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스위프트(SWIFT), 러시아 금융기관들 퇴출한다
2022년 6월 6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 3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소개한 글을 시차를 두고 발행하고 있는 뉴스페퍼민트의 달력도 이제 2월 말이 됐습니다. 한동안 전쟁 얘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은 알지만 그땐 몰랐던 게 있다면 어떤 것인지 찾아보며 예전 글을 읽는 것도 한 가지 흥미로운 방법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끝내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전쟁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20만 대군과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순식간에 수도 키이우(Kyiv)를 점령하고 항복을 받아내려던 푸틴의 계획은 우크라이나군과 시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전황을 전하는 채널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이 검열에 맞서 세운 독립 언론사 키이우 인디펜던트를 추천합니다. 러시아 정부 웹사이트와 방송국들은 어나니머스 해커들의 공격에 마비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현지 시각으로 오늘(26일) 나토 주요 회원국인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러시아 금융기관들을 스위프트(SWIFT)에서 퇴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일요일 아침에 온 모닝브루 뉴스레터만 봐도 스위프트 제재를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실렸지만, 러시아가 공격을 멈추지 않자 곧바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제재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 유럽연합 회원국 4개국(헝가리, 이탈리아, 키프로스, 독일)이 러시아 은행들의 스위프트 퇴출에 반대했지만, 이들이 뜻을 바꾸면서 러시아 은행들은 전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스위프트가 무엇인지, 스위프트 퇴출이 어떤 효과를 낳을지 정리했습니다.

 

스위프트(SWIFT)는 벨기에에 본사를 둔 서비스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s”의 앞글자를 딴 말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국제 은행 간 통신 협회”입니다. 글자 그대로 전 세계 은행들이 서로 거래할 때 이용하는 통신 표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위프트가 실제로 자금을 전송하거나 보관하지 않지만, 서로 원활히 연락할 수 없다면 금융 거래가 지체돼 전체 시스템이 마비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는 은행 계좌에서 미국 은행 계좌로 돈을 보내는 경우를 생각해 보죠. 은행에서 1만 달러를 송금하면, 실제로 1만 달러 현금을 배나 비행기에 실어서 나르지 않습니다. 대신 보내는 쪽 계좌에서 1만 달러를 제하고, 받는 쪽 계좌에 1만 달러를 더하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죠. 이 메시지를 보내는 표준이 스위프트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 은행으로 송금할 때 해당 은행의 스위프트 코드(SWIFT Code)를 알아야 합니다.

모닝브루는 스위프트를 “은행들을 위한 쥐메일(Gmail of banking)”에 비유했는데, 은행들이 거래할 때 쓰는 ‘단톡방’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현재 은행 간 거래에 필요한 메시지를 안심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 톡방은 전 세계 1만 1천여 개 금융기관이 가입한 스위프트 톡방밖에 없습니다. 오늘 미국,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캐나다 정부는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 금융기관을 스위프트 단톡방에서 쫓아내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는 GDP의 적잖은 부분을 천연가스와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와 밀 등 농산물, 광물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국가 별로 보면 스위프트 메시지 이용량이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스위프트에서 배제되면 러시아 기업들은 (러시아 은행을 통해) 무역 대금을 정산하지 못하고, 금융 전반이 마비될 겁니다.

이렇게 확실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강력한 제재임에도 그동안 스위프트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퇴출하지 못하리란 전망이 나왔던 건 유럽 많은 나라의 에너지 수급에 러시아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루아침에 천연가스 공급이 끊겨버리면 에너지 대란이 우려될 만큼 대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있습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 화살표의 굵기는 해당 국가의 천연가스 사용량 중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에너지의 비중을 뜻한다. 앞서 스위프트 퇴출에 반대한 나라들(독일, 이탈리아, 헝가리)의 화살표가 상대적으로 굵다. 출처=뉴욕타임스 업샷

푸틴 대통령이 국제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침공을 감행한 배경에는 천연가스 공급을 일종의 볼모로 잡고 있는 한 유럽과 미국이 한목소리를 내고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이 계산은 오늘 공동성명으로 빗나간 셈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러시아에 에너지나 주요 수입품을 딱히 의존하지 않는 미국이 마음 편히 스위프트 제재를 강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미국이 우려하는 건 전 세계 준비통화(reserve currency)로서 달러의 위상입니다. 스위프트를 통해 일어나는 은행 간 거래는 대부분 미국 달러로 이뤄지는데,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쫓아내면 러시아는 대체 통신 표준을 찾을 테고, 거기서는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가 결제에 사용되므로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물론 금융 통신 표준도 실제 메신저 서비스와 비슷해서 네트워크 효과가 중요합니다. 즉 이용자가 많은 서비스에만 계속 이용자가 몰리기 마련이죠.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SPFS라는 금융 통신 표준은 러시아 은행들도 잘 안 씁니다. 중국이 만든 CIPS라는 대체 통신 표준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낫습니다. 2021년 현재 중국 밖에서도 CIPS를 이용하는 금융 기관은 613개입니다. 그러나 거래 금액을 비교해보면 CIPS는 스위프트의 0.3%에 불과하죠.

몇 년 전부터 새로운 대안으로 블록체인 기반 금융 통신 표준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물론 중국도 달러의 위상을 떨어트릴 수만 있다면 새로운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려 할 겁니다. 다만 이론적으로는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블록체인 기반 금융 통신 표준을 충분한 고객을 확보한 실제 서비스로 구현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준비통화 달러의 위상이 공고할수록 누리는 이득이 많은 미국이 대체재의 등장을 그냥 두고 볼 가능성도 작습니다.

러시아를 향한 경제 제재를 주도해 온 미국은 스위프트 퇴출 전에도 이미 러시아 주요 은행과 푸틴 등 주요 인사를 제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국과 동맹국의 사법권이 미치는 지역에서 제재 대상 은행이나 인사의 자금을 동결하고 거래를 금지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스위프트 퇴출이 추가된 건데, 제재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