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것” 미국 대선판에 등장한 문건… 정작 묻히고 있는 건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20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된 만큼 프로젝트 2025의 내용이 얼마나 정책에 반영되는지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보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지난달 말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 위 연단에는 계속해서 정치인이 올라왔습니다. 물론 가끔 가수들의 축하 공연이 있었고, 일부 순서는 연예인이 사회를 보며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지만, 주요 연설 시간을 배정받은 연사는 거의 다 정치인이었고, 후보 추대 등 공식 절차를 설명하는 일은 당직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전당대회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 꽤 주목도 높은 시간대에 민주당 전당대회 조직위는 콩트를 하나 끼워 넣습니다. 코미디언 키넌 톰슨이 커다란 책을 한 권 들고나와서는 “이 책에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이 어떻게 될지 다 쓰여 있다”고 소개합니다. 마치 묵시록 같은 예언서를 대하듯 비장한 표정을 지은 톰슨은 “세상에 벌레랑 민주주의를 동시에 죽일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을 거”라고 농담을 던집니다. 사실 원본은 웹사이트에 가면 볼 수 있는데, 분량이 방대해 실제로 다 인쇄하면 꽤 두꺼운 책 한 권이 되긴 할 겁니다.
7분가량 진행된 콩트에서 톰슨은 미리 섭외한 유권자들과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하나같이 프로젝트 2025대로 정책을 펴면 타격을 받을 사람들이었습니다. 톰슨은 프로젝트 2025는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피폐하게 만들 거라고 경고하고 무대를 떠났습니다.
프로젝트 2025가 무엇인지 살펴보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프로젝트 2025는 트럼프 캠프가 내놓은 정식 공약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트럼프도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나는 프로젝트 2025를 읽어본 적도 없다. 어떻게든 나랑 엮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다. 그래서 더욱 일부러 펴보지도 않았다”라고 밝혔습니다. TV 토론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고요.
과연 프로젝트 2025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스티븐 래트너가 프로젝트 2025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여덟 개 분야에서 사례를 들며 프로젝트 2025가 구상하는 정책이 미국인에게 미칠 영향을 분석한 글입니다. 먼저 칼럼을 번역했습니다.
전문 번역: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렇게 뒤집어진다? ‘프로젝트 2025’가 뭐길래
해리스와 트럼프의 TV 토론 하루 전에 올린 칼럼에서 래트너도 우선 트럼프가 프로젝트 2025와 자신은 무관하다며 거듭 선을 긋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는 점부터 언급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트럼프의 이 주장은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며, 거리를 두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표현까지 씁니다. 트럼프가 인터뷰에서 해온 말을 좀 더 자세히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프로젝트 2025는) 읽어보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모른다, 사람들이 말은 많이 하던데 내 생각이랑 같은 내용도 있고, 나라면 입안하지 않을 정책도 있을 거다, 아무튼 읽어보지 않았다.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그린 청사진인 만큼 트럼프와 결이 통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겁니다. 즉, 프로젝트 2025에 적힌 내용이 트럼프가 재선될 경우 곧 트럼프 2기 정책의 근간이 될 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더라도 이 중에 실제로 공화당이 법을 제정해 실행에 옮기려 할 계획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2025의 저자 대부분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이다, 첫 번째 임기 때도 헤리티지 재단이 앞서 발행했던 정책 권고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는 지적에도 트럼프는 계속해서 발을 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법을 만드는 권한은 의회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이 됐을 때 보수 진영은 어떤 자료와 근거를 참고해 법을 만들까요? “바이든 행정부의 실정을 바로잡기 위해” 누구에게 자문할까요? 프로젝트 2025는 유력한 참고 자료가 될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고, 어느 부분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 없는 트럼프는 그때 가서 이 정책은 내가 바라던 것과 일치한다며 의회에서 통과된 법에 서명하면 그만입니다.
공약 분석, 정책 뉴스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
프로젝트 2025에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한 마가(MAGA) 운동보다 전통적인 보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정책이 많습니다. 정부의 규제와 개입은 최소화하고, 많은 것을 시장에 맡기기 위해 세금은 대폭 줄이고, 공교육에 투자하던 보조금이나 저소득층 의료보험인 메디케이드 등 각종 사회보장 프로그램도 줄입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폐지하며, 친환경 에너지 부문에 지급하던 지원금도 삭감합니다. 또 여성이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제약하기 위해 먹는 임신중절약의 승인 심사도 다시 하게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민주당과 진보 진영이 극단적인 정책만 골라내 부각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하나같이 법이 제정되면 적잖은 여파가 미칠 수 있는 사안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우려스러운 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은 왜 선거 뉴스에 생각보다 자주 등장하지 않는 걸까요? 물론 유권자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 각자 다르고, 그에 관해 어떤 반응을 보인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꾸준히 뉴스에 나옵니다. 하지만 정책 자체를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고, 정책이 가져올 변화와 여파를 따져보는 기사는 많지 않습니다. (래트너도 그래서 많은 그래프와 함께 정책을 분석하는 칼럼을 썼을 테고, 제가 이 칼럼을 번역해 소개한 이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선거가 다가올수록 후보의 언행에서 드러나는 자질, 성정에 관한 기사나 그런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호감을 느끼는지 아닌지를 조사한 결과들이 더 많이 눈에 띕니다. 특히 경합주 선거 결과가 승패를 좌우하는 미국 대선에서 경합주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쉽게 ‘네거티브 선거’가 됩니다. 정책은 그래서 뭐가 나쁜 건지 유권자들에게 피부에 와 닿게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상대편 후보의 실언이나 기행, 극단적인 발언을 지적하며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건 쉽습니다.
또한, 미국은 워낙 땅도 넓고 유권자도 다양하다 보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을 내기란 불가능합니다. 인종, 성별, 성 정체성, 출신 민족, 종교는 물론이고 학력과 경제적 계층까지 저마다 다른 유권자들에게 각각 맞춤형 정책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제 유세에 모인 노동자들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 오늘 후원의 밤 행사에 모인 기업인들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젊은 세대 여성 유권자를 염두에 두고 했던 주장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을 만날 때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각 후보에 대한 꼼꼼한 분석 없이 몇 가지 표면적인 인상에 좌우돼 대통령 선거에 투표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민주 시민의 행동인가 근원적인 의문이 들다가도, 저만 해도 과연 정책을 꼼꼼히 따져보고 투표한 적이 몇 번이나 있나 돌이켜보면, 떳떳하게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정보가 많이 쌓이면 진실에 가까워질까?
왜 처음에는 누구나 ‘정책 선거’를 부르짖다가 열기가 고조되면 슬그머니 ‘인물 선거’나 ‘네거티브 선거’로 국면이 흘러가는지 생각하다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인터뷰와 칼럼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와 “데우스”로 잘 알려진 인물이죠. 이번에 이야기와 정보망(information network)이 어떻게 인간을 지금의 위치에 올려놓았으며, 동시에 인공지능이 정보망을 장악하게 될 때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을지 경고한 새 책 “넥서스”를 펴낸 하라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합니다.
정보가 많이 쌓이면 쌓일수록 진실에 가까워지고, 진실을 많이 습득하면 더 지혜로워지리라는 생각은 우리가 쉽게 하는 흔한 착각 중 하나다. 단순한 사실을 나열한다고 꼭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는 데는 상당한 품이 들기 마련이다. 훨씬 수고를 덜 들이면서 사실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고 꾸며낸 다음 그걸 사실로 치부하는 거다. 진실을 몰라서 직접 피해를 본다면 이런 허구의 이야기가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피해가 금방 눈에 띄는 경우는 드물다. 중요하지 않은 건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겨도 되는 상황에선 머리 아프게 복잡한 진실을 파악하려고 애쓰느니,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편이 낫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주장이 실체적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보다 그 주장을 하는 사람의 저의를 파악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세상 모든 일이 권력 투쟁의 연장이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에게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화자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 심지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구분하는 일입니다. 이 논리를 현재 양극화된 미국 정치에서 한 달 반 남은 선거에 적용해 보면, 해리스와 트럼프가 왜 지난 TV 토론에서 정책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동문서답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훌륭한 정책이라도 복잡한 사실관계를 들어가며 설명해 유권자를 이해시키는 건 매우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흠결을 들춰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unpresidential)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엔 훨씬 더 좋은 전략입니다.
두 후보 모두 실제로 시종일관 그러려고 노력했습니다. 해리스가 트럼프보다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결국, 자기 공약을 잘 설명해서가 아니라,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트럼프보다) 즉답을 피하며 화살을 슬쩍 트럼프에게 잘 돌렸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트럼프는 “내가 완승했다”고 자평했지만,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수많은 밈으로 박제된 상황은 남은 선거 기간 트럼프와 공화당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7천만 명 가까운 사람이 지난 TV 토론을 생중계로 봤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수많은 정보와 사실이 제공됐지만, 토론 이후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두 후보의 지지율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미 투표할 사람들은 대부분 마음을 정했고, 부동층 유권자는 실제로 거의 없다는 방증일 수 있습니다. 또는 아무리 새로운 정보가 주어져도 각 화자(해리스와 트럼프)를 향해 정한 마음을 바꾸지는 못하고, 그래서 사실보다 화자가 저 말을 하는 저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실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누가 뭐래도 서민들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사람’ 혹은 ‘해리스는 평생을 피해자 편에서 싸워 온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에게 토론은 어쩌면 이미 답이 정해진 요식행위였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정책 선거’는 요원
다소 냉소적인 전망이지만, 이번 미국 대선도 정책 선거는 요원해 보입니다. 심지어 정책 선거와 가장 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 더 안타깝습니다. 정치적 폭력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경쟁의 룰을 불신하고 등한시하며,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모두에게 위협이라는 수사, 그래서 상대방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수사가 난무합니다.
선거에서 지더라도 안위를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데, 점점 더 그런 상황에서 멀어지고 있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스포츠에 가까워야 하는 선거가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면 끝장”인 선거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위협입니다. 지지 않으려고 뭐든지 할 테니까요. 2021년 1월 6일에 일어난 일이 맛보기로 보일 만큼 더 큰 폭력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어 더 걱정입니다.
그렇더라도 해리스 캠프는 프로젝트 2025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정책 선거에도 최선을 다해 임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2025의 문제만 부각하지 말고, 그래서 해리스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도 함께 보여줘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네거티브’ 없이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겠지만, ‘네거티브’가 선거 전략의 시작과 끝이어선 안 됩니다. 트럼프 캠프와 정말로 다른 길을 가고 싶다면, 쉬운 길만 골라 가지 말고 어려운 길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