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막 오른 ‘세기의 소송’… 구글은 독점 사업자인가 아닌가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9월 25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아메리카노에서도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종종 집 밖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집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권한이 많지 않은 자리로 묘사되곤 합니다. 집 밖은 국제사회를 뜻합니다. 외교 무대에서는 패권국가 미국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말이 사실상 법이나 다름없을 때가 많습니다.
집 안은 미국 국내 정치를 가리키는데, 물론 연방정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지만, 미국의 정치 제도 곳곳에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사사건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대법원이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한 일을 없던 일로 되돌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50개 주가 모여 연방을 이룬 나라인 만큼 각 주의 사무에 관한 한 주 정부와 주 의회의 결정이 우선시 되곤 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0조는 “미국 연방에 위임되지 아니하였거나, 각 주에 금지되지 않은 권력은 각 주나 국민이 보유한다”고 명시하고 있죠.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권력은 정치권력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미국에서는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자본이 축적됐습니다. 고도로 축적된 자본은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권력이 됐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미국은 자본의 힘이 상대적으로 매우 센 나라로 남아 있습니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에 따라서도 역학관계가 바뀌곤 하므로, 이를 단선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업에 대한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하다고 알려진 미국에서도 규제당국이 휘두를 수 있는 강력한 칼이 있는데, 그게 바로 반독점 규제입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당국은 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있고, 법무부 안에도 반독점국이 있어 불공정 경쟁 행위를 감독합니다. 또 입법부인 의회에도 상, 하원 모두 법사위원회 아래 독점 혐의를 조사하는 반독점 소위원회가 있습니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각 주 정부(법무부, 검찰)도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기업을 감독하고, 필요하면 시장에 개입해 경쟁 환경을 바로잡습니다.
‘세기의 소송’ 막 올랐다
지난주 미국 정부는 이른바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는 처음으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미국 대 구글(United States vs. Google)”
소송의 원고는 미국 법무부, 피고는 구글입니다. 법무부 차관이자 반독점국장을 맡고 있는 조나단 칸터가 소송을 이끌고 있는데, 구글이 인터넷 검색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소비자 효용을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구글도 CEO 순다 피차이를 포함한 경영진, 화려한 변호인단과 (구글은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는 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고 증언해 줄) 유수의 경제학자들로 진용을 꾸려 맞섰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한 지난번 반독점 소송은 25년 전, 1998년에 있던 “미국 대 마이크로소프트” 소송입니다. 당시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브라우저 등 자체 소프트웨어와 윈도우 운영 체계를 묶음 상품으로 판매하는 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경쟁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을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운영 체계 부문과 소프트웨어 부문으로 분할하라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에서 분할 대신 앞서 인정된 불공정 행위를 중단하고 되돌리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늘날 빅테크 기업의 일원이 됐지만, 1990년대는 아직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입니다. 당시 소송의 쟁점도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의 독점이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의 문제였죠. 구글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인터넷 기반으로 굴러가는 세상에서 구글은 정보를 찾는 핵심 기능인 검색 부문의 독점 사업자로, 검색 엔진을 통해 모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 기반 광고 시장의 이윤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독점 사업자 구글이 경쟁자를 몰아내기 위해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 소송은 빅테크 기업이 인터넷을 기반으로 벌인 행위를 대상으로 한 첫 반독점 소송이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 번역: ‘구글 반독점 소송’, 우리의 미래를 바꿀 것인가
바이든 행정부에서 테크 부문 경쟁정책 자문으로 일했던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의 팀 우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이번 소송과 관련해 글을 썼습니다. 우 교수는 소송의 직접적인 쟁점보다도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그로 인해 뒤바뀌거나 다시 쓰일 경쟁의 원칙과 시장의 구도가 앞으로 인터넷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에 초점을 맞춰 글을 썼습니다.
특히 1960년대 IBM, 1980년대 AT&T, 그리고 2000년대 초 마이크로소프트가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생겨난 부수적인 효과에 우 교수는 주목했습니다. 즉 독점 기업들이 받은 직접적인 징계보다도 규제당국의 감독에 사업이 위축되면서 시장에 경쟁이 되살아나 결과적으로 혁신의 토양이 마련됐다는 겁니다. 우 교수는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또 그 판결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금으로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독점을 방조하기보다 경쟁을 촉진하는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썼습니다.
소송의 쟁점: 디폴트로 자리매김하는 비용
팀 우 교수는 이번 소송 자체에 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기의 소송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사건인 만큼 미국 정부와 구글이 어떤 점에서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지 쟁점을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소송의 핵심이 되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컴퓨터 프로그램 등에서 기본 설정값을 뜻하는 단어 “디폴트(default)”입니다.
미국에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면 처음에는 언어가 영어로 설정돼 있죠. 한국어를 쓰려면 언어 설정에 들어가서 한국어를 추가해야 합니다. 자국 언어인 영어가 디폴트인 셈입니다. 또 미국에서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받으면 거리가 마일이나 피트로 표시됩니다. 미국식 도량형이 디폴트로 설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본으로 설정돼 있는 게 디폴트인데, 법무부는 구글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브라우저로 무언가를 검색할 때 늘 구글 검색 엔진이 디폴트로 설정되도록 애플이나 삼성 등 스마트폰 제조 업체, 안드로이드 등 운영 체제, 모질라 등 브라우저 업체에 많은 돈을 주고 맺은 계약이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경쟁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구글의 잠재적 경쟁자들은 구글이 쌓아놓은 진입장벽을 넘지 못해 아예 시장에서 배제되고, 경쟁조차 하지 못합니다. 검색 기반 광고 시장을 독점한 구글은 광고주들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구글에 유리한 계약을 맺거나 가격을 멋대로 올리는 등 권력을 남용할 위험이 있습니다. 최종 소비자들에겐 다른 검색 엔진을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유료 구독을 해야만 검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표면상 구글 검색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는 구글을 사용하면서 귀중한 이용자 데이터를 구글에 고스란히 쥐어주고 있습니다. 구글은 이용자 데이터를 토대로 정교한 소비자 프로필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적중률 높은 맞춤형 광고를 광고주들에게 팝니다. 내 개인정보와 신상 데이터를 구글에 주기 싫은 소비자라도 구글 말고 대안이 없는 독점 시장에선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 효용이 침해되는 겁니다.
법무부는 구글이 애플이나 삼성 등 인터넷 검색과 관련된 업체들이 매년 수십억 달러를 주고 디폴트 검색 엔진을 구글로 해놓도록 계약을 맺고, 그 덕분에 맞춤형 광고 수입으로 수백, 수천억 달러를 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검색 시장의 기준도 사실상 구글이 다 알아서 정하는 절대적인 권력자입니다. 구글이 부당한 계약을 통해 경쟁을 막지 않았다면, 시장 환경이 사뭇 달랐으리란 겁니다.
구글의 반론: 인터넷 검색을 정확히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구글은 물론 법무부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합니다. 구글의 반론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우선 구글이 부당하게 경쟁을 가로막은 적 없고, 일반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점유율이 높은 건 단지 구글의 서비스가 좋아서 많은 소비자가 구글을 선택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사람들이 우리 제품 좋아서 많이 쓰는 걸 두고, 우리더러 불공정 행위를 하지 않았냐고 추궁하면 어떡하냐”는 거죠.
구글은 또 구글이 독점 사업자라는 법무부의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 듯합니다. 즉 검색 엔진만 놓고 보면, 구글의 점유율이 대단히 높아 보이지만, 인터넷 검색 시장을 과연 주소창에, 검색창에 단어를 쳐 넣고 정보를 찾는 것만으로 국한하는 게 올바른 분류냐고 묻습니다. 직접적인 검색 외에 이커머스, 즉 온라인 쇼핑에서 상품을 검색하는 것도 엄연한 검색이고, 소셜미디어에서 인기 동영상이나 밈, 꿀팁을 찾아보는 것도 검색이며,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음악이나 영화를 찾는 것도 검색 아니냐는 거죠.
그렇다면 구글은 검색 시장의 독점 사업자가 아니라, 아마존, 틱톡, 레딧, 스포티파이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입니다. 구글이 독점 사업자가 아니라는 전제를 법원이 받아들이는 순간 반독점 소송은 그 자체로 기각되는 거나 다름없죠. 독점이 아닌데, 반독점법을 위반했을 리는 없으니까요.
인공지능 기술 경쟁과 반독점
법무부가 구글의 고삐를 죄려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독점 사업자 구글이 이용자 데이터를 압도적으로 많이, 자세히, 끝없이 모음으로써 다음번 경쟁에서 부당한 우위를 점하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다음번 경쟁은 아마도 빅테크 기업, 테크 스타트업을 비롯한 여러 업체들 사이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실 올해 들어 챗GPT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인공지능 기술 경쟁은 이미 점화됐다고 할 수 있죠.
인공지능의 성능을 높이는 데 가장 쓸모 있는 게 바로 더 많은, 양질의 데이터입니다. 법무부는 구글이 지금처럼 검색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게 놔두는 건 인공지능 기술 경쟁에서도 다른 기업보다 훨씬 더 앞에서 출발하는 걸 방조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합니다.
메타 판사가 법무부의 손을 들어준다면, 구글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 행위를 상당 부분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구글이 승소할 경우엔 규제 당국이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이겠지만, 동시에 인터넷과 플랫폼 경제의 특수성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도록 100년도 더 된 반독점법을 대대적으로 개정, 보완하자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