으로는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영국에 사는 무슬림 인구 270만 명을 제대로 대표하려면 수없이 많은 전화를 돌리고 또 돌려야 하는, 비용이 꽤 많이 드는 일이라고 다른 업체들도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더 선>은 너무 늦지 않게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어떻게든 여론조사의 모양새를 갖춘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업체를 찾았고, 서베이션이 선택된 겁니다.
서베이션의 조사에 응답한 이들이 영국 내 무슬림을 대표할 수 있는 표본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이들이 스스로 무슬림이라고 밝힌 것 외에는 사회경제적 배경, 인구통계라 부를 만한 정보는 전혀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보수당의 압승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이래 여론조사의 신뢰성과 타당성은 이미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라있는 상태였습니다. 전체 인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표본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 처참한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사에 쓰인 질문 자체의 표현이 지나치게 애매하고 원래 의도와 달리 읽힐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해당 표현은 “나는 영국을 떠나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 합류하는 젊은 무슬림들에게 다분히 공감한다(I have a lot of sympathy with young Muslims who leave the UK to join fighters in Syria).”로 전체 응답자의 5%가 이 문장을 택했고, 14.5%는 다분히 대신 어느 정도(some) 공감한다는 문장을 택했습니다. 이 사실을 묶어 <더 선>은 둘을 합한 19.5%가 지하드 전사에 공감하고 있다고 제목을 달았습니다.
먼저 공감 혹은 동조의 의미로 읽힐 수 있는 단어 “sympathy”의 선택부터 적절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이 단어가 애매모호해서 오해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죠. 또한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fighters in Syria)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모리(Ipsos Mori)의 최고경영자 벤 페이지는 말했습니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한 보도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다. 응답자의 1/5이 이슬람국가(Isis)를 추종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는데, 실제 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받은 질문을 보면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 누군지부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해 테러단체 이슬람국가와 싸우고 있는 영국 군인도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이고, 아사드 정권에 맞서싸우며 이슬람국가와도 적대적 관계에 있는 무슬림들도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대체 누구의 어떤 취지에 공감하는 건지 질문 자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스카이뉴스(Sky News)>의 의뢰를 받아 마찬가지로 서베이션이 진행한 비슷한 여론조사 결과는 28%의 무슬림이 영국을 떠나 시리아로 가는 젊은 무슬림들에게 공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무슬림이 아닌 영국 국민도 조사에 참여했는데, 이들 사이에서 공감한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14%였습니다.
이번에 <더 선>의 조사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앞서 <스카이뉴스> 여론조사에도 참여했던 이들입니다. 이들은 다음 번에도 여론조사에 응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더 선> 대변인은 논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파리 테러 이후 진행한 우리의 여론조사 대부분은 이슬람국가(IS, Isis)에 대한 무슬림들의 태도를 정확하게 묻고 의견을 취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이들이라고 지칭한 단체가 누구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답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습니다. 일부 좌파 진영에서 이번 여론조사가 아주 ‘나쁜’ 조사라고 폄하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나타난 지하드 전사에게 공감한다는 무슬림의 비율은 지난 1월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 이후 BBC와 스카이뉴스가 진행한 조사 결과 때보다 오히려 낮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Guard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