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아마존 노동조합 앞에 놓인 과제들
2022년 7월 1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4월 11일에 쓴 글입니다.

이달 초 30년 가까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 온 아마존에서 첫 노조가 탄생했습니다. 뉴욕시의 다섯 개 보로(borough, 서울의 구(區)에 해당) 가운데 하나인 스테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fulfillment center)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표해 협상에 나설 단체로 노동조합을 선택한 겁니다. 지난해 말 스타벅스 미국 직영 매장에서 바리스타들이 처음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한 데 이어 미국 노조 역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로 기록될 만한 사건입니다.

아마존 물류창고. 사진=위키미디어 커먼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과 이를 막아선 아마존의 싸움은 전형적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습니다. 엄청난 돈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총동원한 사측에 맞서 물류창고 노동자이자 절친 사이이기도 한 크리스티안 스몰스와 데릭 팔머가 어떻게 과반의 찬성표를 끌어냈는지 뉴욕타임스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막전 막후를 조명했습니다. 이 기사를 포함해 관련 기사를 꼼꼼히 읽고 우리말로 정리한 기사 가운데는 경향신문의 기사가 돋보였습니다.

노동조합 설립 투표가 과반의 찬성표를 얻어 통과된 건 분명 역사적인 일이지만, 실제로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당장 아마존은 노조 설립을 주도한 이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반박과 함께 투표 절차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투표를 다시 해야 한다고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에 항소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핵심적인 역할은  오늘은 아마존 노동자들이 투표 결과대로 노동조합을 세우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무언지, 또 이번 투표가 팬데믹 이후 미국 노동운동에 어떤 파급력을 지닐지에 관해 하버드대학 신문인 하버드 가제트(Harvard Gazette)가 경제학과의 래리 카츠(Lawrence Katz) 교수와 나눈 대담을 추렸습니다.

노동조합의 핵심은 단체 협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 JFK8에서 일하는 노동자 스몰스는 코로나19 초기에 사측이 노동자의 건강을 전혀 배려하지 않자, 여기에 항의하는 작업 중단(walkout)을 주도했습니다. 사측의 답변은 해고였습니다. 부당한 해고에 맞서 사측과 싸워야 했던 스몰스는 자신에게 협상력이 너무 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노동조합을 꾸리기로 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을 대표해 협상에 나설 노동조합의 설립에 필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카츠 교수는 아마존이 투표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전망하면서도 이번 결과는 특히 풀뿌리 조직을 통해 노동조합을 새로 꾸리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존은 월마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이며, 시가총액이 가장 높은 회사 중 하나입니다. 대부분 미국 기업이 그렇듯 시작부터 ‘무노조 경영’을 철칙으로 여겨 왔고, 노동조합이 설립될 것 같은 기미만 보이면 회사 차원에서 일찌감치 싹을 잘라 왔죠. 이번에도 스몰스가 작업 중단을 주도하자 아마존은 ‘사내 매뉴얼’대로 10개 부처가 동원된 대응팀을 꾸렸습니다. 노동자의 요구를 “정당한 경제 활동을 방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매뉴얼이었죠. 대응팀 중에는 군인 출신들로 구성된 보안요원들도 있었습니다.

투표 결과 JFK8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노동조합을 꾸리는 데 찬성했지만, 아마존이 꺼내 들 수 있는 카드는 아직 많습니다. 투표 과정이나 절차를 문제 삼을 수 있고, 협상 테이블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일일이 거절하면서 시간을 끌 수도 있습니다.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 Act)에 따라 노동조합을 꾸리는 건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노조 설립 투표에서 동료 노동자들을 설득해 과반을 확보하는 일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어 왔습니다. 노조에 우호적인 노동자들에게 크고 작은 불이익을 주거나 적당한 구실을 붙여 해고하는 일도 잦았고, 아예 이런 일을 최대한 잡음 없이 처리하는 데 특화된 컨설턴트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노조 설립에 과반의 찬성표를 얻고도 사측과 첫 단체 협약을 맺지 못한 사례가 전체의 30%에 육박합니다. 단체 협약을 체결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존재 이유를 위협받고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측은 노동자들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기를 끈질기게 기다립니다.

단체 협약이 없는 상태에선 노조가 조합비를 거둘 수도, 노동자들을 노조에 자동 가입시킬 수도 없습니다. 특히 노동권리법(right to work)이 제정된 미국 28개 주에서는 노동조합이 자동으로 노동자를 노동조합에 가입시킬 수 없고, 월급에서 노동조합비를 공제해 미리 거둬갈 수도 없습니다. (뉴욕주는 노동권리법이 없는 주입니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크게 제약하는 법에 노동권리법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그만큼 미국 의회 내에서 반(反)노조 기류가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해당 법은 ‘노조 가입 의무화 금지법’ 정도로 옮기는 게 더 정확한 번역일 겁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뿐 아니라 언론사인 콘데나스트(Condé Nast), 뉴욕타임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노동운동이 중흥기를 맞았다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지난 2년 동안은 노조 설립 투표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지난달은 근 10년 사이 가장 투표가 활발했던 달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제대로 된 노조가 꾸려진 적 없던 산업 분야에서 노조 설립이 시도됐고, 쟁의나 파업이 최근 들어 잦아진 점은 눈에 띕니다. 그러나 카츠 교수는 이것이 현재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를 찾는 수요가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진단합니다. 노동자 공급이 부족하면 파업에 나섰다가 최악의 경우 해고되더라도 다른 일자리를 상대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카츠 교수는 다음번 경기 침체가 와서 노동자 수요가 줄고 실업률이 높아질 때도 노조 설립 시도나 쟁의, 파업이 계속 많이 일어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이어온 어마어마한 양적 완화 탓에 대단히 높은 인플레이션이 왔고, 이를 잡으려면 경기 침체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에게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사측과 최대한 빨리 단체 협약을 맺는 일입니다. 아마존은 아마도 최대한 시간을 끌며 동력이 시들기를, 또 JFK8에 쏠린 전국적인 관심이 줄어들기를 기다릴 겁니다.

지금은 여론도 대체로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이지만, 이 또한 언제 바뀔지 모릅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영국의 대처 총리가 인플레이션과 생산성 저하, 파업의 원흉으로 노동조합을 지목하면서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았던 경험을 노조가 탐탁지 않은 기업, 정부는 재현하고자 할 겁니다. 그래서 노조에 우호적인 지금의 여론이 일시적인 건지, 아니면 팬데믹을 거치며 노동자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과 현행 제도에 실망한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꿨기 때문인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