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박탈된 여성의 임신중단권과 디지털 사생활 보호
2022년 9월 2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5월 초 유출된 문서의 내용대로 미국 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본 “로 대 웨이드 판결(Roe v. Wade, 1973)”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임신중단 불법화 조치가 주 단위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여성들은 인생을 계획하고 안전한 의료 혜택을 누리는 문제에 있어 1973년 전과 비슷한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 추가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디지털 사생활 보호의 문제입니다.

판결이 알려진 직후, 미국에서는 검찰이 인터넷에 올린 정보나 접속 기록, 앱이 수집하는 데이터 등을 기소와 처벌에 활용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5년 인디애나에서, 2018년에는 미시시피에서 여성이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와 경구용 임신중단약을 검색한 기록 등을 검찰이 증거로 활용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법원판결 이전에 이미 일부 의원들은 구글과 연방거래위원회에 임신중단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사용자 데이터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관련 규정이나 관행이 정립되기 이전에 사용자 수준에서 자신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6월 24일자 CNBC 기사가 인용한 비영리기구 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 소속 법률 전문가는 가급적 정보 수집 기능이 최소화되어 있는 검색 엔진이나 브라우저(‘덕덕고’, ‘파이어폭스’ 등)를 사용하고, 검색 기록을 저장하지 않도록 설정을 바꾸며, 민감한 정보를 타인과 공유할 때는 ‘시그널’과 같은 암호화 메시징 서비스를 사용할 것을 권고합니다.

사진=Unsplash

워싱턴포스트 역시 6월 26일자로 “임신중절 계획 시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많은 여성이 병원이나 약 검색은 물론, 주고받는 문자, 생리 주기 앱 사용 등을 통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의료 정보를 온라인에 많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사는 자신의 사적인 건강 정보를 타인과 최소한으로 공유하라고 조언합니다. 특히 임신중절과 관련된 건강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의료진이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안전을 확신할 수 없을 때는 경구용 약을 통한 중절을 유산이라고 이야기해도 증상과 치료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기 자체도 타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휴대폰과 태블릿, 컴퓨터 등 모든 개인 기기를 잠가두고, 잠금 해제를 강요받는 경우를 대비해 생체인식 기능을 꺼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검색을 할 때는 개인정보 보호 브라우징을 사용하고, VPN이나 아이클라우드 비공개 릴레이 기능을 사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구글을 사용한다면 개인 계정을 로그아웃한 뒤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광고나 낚시성 가짜 사이트를 클릭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동통신 업체가 위치 정보를 얻을 수 있긴 하지만, 모든 앱 설정에서 위치 정보를 끄는 것도 사생활을 좀 더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죠.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는 생리 주기 앱은 제품별로 정보 보호 정도가 다르고 규정이 복잡하므로, 잠글 수 있는 개인 파일이나 종이 달력을 사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번 대법원판결로 주요 테크 기업들도 기로에 섰습니다. 어느 주에서 사업을 확장할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고 후원할지, 직원에게 제공하는 의료 혜택을 어떻게 조정할지, 사용자 데이터를 요구하는 검찰에는 어떻게 대응할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대책을 세우고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몇몇 기업은 이미 직원에게 제공하는 의료 혜택의 일환으로서 임신중단 수술비 및 교통비 지급 정책을 유지한다고 발표했고, 임신중단을 불법화하는 주에서는 사업을 확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업도 있습니다. 정보 제공에 대해서도 대부분 기업이 사용자들을 최대한 보호한다는 정책을 가지고 있지만, 해외 영업의 경우 해당 국가의 법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각 주의 법 집행 기관과의 관계 역시 생각처럼 간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편, 미국 민주당은 대법원판결 이후 임신중단권과 함께 디지털 사생활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는 입장입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도 인터뷰와 공식 일정을 통해 이런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엘리자베스 워런 등 진보성향 의원들은 이미 제 3자 정보 수집과 의료 정보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내놓았지만, 공동 발의한 공화당 의원이 없어 통과에는 어려움이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