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중국의 쇠퇴를 논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은 10월 2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 이 글을 쓴 이종혁 교수와 중국 양안 관계, 경제 위기 등에 관해 나눈 이야기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가 긴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감지되자, 중국이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다거나 중국의 세기는 끝났다는 분석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에서 중국 경제 위기가 “이번에는 다르다”는 주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가 최근에 쓴 칼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이 갑자기 쇠퇴의 길로 간 이유
칼럼은 지난 40년간 끊임없이 성장해 왔던 중국이 이제는 쇠퇴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이를 이끄는 공산당의 근본적인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이 바탕에 깔려 있죠. 그런데 지난 40년간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며 잘해왔던 중국이 왜 갑자기 쇠퇴의 길로 접어든 걸까요?
저는 중국이 쇠퇴하리라는 칼럼의 기본적인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중국 체제가 필연적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다는 글의 전제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는 곧 현재 중국이 겪는 문제들이 일시적이거나 현 지도부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위주의와 중앙집권이라는 중국 시스템의 근본적인 설계가 잘못됐다는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서방의) 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위 “중국 위기론”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선 권위주의 국가 중국의 부상은 곧 자유로운 국제 질서와 민주주의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시각이 있고, 다른 하나는 중국과 전 세계의 연결고리가 더 강화되면서 중국 내부의 경제 붕괴가 전 세계에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중국 위기론은 사실 1980년대 덩샤오핑의 중국이 개혁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을 때부터 꾸준히 관심을 받아왔습니다.
중국 경제가 순항할 때는 첫 번째 위기론, 즉 중국이 너무 잘 나가도 문제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지진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사스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 세계 금융 위기, 환율 악재, 주식 시장이나 지금과 같은 부동산 시장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면 두 번째 위기론, 즉 중국이 급격히 무너지면 그것도 문제라는 측면이 강조됐습니다.
칼럼을 쓴 스티븐스의 논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티븐스는 중국 경기가 뚜렷이 둔화되고 있고, 부동산 시장은 붕괴 위험에 처했으며, 출산율 저하와 노인 인구 증가로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도 중국의 미래가 불안정하니, 전 세계는 중국발 위기에 대비하라고 진지하게 조언합니다.
이런 관점이 내포한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을 단일한 체제, 하나의 연속체로 본다는 점입니다. 서구의 학자와 전문가들은 중국을 늘 하나의 문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레이엄 앨리슨이 말한 “투키디데스 덫”이나 칼럼의 주장은 마오쩌둥 이후의 중국을 동일한 체제가 지속된 국가이자, 이데올로기로도 일관성을 유지한 체제로 상정합니다. 덩샤오핑 – 장쩌민 – 후진타오 –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중국 지도부의 교체는 분명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들은 중국을 다 똑같은 중국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관점은 “오컴의 면도날” 원리로는 훌륭할지 모르지만, 중국 리더십의 내부 사정과 그에 따른 대외 정책의 변화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곤 합니다.
저 역시 앞으로 중국은 천천히 쇠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쇠퇴하는 원인은 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체제에 근본적인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진핑의 정치적 상황에 기인할 가능성이 큽니다. 중국은 지금까지 숱한 위기를 헤쳐 왔습니다. 부동산에 거품을 끼게 한 주범 취급을 받는 투자 위주의 국내총생산과 막대한 정부지출, 부채도 새롭지 않습니다.
다만 덩샤오핑과 그 이후 지도자들, 특히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이 늘 강조했던 패러다임을 충실히 이행하려 노력했습니다. 그 패러다임이란 경제 발전을 중시하고, 지방 분권에 신경을 쓰며, 무엇보다 능력 우선주의를 통해 정부를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 많은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유지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위기가 특히 위험해 보이는 건 시진핑의 중국은 앞선 세대 지도부에 비해 위기관리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진핑 정권의 경제 모델
시진핑은 경제보다도 안보를 중시했고, 중앙집권에 힘쓰느라 지방을 소홀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능력 우선주의보다 과도한 충성 경쟁을 방조하거나 조장했고, 독재자의 마인드로 정부를 운영했습니다. 공산당 내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던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은 자취를 감췄으며, 국내외 안보와 그에 따른 자원의 통제가 강화됐습니다. 그 결과 시진핑의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 중앙정부와 국유기업 위주로 성장해 왔는데, 이런 방식은 앞선 지도자들, 특히 덩샤오핑의 패러다임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어쩌다 이런 체계를 구축하게 됐을까요? 핵심은 시진핑의 권력은 정당성이 부족한 권력이라는 점입니다. 시진핑의 정당성은 그동안 중국 공산당이 역사적으로 증명해 온 성과에 기댄 정당성이지만, 이마저도 중국 공산당의 ‘3연임 금지 관례’를 스스로 깨버리면서 크게 약화됐습니다.
문제는 시진핑 주석이 개인적으로 어떠한 뚜렷한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밖에서 볼 땐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불안한 시진핑은 공산당 지도부를 자기가 믿을 수 있는 측근으로만 채웠습니다. 안보를 앞세워 국내를 통합하고, 자원을 통제해 반대자들을 억압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입니다.
또한,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국몽, 신사회주의 건설과 같은 이데올로기는 대단히 모호하고 추상적입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뚜렷한, 가시적인 목표를 설정하기에는 지도부의 역량이 부족해 보입니다. 특히 뚜렷한 목표를 세워뒀다가 달성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만큼, 시진핑 주석으로서는 이제 와서 경제를 최우선으로 삼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진핑 정권의 경제 모델과 정치 체제는 민간 투자와 경제 자유를 촉진하기 위한 요소들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다만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이 한계에 봉착했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 불황으로 국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중국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여전히 사회 전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적으로 시진핑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시진핑 정권의 국가 거버넌스는 중국의 미래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며, 이 여파는 이미 국제 사회와의 상호작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