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3월 18일에 쓴 글입니다.
21세기에 사람들을 한껏 들뜨게 했고, 또 한숨 짓게 만든 단어들을 꼽는다면 비트코인은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할 것입니다.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에는 가상화폐를 통해 꿈꾸던 조기퇴직을 이룬 이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가상화폐 투자에 실패해 오랜 기간 저축한 돈을 잃었습니다.
이는 가상화폐의 가격 변동성 때문이며, 거래하기 쉽다는 특징 때문에 변동성이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이는 가상화폐를 버블의 상징인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에 비유하며, 폰지 사기와 피라미드를 같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은 이를 미래의 금이자 인터넷과 가상세계, 나아가 메타버스의 가치저장 수단이며 화폐라고 주장합니다.
사진=Unsplash
가상화폐의 양면성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가상화폐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어느 쪽 편도 아닙니다. 그저 정부와 은행과 같은, 가치를 보장하고 거래를 책임지는 중앙화된 주체가 없기 때문에 피자를 살 수도 있고 금서를 구할 수도 있으며 마약 대금으로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가상화폐의 중립성(neutrality)이라고 합니다.
와어어드는 지난 3월 8일, 이번 전쟁으로 가상화폐가 주장하는 중립성에 의문이 든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우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침공하자 전 세계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가상화폐를 우크라이나 정부나 구호 단체에 보내 후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가상화폐가 국경을 초월한 전송 수단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가상화폐의 특성이 긍정적으로 활용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 역시 자국을 향한 경제 제재를 가상화폐를 이용해 회피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는 가상화폐가 규제 바깥에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자 각국 정부는 자국 거래소에 러시아와 관련된 계좌를 동결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정부의 조치 자체가 비록 전쟁을 막는다는 목적에는 부합하지만, 가상화폐가 주장하는 중립성에는 분명 역행하는 면이 있습니다. 이런 조치가 가능한 것은 거래소라는 기관이 블록체인 세계의 첫 번째 신조인 ‘탈중앙화’와는 거리가 먼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거래소는 정부가 가치를 보장하는 법정화폐와 가상화폐의 교환이 가능한 장소이기 때문에 각국의 정부는 불법 자금의 세탁 방지와 탈세를 막기 위해 신원이 확인된 이들만 법정 화폐를 인출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시 익명성이라는, 가상화폐가 주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특성과 충돌합니다. 물론 이는 가상화폐의 중요한 사상 중 하나인 무정부주의와 법정화폐 기반인 정부가 충돌하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블록체인은 거래의 기록을 통해 화폐의 구실을 하게 하는 그 특성상 투명성을 근본적인 특징으로 합니다. 실제로 이를 회피하기 위한 기술이 들어간 몇몇 네트워크를 제외하면, 블록체인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거래가 투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누구나 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투명성 때문에 와이어드는 미국 국세청 출신이며 현재 바이넌스의 정보부장을 맡고 있는 티그란 감바리안의 말을 인용해 “암호화폐는 정부가 경제 제재를 피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암호화폐를 러시아 외의 다른 국가에서 해당 국가의 법정화폐로 바꾸려 할 때 그 규모가 충분히 클 경우 바로 해당 정부가 이를 조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들은 적어도 암호화폐가 주장하는 익명성, 투명성 그리고 중립성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사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중립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말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전쟁이라는, 오늘날 몇 남지 않은 보편적인 반인륜적 사건에 대해 암호화폐의 중립성은 어떠해야 하는가가 더 정확한 질문일 것입니다.
부테린을 비롯해 많은 이가 올린 푸른 하늘에 노란 꽃이 펼쳐진 들판 사진. 이 사진은 분명 중립적이지만, 또 다분히 중립적이지 않은, 2022년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기억될 겁니다.
기사의 말미에는 러시아 출신의 캐나다인이며 이더리움을 개발한 비탈릭 부테린이 트위터에 푸틴을 비판하며 남긴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억하길. 이더리움은 중립적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