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를 추모하며: 삶의 교차점에 빛을 비추다 (2)
자신에게 던지는 스스럼없는 유머로 가득하면서도, 점을 찍어 그린 듯 생생하고 유연한 문체 덕분에 색스 박사가 돌이켜보는 그의 과거는 그가 환자들에 대해 쓰는 것만큼이나 솔직하고 탐색적일 뿐 아니라, 그의 열정과 통찰로 가득한 (의사이자 작가로서의) 이해심이 실은 어린 시절에 느낀 두려움과 방황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려줍니다. 소년 시절 전쟁 중인 런던에서 탈출했던 기억이며 보딩 스쿨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한 충격에 대해서도 밝힙니다. 이후에도 줄곧 “유대감, 소속감, 신뢰감”으로 문제를 겪어야 했다고 색스 박사는 적고 있습니다.
색스 박사는 또한 조현병을 앓았던 형 마이클과의 무시무시한 추억, 형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동시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에 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과학은 규율과 논리로서 어린 올리버 색스에게 형의 광기에서 달아날 피난처를 제공했고, 의학은 가업을 잇는 동시에 (색스 박사의 아버지는 일반의였고 어머니는 외과 의사였습니다) 마이클이 겪었던 뇌 질환을 더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색스 박사가 한때 그 자신을 “열정에 몸을 맡겨버리는” 사람으로 묘사했던 것처럼, 그의 책은 그의 “격렬한 열의”와 끝없는 호기심으로 맥박칩니다. 고사리와 연체동물과 해파리, 화산과 주기율표처럼 자연현상이 가져다주는 경이로움에 반하고, 수영과 화학, 사진, 그리고 그 무엇보다 글에 열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색스 박사는 열네 살부터 일기를 썼습니다. 수줍음 많은 소년에게는 글이야말로 세상과 자신을 잇는 동시에 생각을 정돈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의 저서와 에세이를 통해, 창조적인 유기체로서 살아간다는 기쁨과 과학을 향한 애정으로써 독자와 소통하는 동안에도, 생애에 걸친 글 쓰는 버릇은 수천 권이 넘는 일기가 되어 쌓였습니다.
“인생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살아가는 걸 즐기며, 색스 박사는 (“맙소사, 당시 나는 일흔일곱이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도 작가인 빌 헤이즈와 사랑에 빠져, “습관으로서의 고독”, 말하자면 부엌에 서서 정어리 통조림을 따거나 시리얼로 때우던 몇십 년 치 식사를 떨쳐버리기도 합니다.
지난 2월 색스 박사는 <뉴욕타임스> 오피니언 란에 아직 치료법이 알려지지 않은 암에 걸려 몇 달 남짓밖에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두려움이 없는 척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지배하는 심정은 고마움에 가깝습니다. 나는 사랑했고 사랑받았습니다. 많이 받았고 얼마간은 되돌려 주었습니다. 읽었고 여행했고 생각했으며 글을 썼습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어나갔고, 작가와 독자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나는, 느끼는 존재이자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왔으며 이는, 그 자체로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습니다.” 그의 환자들은 이제 현명하고 자비로운 의사를 잃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인간이라는 조건이 낳는 상실과 위안과 기적에 빛을 비춘, 위대한 재능과 심성을 지녔던 작가를 잃었습니다. (뉴욕타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