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격노한 트럼프 ‘금요일 밤의 학살’… “자비 없는 복수”의 전말
2025년 4월 22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뉴스페퍼민트가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함께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4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막스 베버는 저서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국가를 “물리적 강제력 혹은 폭력을 독점하는 정치 결사체”로 정의했습니다. 오늘날 국가는 대부분 폭력을 독점하는데, “강제력을 사용할 권리의 유일한 원천이 국가”가 되려면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보통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군대와 경찰, 사법 기관 등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 기관이나 정부 조직은 법과 규범, 관습의 제약을 받습니다. 아무리 공권력이라고 해도 무한정 허락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입니다. 군을 지휘하고 명령을 내리는 궁극적인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군대는 계급과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삼는 조직이지만, 동시에 군이 궁극적으로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군 통수권자가 아닌) 국가와 그 나라의 헌법입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바탕인 헌법을 준수하는 한 군 통수권자의 명령을 따르는 게 곧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되지만, 대통령이 헌법을 무시하고 어기거나 헌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면 군은 딜레마에 빠집니다.

첫 번째 임기 마지막 해에 국방장관,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장성들과 격한 마찰을 빚었던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들어 드디어 군을 향해서도 칼을 빼 들었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국방부 장관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던 피트 헥세스를 국방부 장관에 앉힌 데 이어 군 장성도 ‘트럼프식 인사’를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시작은 지난달 21일 “금요일 밤의 학살”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

미군 합참의장(CJCS,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은 미군에서 가장 높은 자리입니다. 물론 군 통수권자는 대통령이고, 행정부에 군을 통솔하는 국방장관이 있으며, 실제 군의 지휘 체계상 직접 명령을 내리는 건 각 군 참모총장과 전쟁사령부 사령관이지만, 합참의장은 군과 행정부의 다리 역할을 하며 대통령에게 군의 전략을 직접 조언하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습니다. 별 4개인 대장 중에도 가장 높은 계급으로 간주하는 합참의장 자리는 파격 인사가 나기 어렵습니다. 내규에 따라 합참의장 후보는 육, 해, 공 참모총장이나 해병대 사령관, 또는 4성 장군인 전쟁사령부 사령관으로 한정됩니다.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달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군 고위 장성 6명을 해고했습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느닷없는 대거 직위 해제였으며, 트럼프의 많은 인사 조처가 그렇듯 구체적인 해임 사유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해고된 장성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바로 찰스 Q. 브라운 주니어 합참의장이었습니다. (이름과 중간 이름의 약자를 따 통칭 “CQ 브라운”)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3월, 당시 공군 태평양 사령관이던 CQ 브라운 중장을 대장으로 승진시키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이후 6월, 상원의 승인을 거쳐 8월에 공군참모총장이 됐죠. 이어 2023년, 바이든 대통령은 신임 미군 합참의장으로 CQ 브라운 대장을 임명했습니다. 흑인 남성 최초로 공군참모총장에 오른 브라운 총장은 역시 흑인 남성 최초로 미군 합참의장이 됐습니다. 당시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남성 국방장관이었으므로, 국방장관과 군 합참의장이 둘 다 흑인인 것도 최초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CQ 브라운을 합참의장으로 임명할 수 있던 건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브라운을 합참의장 후보(인 공군참모총장으)로 승진해 줬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금요일 밤의 학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5년 전 본인의 인사를 결과적으로 뒤집었습니다. 공군참모총장 후보를 백악관 집무실로 불러 지명하는 행사를 열면서까지 CQ 브라운의 업적을 치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4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합참의장에게 ‘함량 미달’이란 낙인을 찍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해고 사실을 짧게 통보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직무를 수행할 역량이나 자질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트럼프가 대통령 본인에게 충성하지 않는 군 장성들을 골라 해고해 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CQ 브라운의 경우 공군참모총장으로 지명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거라고 모든 언론이 지적합니다. 백인 경찰의 과도한 폭력적 업무 집행에 무기도 소지하지 않던 흑인 민간인이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사망하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구조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가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는데, 이때 공군참모총장 지명자 신분이던 CQ 브라운은 5분 남짓한 분량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씨 사망 사건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건 피하면서도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보이지 않는, 때로는 노골적이던 차별과 부조리를 담담하게 지적한, 울림이 무척 컸던 메시지였습니다.

언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이 당시 공군참모총장으로서 메시지를 낸 것보다도 군대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막는 당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 동조하는 모든 군 장성에게 격노했다고 분석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기도 했지만, 11월 선거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시위가 세를 불릴수록 자신의 재선 가도에 불리하다고 여긴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현장에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를 제압하고 질서를 유지하려 했는데, (자신이 임명한)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결사적으로 여기에 반대하자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자비 없는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애스퍼, 밀리는 이미 해고돼 없지만,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고 백악관에 와서 보니 당시에 조지 플로이드 씨의 사망에 대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했던 군 장성이 합참의장이 돼 있으니, 트럼프로서는 CQ 브라운이 당연히 군 내에서는 ‘해고 1순위’였을 겁니다.

전문 번역: “미국을 러시아로 만들자?… 트럼프의 군 법무관 해임이 시사하는 것”

CQ 브라운 합참의장과 함께 리사 프란체티 여성 최초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군 법무관들까지 대거 해임됐습니다. 헥세스 국방장관이 오랫동안 문제 삼아 온 ‘DEI 인사 되돌리기’를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고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으로 정부 요직을 채울 것이며, 군도 예외가 아님을 선포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 통수권자를 국가로 동일시할 수 있을지를 두고는 논쟁이 불가피하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내가 곧 국가이므로, 군은 통수권자인 내게 충성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기선 제압에 나선 셈입니다.

“금요일 밤의 학살”이 정당했는지를 두고는 한동안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법적, 절차적으로는 문제 될 게 없지만, 의회는 청문회를 열어 정부에 해임 사유를 따져 물을 수 있으며, 상원은 후임자 임명을 미루거나 인준하지 않는 식으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 의원 중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운털 박힐” 각오를 하는 사람이 몇 명은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CQ 브라운의 후임 합참의장으로 지명한 댄 케인 전 공군 장교에 관해 살펴보면, 트럼프가 원하는 인사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케인은 CQ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공군 전투기 조종사 출신입니다. 다만 브라운 의장과 달리 공군 중장으로 퇴역한 뒤 군수 업체 및 투자 회사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민간인 신분입니다. 앞서 합참의장에 오를 수 있는 ‘승진 대상’이 정해져 있다고 했는데, 내규를 어기고 이미 퇴역 장성인 케인을 합참의장으로 ‘특진’하려면 마찬가지로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트럼프는 또 예전부터 케인 장군을 좋아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는데, 케인 본인은 부인했지만, “이 군인이 나더러 나를 정말 좋아한다, 각하를 위해서라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말하더니, 갑자기 내 앞에서 마가 모자를 쓰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군인 신분으로 마가 모자를 쓸 정도로 노골적인 정견을 드러내는 건 군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트럼프는 어쨌든 자기한테 충성하는 군인이 한없이 예뻐 보였던 겁니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후보라도 트럼프는 선거를 앞둔 경선 단계에서 ‘내 눈 밖에 나면 재선 가도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무기를 앞세워 공화당 의원들을 단속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케인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케인은 퇴역한 뒤 올해 초부터 트럼프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동생인 조슈아 쿠쉬너가 파트너로 있는 투자회사 스라이브 캐피털에 고문으로 있습니다. 쿠쉬너가 1기 때와는 달리 2기 행정부에서는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지만, 규모가 큰 방위산업을 둘러싸고 합참의장이 이해 충돌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논란이 일든 말든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곁에 두고, 자기 뜻을 거역한 참모는 철저히 숙청하는 정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같은 논리를 이어가면, 군대도 국가가 아니라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첫 번째 임기 때 미군을 미국 국내 문제에 투입할 수 없다고 완강하게 반대하던 국방장관이나 군복을 입고 대통령과 함께 사진에 찍혀 선거 포스터에 본의 아니게 동원될 수 있는 걸 철저히 금기시하는 만큼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합참의장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던 트럼프입니다. 트럼프에게 충성은 인사를 검증하는 여러 요소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가 노릴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는 또 있습니다. 정부 예산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선거 중에 약속한 대규모 감세 정책을 시행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 미국의 국방 예산은 정부 지출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단연 큰 분야 중 하나입니다. 어떤 이유를 달든 예산을 절감하는 동시에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마저 군대에서 떠나게 할 수 있다면, 트럼프로서는 일석이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군의 대비 태세가 지장을 받고 전력이 약해지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런 문제는 이번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헌법이 아니라 군 통수권자 개인에 충성하는 민병대에 가까워진다면, 이는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 관례, 규범은 말할 것도 없고, 법까지 우회하고 무력화하며 자기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에 용인된 물리력과 폭력을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조직이자, 규범과 법이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군대의 인사에 있어서도 자기 뜻을 관철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