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정치를 위해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그 나라는 어디인가
2023년 9월 19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26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집단을 이룸으로써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 다른 종과 차원이 다른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의식주를 비롯한 삶의 거의 모든 요소에는 타인의 손길이 닿아 있으며, 이는 우리를 더 배부르게, 더 편안하게,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비용이 있습니다. 때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사회에서 금지된 일일 수 있으며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집단을 위해 해야 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관습과 규범은 우리를 매우 강력하게 통제하는 힘이며, 그중 국가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입니다.

따라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회에서 의견을 모아 이를 수렴시키고 합의에 이르게 만드는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를 정치라 부르며, 지금 다수의 선진국이 택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기본으로 하는 소위 가장 덜 나쁜 정치제도입니다. 이 제도는 규칙을 정하는 이들과 세금을 사용할 이들을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가진 이들로 선택함으로써 사회를 자신의 뜻에 가깝게 바꾸어나가는 제도입니다.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치는 차이를 서로 확인하고 상대를 인정하며 양보와 설득을 통해 합의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자유와 평등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경제 발전과 분배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명은 언제 시작되며 낙태는 임신 몇 개월부터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우리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상대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문제, 곧 상대의 생각을 하나의 의견으로 인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바로 과학적 사실들입니다. 과학은 자연이라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심판이 있으며 따라서 과학적 사실에 대해 자신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이들을 공론장에서 인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입니다. 혹자는 이를 정답이 없는 문제와 정답이 있는 문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학도 영원불멸의 절대적 진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과학의 신뢰를 높여주는 특징입니다. 과학은 언제든지 새로운 이론과 증거들이 자연을 더 잘 설명하고 예측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며 과학의 역사는 바로 그러한 자기 보정의 역사입니다. 이는 반대로 지금 이 시점에서 학계가 합의한 사실은 그 사실이 뒤집히기 전까지는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이런 과학의 특징을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데 이용하는 이들은 오히려 과학의 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17일,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공화당 출신의 론 드산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날씨의 정치화를 거부한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질문을 거부한 것을 반박하는 칼럼을 실었습니다.

전문 번역: 더 이상 기후를 정치 의제로 삼는 걸 피할 수 없는 이유

전 세계에서 가장 힘세고 가장 뛰어난 과학기술력을 가진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요? 이는 공화당이 한때 기후위기를 부정했고, 때문에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이 기후위기를 막으려는 노력에 의해 손해를 볼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후위기는 한때 가설에 불과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다음에는 그러한 변화가 인간의 문명 때문임을, 또 우리의 노력으로 그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때 가설이었던 이 주장들은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합의하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학계의 합의가 신뢰를 가지는 이유는 과학계야말로 ‘한 명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고, 다수를 잠깐 속일 수 있지만 다수를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는 금언이 가장 잘 들어맞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주요 정당이 기후변화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원전에 대한 두 정당의 입장은 다르지만 이는 기후변화 대책의 측면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는 문제에 속합니다. 그러나 최근의 오염수 논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오염수는 적절한 처리를 거칠 경우 안전하며, 후쿠시마 처리시설의 적절성은 학계가 인정하는 국제기구가 보증했을 뿐 아니라 방류되는 삼중수소는 상식적 기준에서 우리나라에 오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의 합의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정치와 그 영향을 받는 과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미국 공화당을 그저 남의 나라의 일로 여길 수만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