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침략국 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빅테크 기업들
2022년 6월 23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스타링크의 인터넷 서비스가 우크라이나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터미널이 우크라이나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테슬라와 스페이스X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 혁신부 장관인 미하일로 페데로프(Mykhailo Fedorov)에게 답한 트윗입니다. 스타링크의 저궤도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우크라이나에 연결된 것이죠. 인터넷망을 마비시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혼란을 유발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를 점령했다는 가짜뉴스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퍼뜨려 전쟁을 조기에 끝내려던 푸틴의 계획을 무산시키는 데 역할을 한 장면입니다.

스타링크 터미널. 사진=페데로프 부총리 트윗

스타링크의 인터넷 서비스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트위터, 유튜브, 틱톡 등 인터넷 서비스는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전 세계에 침략 전쟁의 참상을 알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로의 국제 원조를 이끌고, 러시아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단합을 북돋고 있습니다. 머스크는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의 테슬라 전기차 충전소인 슈퍼차저를 최초로 무료 개방해 우크라이나를 떠나는 피난민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스타링크와 테슬라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벌이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맞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속속 참전했습니다. 글로벌 최대 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가짜뉴스를 막고자 러시아 국영 방송사들의 접속을 제한하고 광고나 수익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트위터는 러시아 매체의 기사에 대한 팩트체크 기능을 강화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계정들을 삭제하고 국영 매체 사이트로 연결하는 트윗에는 경고 문구를 삽입했습니다.

구글 직원들은 러시아의 침략이 알려진 후 머리를 맞대고 우크라이나를 도울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역의 교통 상황을 알려주는 구글맵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러시아가 군사 활동과 군대 이동에 구글맵을 활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러시아 관영 매체의 유튜브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들이 광고를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애플도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페데로프 부총리는 애플의 팀 쿡(Tim Cook) CEO에게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애플은 “러시아의 침공에 깊이 우려하며, 폭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우크라이나에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아이폰, 맥북 등 모든 제품의 판매를 중단하고 애플페이 서비스는 물론 관영 매체의 앱스토어 다운로드 서비스도 막았습니다.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는 우크라이나 인근 국가들의 숙소를 활용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피난민들이 무료 숙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반면 러시아와 침략을 지원한 벨라루스에서는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에어비앤비 이용객들은 우크라이나 내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한 다음 숙소에 묵지 않고 돈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후원하고 있으며, 에어비앤비는 이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의 행동은 국가 주도로 이뤄진 과거와 비교해 전쟁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물론 러시아 군대의 침략 전쟁과 뒤이은 대러시아 경제 제재 등 국가가 전쟁의 양상을 주도하는 흐름 자체는 바뀌지 않았지만, 스타링크, 애플, 구글, 메타 등 빅테크들은 여론전과 정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민간 인공위성 업체들은 실시간으로 전쟁의 참상은 물론, 러시아 탱크의 이동 경로를 속속들이 외부에 알리고 있습니다.

이런 양상은 테크 기업들이 한 국가가 장악할 수 없는 규모와 영향력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일상의 핵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글로벌 서비스는 에너지, 결제 등 일부 영역에서만 선진국과 관광 서비스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애플이 불러온 스마트폰 혁명으로 이제는 우리가 소통하고(소셜네트워크), 쇼핑하고(쇼핑, 결제), 이동(지도, 자율주행)하는 일상이 빅테크 플랫폼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죠.

앞으로 이런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국가가 민영, 국영 통신 기업을 통해 통신망을 끊을 수 있어도 자체 위성 통신을 활용한 플랫폼 서비스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미국 정부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퍼지는 가짜뉴스를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 각종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 플랫폼 기업들이 어떤 면에서 국가보다 더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 무대는 뉴스와 의견이 오가는 공론장이자, 소비와 이동이 이뤄지는 플랫폼 공간입니다.

사진=Unsplash

비단 이번 전쟁뿐만이 아닙니다. 과거 국가와 국영 기업만 참여했던 우주여행, 우주 발사체 산업도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블루 오리진(Blue Origine), 원웹, 멕사 테크놀로지 등 민간 우주여행, 인공위성 민간 사업자들이 우주 산업의 최전선에 나섰습니다. 오히려 정부 주도 시기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기술과 산업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스페이스X와 민간 위성 기업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그간 누적된 변화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과거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금융 시스템에도 변화의 조짐이 목격됩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지지자들과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현지 통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비트코인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의 국민들은 러시아 루블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경제 제재로 달러, 유로 등의 거래가 정지되자,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사재기에 나서 가상화폐의 가격이 한때 급등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확인한 빅테크와 기업의 영향력은 이제 시작인지도 모릅니다. 2001년 이라크 전쟁의 발발을 중계한 일방향 언론과 인터넷, 겨울로 끝난 아랍의 봄의 서막을 열었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거쳐, 2022년의 인터넷 기업들은 침략국의 가짜뉴스를 삭제하고, 침략군의 이동 정보를 세상에 알리고, 사이버 공격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장악한 빅테크 기업들은 앞으로도 디지털 전환, 새로운 금융 시스템, 첨단 기술 변화를 이끌 것입니다. 물리적 공간을 대체하는 메타버스 시대로 넘어가면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입니다. 기업들의 ESG를 강조하는 흐름은 일상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는 데 대한 사회의 당연한 반응이자, 테크 기업들이 막강한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입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