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복 ‘벌써 1년’
2022년 10월 24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8월 22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올린 글입니다. 

칸다하르에서 정권을 탈환한 지 1년을 축하하고 있는 탈레반 대원들. 사진=BBC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로 진격해오던 2021년 여름, 공항에서 필사적인 탈출을 시도하던 아프간 시민들의 모습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뉴스페퍼민트도 당시 프리미엄 콘텐츠에 관련 기사와 칼럼들을 여러 편 소개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아프간 여학생들과 STEM의 역설

아프가니스탄,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아프간 난민과 국내 정치

이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코로나19 팬데믹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켰으며, 세계 각지에서 기후 재해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전염병까지 등장하는 와중에 아프간 소식은 이제 뉴스 후반에 가끔 단신으로 소개되는 게 전부입니다. 1년 후, 아프가니스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재집권 초기, 탈레반은 불필요한 보복은 없으며, “율법의 한도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현대화된 모습을 드러내려 애썼습니다. 예전과는 달라지겠다는 공언도 여러 차례 했죠.

약속은 다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진과 함께 보는 뉴욕타임스의 8월 12일자 기사에 따르면, 여성은 중등 교육기관과 직장에서 쫓겨났고, 세속적 교육은 급격히 약화되었습니다. 음악과 해외 뉴스는 금지되고, 남녀 모두에 대한 복장 규정이 강화됐죠. 여성은 얼굴과 몸을 가리지 않으면 집 밖에 나올 수 없고, 혼자서는 이동과 여행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언론의 자유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슬람 가치에 반하거나”, “국가 이익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보도가 금지되고, 언론인들은 구금과 고문의 위협에 시달립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교육의 기회와 자유를 누리며 자란 젊은이들은 미래를 잃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국제적인 고립으로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에 놓였습니다. UN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절반이 생명에 위협이 될 만한 식량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했고, 카불의 병원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로 넘쳐납니다. 전투와 공습이 사라지고, 상대적으로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만이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오랜 전쟁과 공습으로 피해가 컸던 남서부 엘만드 주를 방문한 워싱턴포스트의 카불 지부장도 지난 1년 간의 “평화”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말합니다. 침체된 경기 속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금지된 아편을 판매하는 불법 마약상들 뿐입니다. 일주일에 50번씩 장례식이 치러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줄어든 국제 원조와 투자, 금융 제재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할 만한 자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주민들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사법 제도와 법원인데, 탈레반 재집권 이전 부패와 관료주의로 제 기능을 못하던 법원은 이제 고문과 체벌을 허용하고 절차를 무시하는 종교 법원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전투나 공습으로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은 줄어들었지만, 병원에는 필요한 약품도, 전문 인력도 부족합니다.

다시 정권을 탈환한 지 1년이 지난 탈레반에 아프간 국민 모두가 순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프간 안팎에서 목숨을 건 저항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3일에도 카불 교육부 앞에서는 “빵, 일자리, 자유”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시위가 열렸죠. 마하트마 간디와 넬슨 만델라를 롤모델 삼아 절망 속에서도 소통을 추구하고 저항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레반이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고 하지만, 20년 동안 교육의 기회와 자유를 누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과거와의 큰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 출연한 한 객원기자는 탈레반이 서구와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종의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여학생의 등교를 금지하는 정책은 국제사회의 반발을 사겠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인도주의적 재난을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탈레반이 고집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인도주의적 지원이라는 것이 애초에 조건부가 아니므로, 어떤 정책을 펴건 들어올 원조는 들어올 것이라는 자신감에 기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는 거죠. 게다가 현재 미국 정부는 아프간이 기아나 대량 난민 사태로 큰 이목을 끌기를 원치 않는데, 그 덕분에 탈레반의 전략이 먹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포린 어페어스는 8월 19일자 기사를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기치로 내건 전아프간저항전선(National Resistance Front of Afghanistan, NRF)이라는 무장 저항 조직을 소개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민주적이고 정당성을 갖춘 정부가 탄생할 때까지 국제사회가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학생을 학교에 보내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와 미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하에 탈레반이 온건하고 현실적인 노선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무관심이 탈레반의 현상 유지에 힘을 실어준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