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페@스프] 결국 어떤 방식이 소비자에게 더 유리할까
2023년 5월 26일  |  By:   |  SBS 프리미엄  |  No Comment

* 지난해 11월부터 뉴스페퍼민트는 SBS의 콘텐츠 플랫폼 스브스프리미엄(스프)에 뉴욕타임스 칼럼을 한 편씩 선정해 번역하고, 그에 관한 해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쓴 해설을 스프와 시차를 두고 소개합니다. 스브스프리미엄에서는 뉴스페퍼민트의 해설과 함께 칼럼 번역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소개하는 글은 3월 13일 스프에 쓴 글입니다.


몇 년 전 덴마크를 여행할 때의 일입니다. 기차를 타기 전, 역 안에 있는 작은 편의점에 들러 군것질 거리를 샀습니다. 먹고 싶은 걸 이것저것 집었더니, 여행 가방 끌면서 다 들고 가기엔 손이 모자랐습니다. 물건을 담아 갈 봉투가 필요했습니다.

“봉투 하나만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봉투는 따로 사셔야 해요. 0.1크로네입니다.”
“에고, 어쩌죠? 저 현금이 없는데요, 아까 계산하기 전에 말씀드렸어야 하나 봐요, 죄송해요.”

덴마크는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유로화 대신 자국 통화인 크로네를 씁니다. 오래 머물 것 아니라면 크로네화를 환전해 갈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정말로 현금 없이 덴마크에 갔고, 나흘간 현금 하나도 안 쓰고 잘 돌아다닌 뒤였습니다. 0.1크로네면 우리 돈 200원이 채 안 되는데, 그걸 카드로 결제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욕먹을 것 같았습니다. 책가방에 방금 산 과자와 과일들을 주섬주섬 넣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뭐 하세요? 방금 물건 살 때 카드로 계산하셨잖아요. 그 카드 주세요.”

편의점 점원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너무 싸지 않나요. 껌이나 사탕이라도 하나 더 살까요?”
“아뇨, 정말 괜찮아요. 얼른 카드 주세요.”

말투는 꽤 무뚝뚝하던 점원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덴마크에는 소매 점포에 한해 특정 금액 이하는 카드 결제 수수료가 면제됐습니다. 덴마크뿐 아니라 현금 없는 사회를 꿈꾸는 나라, 사회에는 대개 비슷한 규정이 있습니다. 가맹점 수수료 자체도 그렇게 비싸지 않으니, 가게에서 신용카드를 내면 인상을 찌푸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 점원이 딱히 친절한 사람이었다기보다 제도가 불친절하게 행동할 여지를 주지 않은 셈이죠.

 

소비자에겐 보이지 않는 비용

적은 금액을 당연히 카드로 계산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아마 제가 미국에 살아서 그런 걸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도 큰 마트에서는 결제 금액에 상관없이 카드를 내도 되지만, 작은 구멍가게에서는 보통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최소 금액이 있습니다. “5달러 이상 사야 신용카드 결제 가능” 같은 식으로요. 오래된 맛집 중에도 현금만 받는 곳이 더러 있습니다. 카드를 받긴 하지만, 카드로 결제하면 더 비싼 곳도 있죠. 장을 보러 가는 동네 전통시장에서는 카드로 계산하면 4~5% 수수료를 얹어 받는 상인들이 많습니다. 현금으로 내면 10달러인데, 카드로 내면 10.5달러인 식입니다.

비싼 카드 수수료를 낼 때마다, 또는 수수료 때문에 아예 카드를 받지 않아서 결제를 못 할 때마다 가게는 제게 원성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덴마크에서 겪은 일을 찬찬히 뜯어보면, 문제는 가게 주인이 아니라 가맹점 수수료가 너무 높게 책정된 제도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 가격, 비용이 참 많습니다. 각종 수수료가 대표적인 사례일 겁니다.

은행과 신용카드사가 점포에 수수료를 부과하면 점포는 이를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합니다. 결국, 편리하게 카드로 결제하는 비용을 모든 소비자가 나눠 가지는 셈입니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가격과 비용을 떠안는 건 많은 경우 그 비용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이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스탠퍼드 첸지 슈 교수가 쓴 칼럼이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전문 번역: “최고 혜택” 주장하는 신용카드 경쟁의 불편한 진실

미국의 높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단지 효율성의 문제로 접근하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있어야 할 규제가 없었고, 제대로 된 경쟁이 없었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소득층, 서민층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문턱이 높아지지 않도록 적절한 규제가 필요했고, 비자와 마스터카드가 지켜온 오랜 과점을 무너트리고 경쟁을 촉진했다면 가맹점 수수료도 낮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위의 두 가지가 다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들은 금융 서비스를 비싼 값에 이용하게 되고, 은행들은 그렇게 번 돈으로 VIP 고객인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경쟁적으로 늘려왔습니다. 슈 교수가 칼럼에서 지적한 “빵빵한” 신용카드 혜택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모든 소비자를 같은 집단으로 볼 수 있을까?

미국 의회가 신용카드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법을 발의하자, 미국 은행협회는 신용카드 혜택이 줄어들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소비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모든 소비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 볼 때만 맞는 말입니다. 저도 누려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비행기 일등석 업그레이드나 휴양지의 고급 호텔 숙박권이야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인 혜택 아닐까요? 반대로 그런 혜택을 챙겨주기 위해 이런저런 수수료나 연체 이자를 꼬박꼬박 챙겨 받고, 가맹점 수수료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건 서민들입니다. 신용 점수가 높지 않은 서민들에겐 신용카드 혜택도 그림의 떡이죠. 아니, 그런 그림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겁니다.

은행이 이윤을 추구하는 건 그 자체로 비난할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정책결정자들은 은행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소비자를 똑같은 집단으로 놓고 정책을 짜서는 안 됩니다. 특정 계층이 누리는 소비자 혜택이 조금 줄어들더라도 그동안 제도에서 소외된 계층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혜택을 나눠 가질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더 나은 정책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덴마크 편의점에서 200원도 안 되는 봉투값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던 것도 덴마크 정부와 사회가 특정 집단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금융 제도를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노력한 덕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