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그렇게만 할 거면… 올림픽 왜 하니?” 배제와 포용, 답은 정해져 있다
2024년 8월 22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6월 2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 파리 올림픽에서 실제로 XY 염색체를 지닌 복싱 선수 이마네 칼리프(알제리)와 린위팅(대만)의 여성 종목 출전이 논란을 낳기도 했습니다. 이에 관해 언론에도 많은 기사가 소개됐습니다.

연합뉴스: IOC, XY염색체 여자 복싱선수 논란에 “여권 기준으로 성별 결정”

BBC 코리아: 복싱 선수 ‘XY 염색체’ 성별 논란…과학계의 의견은?


세상에는 둘로 나눌 수 있는 게 많습니다. 우리/남. 동양/서양. 위/아래. 안/밖. 전쟁/평화. 이해/오해. 관심/무관심.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나누는 기준이라는 게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둘 다에 속하거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죠. 관심이 가는 대상과 관심 없는 대상을 다 합쳐도 우리가 아예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을 겁니다. 세상에 내가 이해하는 것과 오해(잘못 이해)하는 것을 다 합쳐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르는 것이 더 많을 테고요.

사람의 마음 상태나 지식은 개인의 그릇에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우리가 객관적인 상태라고 여기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전쟁과 평화는 분명히 나뉘나요? 선전포고의 유무, 총격전이나 포격전의 유무, 유혈 사태의 유무나 규모에 따라 기준을 세우기 나름일 겁니다. 그러나 어떤 기준을 세워도 애매한 상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하마스)이 전쟁 중이라는 사실에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지난해 10월 7일 테러 공격 전의 상황은 전쟁과 평화 중 어디에 속할까요? 러시아는 2014년에 크름반도의 우크라이나 땅을 강제로 병합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진행했는데, 그 이후 2022년 우크라이나 국경을 전격적으로 넘기 전까지의 8년은 전쟁과 평화 중 어디에 속할까요? 명확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물리적인 경계가 명확할 것 같은 위아래, 안팎의 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계선에 속하는 경우도 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것도, 우리와 남을 나누는 것도 따져볼수록 느슨한 경계일 뿐입니다.

남자와 여자. 혹은 남성과 여성. 성별(性別)은 어떨까요? 주변을 둘러봐도 세상은 남자 아니면 여자로 나뉘니, 세상 모든 사람을 둘 중 하나에 넣을 수 있는 흔치 않은, 아주 깔끔한 기준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캐스터 세메냐라는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꼭 스포츠팬이 아니라도 세메냐의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2010년대 “여자 육상 중거리” 종목에서 적수가 없던 선수이자, 이른바 “남자가 여자로 위장해 여자 대회에 참가, 우승을 차지했다”는 식의 “성별 논란”이 끊이지 않은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199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세메냐는 주종목인 800m에서 세계선수권과 두 차례 올림픽(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을 연달아 제패했습니다.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세메냐는 2위로 레이스를 마쳤는데, 당시 우승을 차지한 러시아의 마리아 사비노바가 금지 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나 메달이 박탈되면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016년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es, 구 IAAF)이 이른바 여자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특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한 뒤 대회 참가가 거절되거나 참가한 대회의 성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맹은 “공정한 대회”를 위해 경기력을 좌우하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선수는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줄이는 약을 먹어서라도 기준을 충족해야 참가 자격을 주는 게 맞다고 주장합니다. 반대로 세메냐는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이랬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연맹의 규정이 오히려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와 경기력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억지로 호르몬을 주입하거나 약물을 통해 호르몬을 생성해 냈다가 적발된 거라면 벌을 받겠지만, 자신은 지금의 몸으로 태어났고 더 빨리, 잘 뛰려고 훈련을 통해 근육을 강화한 것뿐인데 마치 대단한 반칙을 범한 것처럼 취급받는다고 항변했습니다.

캐스터 세메냐는 여자로 태어났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태어났을 때 부모나 의사, 간호사가 갓난아기의 생식기를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는데, 이때 성별을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정해준다는 의미에서 지정성별(assigned sex at birth)이라고 합니다. 즉, 여자로 태어났다는 건 지정성별이 여성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세메냐는 5αR2D(5α-Reductase 2 deficiency)라는 특질을 보입니다. 5αR2D는 5α 환원 효소 2 결핍증으로, 환원 효소 2형(5αR2)을 코딩하는 유전자 SRD5A2의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염색체 열성 질환입니다. 그런데 이는 남성에게만 발현되는 질환입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세메냐는 아주 드물게 남성과 여성의 특질을 모두 지닌 채 태어난 간성(intersex)인 사람입니다. 간성인 사람은 2천 명 중 1명꼴로 있다고 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를 남자 아니면 여자로 구분할 수 있다고 여겼던 제 생각은 틀렸던 겁니다.

남자부와 여자부를 나눠 놓고 경쟁하는 스포츠계에서 이른바 “애매한 성”이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문제를 고민하고 규제하기 시작한 역사는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길었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3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마이클 워터스가 스포츠 성별 검사의 역사에 관해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썼습니다.

전문 번역: 올림픽 출전 선수의 ‘성별 검사’는 공정 경쟁을 위한 것? 이전부터 그렇게 해왔을까

 

세메냐처럼 간성의 특징을 지닌 선수가 논란이 되기 전에 먼저 이슈가 된 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 마크 웨스턴이었습니다. 칼럼에도 나오듯 웨스턴은 여자 포환던지기 선수로 활약하다 은퇴 후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라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았습니다. 남성이 된 뒤 다시 현역으로 복귀해 여자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아닌데, 세계육상연맹의 전신인 국제아마추어육상협회가 “여자 스포츠 대회에 자웅동체가 출전하게 되는 재앙”을 막겠다며, 성별 검사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죠.

웨스턴은 간성인 세메냐와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즉, 지정성별은 여성이었지만, 자신이 자라면서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성정체성은 남성이었던 거죠. 이렇게 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이 다른 경우를 트랜스젠더라고 부릅니다. 흔히 성전환 수술을 받은 이를 트랜스젠더라고 부르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명칭입니다.

지정성별과 내가 생각하는 성정체성이 다른 경우, 성을 뜻하는 젠더(gender) 앞에 무언가를 넘다, 변경한다는 뜻을 지닌 접두사 트랜스(trans)를 붙여 이를 트랜스젠더라 부릅니다. 반면 숫자로 보면 훨씬 많은 대부분 사람은 지정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합니다. 여자로 태어났고 스스로 여성으로 여기고 사는 사람, 또 남자로 태어나 스스로 남자로 여기고 사는 대부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젠더 앞에 같다는 뜻을 지닌 접두사 시스(cis)를 붙여 시스젠더(cisgender)입니다.

다시 웨스턴 이야기로 돌아오면 웨스턴은 트랜스젠더였고, 현역 운동선수에서 은퇴한 뒤에 자신의 성정체성을 따라 성별을 바꾸었는데, 육상연맹은 “(여자도 아니면서) 여자 대회에서 뛴 기록과 성적”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이게 성별 검사의 시초입니다.

 

올림픽이 진정 포용의 장이 되려면

성별이란 것이 이분법으로 딱 나누기 어렵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수가 많지 않다 보니 여전히 사람들은 남자 아니면 여자로 명확히 분류할 수 있는 대다수 시스젠더를 정상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편견을 쉽사리 버리지 못합니다.

트랜스젠더나 동성애를 질병 취급하고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환자로 여기는 고정관념은 우리 사회만 해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세계육상연맹을 비롯한 스포츠계 전반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반인이 아무리 땀 흘려 훈련하고 노력해도 성취할 수 없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지닌 이와 똑같이 경쟁하게 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워터스도 칼럼에서 지적했듯 올림픽이라는 대회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정함, 포용, 차별 금지”를 기치로 내걸고, 특히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를 지향하겠다고 밝혀온 올림픽이 특별히 반칙이라고 보기 어려운, 선천적인 특질 덕분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들을 포용하지 않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세계육상연맹의 성별 검사 규정이 공정하지 않다는 세메냐의 주장을 스위스 연방법원과 스포츠 중재재판소(CAS)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연맹의 규정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결한 거죠. 그에 반해 유럽인권재판소는 지난해 연맹의 성별 검사 규정이 세메냐를 비롯한 간성 선수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분이 있다며, 세메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성별이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나뉘지 않는 만큼, 이 문제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참작할 부분이 많은, 간단하지 않은 사안이란 뜻입니다.

장애인은 선천적으로, 혹은 후천적인 사고로 장애가 생겨 비장애인과 기량을 겨루기 어렵기 때문에 패럴림픽(Paralympic)을 만들었습니다. 선천적인 특질 때문에 시스젠더인 일반인과 기량을 겨루기 어려운 면이 있는 트랜스젠더, 간성 선수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대회에 출전해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만약 올림픽이 임의로 정해놓은 ‘정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만의 축제라면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지만, “스포츠를 통해 지구촌이 하나 되는”과 같은 구호를 명실상부하게 만들고 싶다면, 성소수자를 어떻게든 배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지금의 성별 검사 규정을 서둘러 손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