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일론 머스크의 관심 값이 64조 원… 인류의 희망을 거는 대가, 맞나요?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6월 18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누구나 이 말을 알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시간을 금쪽같이 아껴 쓰지는 못합니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쓴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가운데는 시간을 소중히 아껴 쓰는 사람이 많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간은 보통 비싼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시간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 만큼 바쁜 사람들은 대개 평균 이상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 권세 있는 사람의 시간을 사는 데는 적잖은 돈이 듭니다.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자선 행사지만, 워런 버핏과의 한 끼 식사가 경매에 나왔을 때 낙찰받으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꼭 같지는 않지만, 관심은 어떨까요?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의 관심을 살 수 있을까요? 아니, 사고팔기 전에 관심을 값으로 매기는 게 가능할까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말고 다른 데 관심이 팔렸다면, 그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당연히 해결사의 관심을 끌고 싶을 겁니다. 관심을 끄는 방법이야 돈 말고도 얼마든지 있겠지만, 만약 돈으로 관심을 사려 한다면 얼마가 적정한 가격일까요?
테슬라의 주주들은 창업자이자 CEO인 일론 머스크의 관심을 다른 데 빼앗기지 않고 테슬라에 온전히 붙들어 놓기 위해 아주 이례적인 방식을 택했습니다. 기존 기업들이 밟지 않은 길을 따라 개척하고 성장해 온 테슬라다운 발상이자, 머스크다운 시도였죠. 바로 머스크에게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의 막대한 급여를 안긴 겁니다.
주주들이 2018년에 투표로 승인한 머스크의 급여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달성하기 쉽지 않은 원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테슬라가 이를 달성하면 머스크가 보상을 받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머스크는 급여를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대신 당시에는 일견 불가능해 보이던 목표를 이루면 머스크는 무려 3억 주의 주식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취득할 수 있습니다.
머스크가 받게 되는 급여의 규모가 매번 조금씩 바뀌는 건 현재 테슬라의 주가가 계속 바뀌기 때문인데, 현재 시점에서 3억 주를 사들여 급여는 대략 460억 달러로 추산됩니다. 현재 1달러에 1,380원이 넘는 환율을 적용하면, 우리 돈 64조 원에 이르는 액수입니다.
미국에서 경영자들의 보수가 지나치게 높다는 논의가 많기는 했지만, 지금껏 그 어떤 경영자나 창업자도 이만한 수준의 급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주들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회사의 수익을 CEO가 너무 많이 가져간다며 소송을 걸거나 해당 주식에 등을 돌릴 겁니다.
그런데 테슬라 주주들은 정반대로, 7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률로 머스크의 급여안을 승인해 줬습니다. 그것도 2018년에 한 번 통과됐다가 테슬라 법인이 등기된 델라웨어주 법원이 투표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무효로 하자, 지난주 같은 급여안을 다시 한번 통과시켰습니다.
전문 번역: ‘어그로꾼’이 된 머스크, 그의 급여 460억 달러를 보면 그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
테슬라 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머스크와 법원의 줄다리기를 둘러싸고 UC 버클리 경제학과의 J. 브래드포드 들롱 교수가 칼럼을 썼습니다. 테슬라도, 머스크도 초심을 잃고 잇달아 혁신을 만들어 가던 반짝반짝하던 초기의 원동력을 잃어간다고 우려하는 글에서 들롱 교수는 7년 만에 기어이 다시 법원과 대립하는 머스크를 바라보며, 테슬라 주식을 밈 주식으로 만드는 데 혈안이 된 머스크는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력히 비판합니다. 오늘 글에서는 급여안의 내용과 배경,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밈 주식? 자사주 매입? 기업 가치와 주가
들롱 교수는 머스크의 급여안에 담긴 인센티브와 그에 따라 주가를 띄우려는 머스크의 노력을 밈 주식 현상에 비유합니다. 테슬라를 팬데믹 중에 (사업상의 뚜렷한 근거도 없이) 갑자기 주가가 폭등했던 원조 밈 주식 게임스탑처럼 만들 수 있으면 자신이 받게 될 보상도 덩달아 커지는 상황에서 머스크는 마찬가지로 주가가 오르면 당장의 이득을 누릴 수 있는 테슬라 주주들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델라웨어주 법원은 처음에는 투표 절차에 문제가 있었다, 주주들이 이사회와 머스크의 관계, 급여안의 세부 내용을 너무 몰라서 문제라며 제동을 걸었지만, 자세한 내용이 모두 알려진 다음에도 주주들은 머스크와 한 배를 타는 쪽을 택할 만한 유인이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밈 주식의 특징이 분명히 없지 않지만, 들롱 교수도 칼럼에서 인정한 것처럼 테슬라 주가가 오른 것을 게임스탑이나 (극장 체인) AMC처럼 별다른 사업상 전망이 없는데도 갑자기 주가가 오른 것과 동일한 현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밈 주식이 아니라면 회사의 성과를 오직 주가로만 평가하려는 경향, 주가에 모든 것을 결부하려는 성향의 문제는 자사주 취득에 관한 논의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면 보통 주당 순이익(EPS, earnings per share)이 높아지고, 주가이익비율(PER, price-earnings ratio)은 낮아져 주가가 오릅니다. 다만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올리는 건 무한히 할 수 없고, 시장 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을 때만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만약 자사주를 사들일 돈으로 시장의 다른 기회에 투자해서 사업을 키우고 매출과 이익을 늘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특히 장기 투자자들은 그렇게 사업을 확장하고 성장해서 주가가 자연히 오르는 쪽을 선호할 겁니다.
물론 머스크의 이례적인 급여안을 승인해 줬다고 해서 테슬라 주주들을 단기적인 주가에 혈안이 된 근시안적인 사람들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테슬라는 아시다시피 별볼일 없는 아무 기업이 아닙니다. 전기차 혁명을 선도해 온 기업으로, 21세기 들어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이며, 지금 이 순간 가장 ‘쿨’한 기업을 꼽을 때도 절대 빠지지 않는 기업입니다.
그런 테슬라가 혁신에 박차를 가해 더 좋은 전기차를 만들어 기후변화와 싸움의 선봉에 서는 대신 주가를 띄우는 ‘쉬운 길’을 택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즉, 기업 가치라는 것이 주가에 오롯이 반영되는 게 아닌데, 주가만 보고 경영에 관한 모든 걸 평가하다 보면 실제 기업의 실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현재 테슬라의 주가가 실제 가치보다 많이 낮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어느 정도 올려 시장 가치를 반영하는 게 타당하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습니다.)
64조 원이나 들일 일?
머스크의 시간을 사기 위해 막대한 보상이라는 당근을 기꺼이 제공한다는 논리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2018년에 급여안의 승인 여부를 처음 투표에 부쳤을 때만 해도 테슬라는 매출도, 영업이익도 부진했습니다. 실적이 좋지 않았죠. 이를 타개하기 위해 테슬라 주주들은 머스크가 처음 테슬라를 일으켜 세울 때처럼 더 많은 시간을 테슬라에만 쏟아붓도록, 쉽게 말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자나 깨나 테슬라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위해 다른 어떤 CEO도 받은 적 없는 금전적 보상을 고안해 승인했죠.
그러나 스타트업 초기의 테슬라와 달리 생산과 공급망, 물류 전반이 이미 자리를 잡은 상황이자 중국을 비롯한 자동차 업체들과 원자재 조달, 기술 등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지금의 테슬라는 더 이상 머스크 한 명이 시간과 품을 쏟아붓는다고 즉각적인 성과가 보장되는 회사가 아닙니다. 물론 일론 머스크가 여러 차례 밝혔듯 현재 자신이 보유한 13% 정도의 테슬라 지분을 궁극적으로 25%까지 올려야 더 원활하고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하리라는 말이 사실일 수 있지만, 효율적인 경영이 테슬라의 성장과 실적과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다른 방안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고로 이번 급여안이 최종 적용돼 머스크가 3억 주를 받게 되면, 머스크의 테슬라 지분은 21%로 높아집니다. 머스크는 사실 테슬라를 기반으로 스페이스X를 통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싶어 하는 거로 알려졌는데, 또 하나의 전인미답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전례 없는 권한이 필요하고, 그를 뒷받침한 돈이 필요하다는 머스크의 주장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그러다가도 과연 64조 원어치 주식을 안겨주면서 머스크 한 명에게 인류의 희망을 거는 일이 과연 맞는지 생각해 보면 또 잘 모르겠습니다.
테크 분야의 언론인 카라 스위셔는 한때 혁신을 이끌었던 빅테크 기업의 창업자, CEO들이 점점 더 “예스맨”에게 둘러싸여 비판에 무뎌지고 자기만의 왕국 안에 갇혀 사는 상황을 여러 차례 우려했습니다. 모든 CEO가 다 같지 않다며, 대표적으로 우려스럽다고 밝힌 인물이 일론 머스크와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였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올해 초 자세히 다룬 기사를 보면 실제로 테슬라의 이사회는 한마디로 일론 머스크와 너무 가까워서 문제입니다.
결국, 지금 테슬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라는 똑똑한 천재 엔지니어이자 창업가의 비전과 직관에 회사의 미래를 전부 다 맡기느냐, 아니면 과감하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사회를 꾸려 필요할 때는 머스크와 싸우고 토론하며 책임을 나눠 지는 쪽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입니다.
기업은 민주 정부가 아닙니다. 정관에 따라 주주들의 뜻을 모았다면 이를 반영해 경영하는 게 정답이며, 이 결정이 민주적이었는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이 결정이 테슬라라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기업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꼭 테슬라의 주주가 아니라도 관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주주들이 전례 없는 급여안을 다시 한번 승인해 줬지만, 또 머스크가 공언한 대로 기업의 등기상 주소지를 델라웨어주에서 아예 텍사스주로 옮기는 안도 투표에 부쳐 과반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누군가 또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법정 공방은 다시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