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샌디훅 이후 10년, 무엇이 달라졌나?
2022년 8월 1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5월, 텍사스주 유발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뒤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려한 것처럼 미국 사회는 이번에도 총기 규제에 큰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의회가 가까스로 총기를 살 때 신원조회를 조금 더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하기로 합의했지만, 대법원은 정반대로 한 세기 가까이 이어진 뉴욕주의 총기규제 법안을 위헌이라고 판결했죠.

오늘 소개하는 글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지난 5월 30일 쓴 글입니다.

 

지난 24일 미국 텍사스주 유발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어린이 19명을 포함, 총 21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악몽처럼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낯설지 않은 데자뷰이기도 했습니다. 10년 전,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판에 박은 듯 비슷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희생된 사건처럼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사이 미국에서는 크고 작은 총기 난사 사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끊이지 않는 비극에 총기 규제를 주장해온 이들은 샌디훅 이후 변한 것이 전혀 없다며 개탄했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트위터를 통해 샌디훅 이후 10년이 흐르는 동안 미국은 오늘의 비극을 예방할 수 있던 행동을 취하는 데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며, 총기 로비와 교착상태에 빠진 정치권 탓에 미국이 멈춰있다고 비난했죠. 뉴스페퍼민트는 창간 이후 꾸준히 미국의 총기 문제와 관련된 글들을 소개해왔습니다.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 사이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면, 과거의 글들이 여전히 유효할지 모릅니다.

샌디훅 사건 직후인 2012년 12월 17일에는 총기 규제에 관해 퓨리서치 센터가 한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가장 최근(2012년 6월)에 한 여론조사를 보면, 총기 소유권과 총기 규제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에 답변이 46%대 47%로 팽팽히갈렸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지지하는 당에 따라 총기 규제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지 정당에 따라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이 점점 더 극명하게 나뉘는 점이 최근 들어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최근에는 여론이 달라졌을까요? CBS와 유거브(YouGov)가 지난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총기 규제가 지금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54%였습니다. 30%는 현행 유지를, 16%는 규제 완화를 지지한다고 답했습니다. 지지하는 정당에 따른 차이는 여전히 뚜렷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한 이는 79%나 됐지만,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 총기를 더 규제해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죠.

충격적인 사건에도 왜 여론은 크게 뒤집히지 않을까요? 2013년 3월에 소개한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전미총기협회(NRA)의 변치 않는 막강한 영향력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로비 단체는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나는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자양분 삼고 있다는 설명이죠. 이들이 활용하는 ‘공포’라는 키워드 덕분에 자기방어와 보호를 위해 총기를 소유하겠다는 미국인들의 비율은 굳건합니다.

샌디훅 직후 NRA 회원 수가 10만 명 증가했다는 소식도 아이러니한 충격을 줬는데요, 이 소식이 총기 규제론자들에게 “포스트 샌디훅 절망편”이었다면, 샌디훅 16개월 이후 총기 규제 단체들이 모은 정치 후원금이 총기 옹호 단체들의 후원금을 앞질렀다는 소식은 “희망편”이었을 겁니다. 전통적으로 총기 옹호 단체들의 자금력은 규제 단체들의 100배가량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그것이 뒤집힌 셈이니까요.

 

지금은 어떨까요? 지난 5월 26일자 CBS 보도에 따르면 NRA의 총수입은 2016년 3억 6700만 달러에서 2020년 2억 8200만 달러로 23%나 감소했습니다. 2018년 600만 명에 달하던 회원 수도 2021년 기준 490만 명으로 줄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단체의 방만하고 비윤리적인 재정 운영을 원인으로 꼽고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하다고 분석합니다. 지난 27일 열린 NRA 연례 총회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 유력 정치인이 (유발디 총기 난사 이후임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레그 애봇 텍사스 주지사는 유발디 총기 사건 이후 참석을 취소했습니다.

여론만으로 총기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면,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대법원의 역할도 중요할 겁니다. 2014년 2월, 뉴스페퍼민트는 총기 규제를 둘러싼 하급심 세 건의 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을 대법원이 기각했다는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총기 소유에 대한 무제한적 권리를 주장하는 총기 옹호 단체의 소송 행진이 기세가 한풀 꺾였다는 내용이었죠. 현재 미국 대법원은 뉴욕주 총기 소지 관련법에 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는데, 총기 난사 사건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만큼 이 판결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미국 언론의 총기 난사 사건 보도 행태를 다룬 애틀란틱 기사를 소개했습니다. 2018년 플로리다주 파크랜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보도 행태에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반짝 보도 이후 다른 화제에 밀려 사라지는 대신, 총기 규제 활동가가 되어 거리로 나선 생존 학생들이 주목받으면서 장장 16일간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범인에게 불필요한 서사와 유명세를 부여한다는 비난을 받았던 범인 프로파일링 기사가 줄어들고, 희생자들에 대한 기사, 규제 개혁에 대한 기사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이번 사건을 미국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보는 것도 미국 사회와 총기 문제의 향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