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푸틴의 위기’가 시진핑에게 미칠 영향은… 대만 침공 재고?
*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글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7월 17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 사이에는 보통 크고 작은 다툼이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이웃 나라가 늘 싸우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대를 확대해 지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개 어디든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후의 역사는 분쟁과 갈등, 전쟁의 역사를 모아 놓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많은 국경선 가운데 두 나라가 육지에서 공유하는 국경선의 길이를 순위로 보면, 당연히 국토 면적이 큰 나라들의 쌍이 높은 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1위는 8,893km를 맞대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 2위는 과거 소련에서 나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로 7,644km의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미국-캐나다, 카자흐스탄-러시아의 관계는 모두 우호적인 편이죠. 그러나 3위(아르헨티나-칠레), 4위(중국-몽골), 5위(방글라데시-인도)는 국경 분쟁 또는 전쟁 등 갖은 갈등을 겪은 나라들입니다.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선은 총 4,133km로 지구상에서 두 나라 사이의 국경선 기준 여섯 번째로 깁니다. 소련 시절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미지근하거나 때로는 차갑게 식은 적도 있지만, 어쨌든 두 나라는 긴 국경을 맞댄 이웃치고는 사이좋게 지내왔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는 2010년대 들어 더욱 돈독해졌는데, 이는 양국 지도자가 서로 지향하는 바가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둘 다 패권국가 미국의 존재를 꺼려 하며, 미국을 견제하거나 넘어서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또 헌법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종신 집권에 가까운 권력 기반을 다진 푸틴 대통령이나 임기 두 번을 마친 뒤 다음 세대에 권력을 물려주던 전통을 20년 만에 깨고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시진핑 주석 모두 권위주의 지도자로서의 동병상련이나 통하는 고민이 있을 겁니다.
전문 번역: ‘동지이자 절친’ 푸틴의 위기를 씁쓸하게 바라보고 있을 시진핑
오늘 번역해 소개한 뉴욕타임스 칼럼은 돈독하던 시진핑과 푸틴의 관계가 점점 더 나빠질 일만 남았다는 라이언 하스 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 국장의 분석입니다.
시진핑은 한때 푸틴을 가리켜 “나의 가장 친밀한 친구”로 부른 적도 있습니다. 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많은 나라가 비판하고 비난할 때도 중국은 끝까지 이 전쟁을 암묵적으로 지지하거나 감쌌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입장에서) 전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끝내 지난달 전쟁에 투입됐던 용병 조직 바그너 그룹의 사령관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러시아군끼리 싸우는 내전으로 번지지 않은 게 적어도 겉보기엔 프리고진의 결단 덕분으로 비춘 것까지 푸틴에게는 끔찍한 나날들이었습니다.
푸틴의 몰락을 점치는 이들이 늘어나자, 자연히 푸틴을 비호해 준 대표적인 나라 중국과 중국의 권력 최정점에 있는 시진핑 주석의 셈법에 관심이 쏠립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뜻하는 양안 관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관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갈등의 역사도 깁니다. 그런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에 실리는 칼럼과 기사는 시진핑의 셈법을 분석할 때 다분히, 또 당연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가정과 계산을 바탕으로 합니다. 어쩔 수 없는 편향이 발생하죠.
그래서 중국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중국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 지난달 싱가포르 난양이공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중국 정치를 가르치는 이종혁 교수를 초대해 시진핑의 관점에서 바라본 대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시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양안 관계의 당사자이자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려면 시진핑 주석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겁니다. 아래는 팟캐스트에서 나눈 이야기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권력의 정당성에 목이 마른 시진핑
지난해 10월 열린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세 번째 임기를 보장받았습니다. 전임 장쩌민, 후진타오 두 명이 5년 임기인 공산당 중앙위원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두 번씩만 연임하고 10년 뒤에 차세대 지도자에게 권력을 넘겼지만, 시진핑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두 번밖에 사례가 없는 경우를 관례로 부르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어쨌든 시 주석은 자신이 왜 장쩌민, 후진타오와 달리 권좌에 더 오래 있어야 하는지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관례를 깨서라도 내가 계속 집권해 공산당과 나라를 끌어나가야 할 이유를 대야 하는 겁니다. 정당성을 입증하려면 그만한 성과가 필요한데, 성과 측면에서 시진핑에게 가장 확실한 카드는 바로 조국 통일, 대만을 통일하는 일입니다.
시진핑은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급이 될 수 있을까?
중국 공산당은 1921년 창당했습니다. 100년이 조금 더 넘은 공산당 역사에서 지금껏 “의논한 뒤 나온 결정”을 뜻하는 역사결의(歷史決議)는 딱 세 차례 있었습니다. 당이 국가를 이끄는 당국가 체제인 중국에서 공산당이 존망의 기로에 섰거나 중요한 성과를 내는 데 필요한 토대를 마련해야 할 때 역사결의가 있었습니다.
1945년 마오쩌둥이 주도한 1차 역사결의에서는 소련식 교조주의와 결별하고 중국식 공산주의 노선을 분명히 채택해 일본 제국주의 패퇴 이후 중국 건국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1981년 덩샤오핑이 주도한 2차 역사결의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며, 중국식 사회주의 틀을 유지한 채 시장을 받아들이는 개혁·개방 노선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3차 역사결의는 바로 지난 2021년, 시진핑 주석의 주도하에 통과됐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시진핑 시대가 도래했음을 안팎에 천명한 셈입니다.
그런데 모두 아시다시피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업적에 비해 시진핑의 업적은 초라해 보입니다. 마오쩌둥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을 일으키고, 현대 중국의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덩샤오핑의 유연한 개혁·개방 노선이 없었다면, 중국은 지금처럼 부유해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럼, 시진핑은 무엇을 통해 앞선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려 하는 걸까요?
다소 모호한 표현이지만, 시진핑이 내세운 기조들은 꽤 많습니다. 부패를 척결하겠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 (자본주의식으로 표현하면 중산층을 두껍게 늘리겠다는 정책과 맥이 통하는) 소강사회를 만들겠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문제는 이 주장의 성과를 측정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중국 사회에서 부패가 사라졌다고 믿는 사람도, 중산층이 두꺼워지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주장도, 중국 사회가 뿌리 깊은 불평등을 제대로 해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지 않습니다.
그럼 남는 선택지는 딱 하나. 대만을 통일하는 겁니다. 원래 중국의 일부인 대만을 통일해 하나의 중국을 향한 대장정을 끝낼 수 있다면, 이야말로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남을 겁니다. 그래서 관례를 깬 시진핑의 세 번째 임기를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카드는 대만 통일입니다. 물론 TSMC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의 상징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대만은 중요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고전하는 러시아를 본 뒤인 만큼 섣불리 전면전을 벌이는 카드는 꺼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대만 통일이 시진핑에게 본질적으로 우회하거나 생략할 수 없는 필수 과업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시진핑 주석이 처한 상황과 정치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부담을 고려한 채 중국의 행보를 읽어야 합니다.
중국은 대만을 정말 침공할까?
대만 통일이 시진핑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침공할 수밖에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쟁 말고도 다양한 압박을 통해 대만을 굴복시키거나 합병할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찾는다면 중국은 가급적 피를 흘리지 않는 쪽을 택할 것입니다.
이종혁 교수는 지난해 20차 전대에서 시진핑이 3연임을 어렵잖게 달성한 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당분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낮췄다고 분석했습니다. 만약 시진핑의 3연임을 적극적으로 막아서는 견제 세력이 있었다면, 시진핑은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서라도 대만 침공 카드를 꺼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큰 충돌 없이 3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기에 당장 대만 통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유인은 없었다는 말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나 정책 결정 과정이 상대적으로 덜 투명한 권위주의 국가인데,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푸틴의 위기를 바라보며 시진핑 주석이 대만에 대한 야망을 꺾으리라고 섣불리 속단해서도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시진핑에게 대만은 통일하면 좋고, 못 해도 그만인 나라가 아닙니다. 불안정한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조만간 반드시 통일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푸틴의 실패, 푸틴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시진핑에게 전면전은 피하되 전쟁 없이 안정적으로 대만을 복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