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발사된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은 100억 달러 이상이 든 인류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망원경은 지구와 달의 거리보다 4배 더 먼 곳에 머물며 10년 이상 우주를 관측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우주 최초의 별과 은하를 관측하고, 은하와 별과 행성계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파악하며, 생명의 기원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국장이며 책임자인 빌 넬슨이 이를 축하하는 공식 영상에서 시편 19편의 첫 구절을 읽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물론 이것이 왜 문제인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그 문제의 한 부분입니다.
미국의 종교 및 과학 역사가인 아담 R. 샤피로는 과학 웹진 언다크에서 이번 일이 미국의 우주과학과 종교의 밀접한 관계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는 우주과학의 역사에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우주과학은 1950년대 미국과 구소련 간의 냉전 시기에 이데올로기와 체제 대결이 과학 기술의 대결로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했습니다. 특히 우주과학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했고,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소련은 우주과학의 발전에 국력의 상당 부분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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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점수를 낸 쪽은 소련이었습니다. 잘 알다시피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을 대기권 밖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죠. 당시 소련과 미국은 무신론을 표방한 공산주의 체제와 기독교 전통 위에 서 있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에서도 달랐죠. 가가린을 대기권 밖으로 보낸 소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역사학자인 빅토리아 스몰킨에 따르면, 1962년 미국을 방문한 소련의 두 번째 우주인 게르만 티토프는 “지구를 17바퀴 도는 동안 신이나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소련의 지도자였던 흐루시초프도 미국 기자들에게 우주에 가봤더니 신은 없더라며 농담을 던졌습니다. 곧, 과학의 승리뿐 아니라 종교에 대한 태도 차이에서도 체제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려 한 것이지요.
물론 미국 과학자들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마르크시즘을 토대로 한 전체주의가 자유로운 과학적 탐구를 저해한다고 비판하며,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미국의 장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우주과학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1968년, 달의 궤도를 공전한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달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 창세기 첫 구절 중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빛이 있으라.
당시 미국 무신론자 협회는 이 사건이 수정헌법 1조인 표현의 자유가 이야기하는 권리를 축소했다며, 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 우주비행사들은 더욱 자유롭게 자신들의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샤피로는 케네디, 존슨, 레이건 대통령 역시 우주 계획을 이야기할 때 종교적 표현을 사용했으며, 이를 통해 소련과의 차이를 드러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나사의 빌 넬슨은 1986년 당시 하원의원으로 최초로 우주왕복선을 탔던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에도 성경의 같은 구절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30년 전에는 이상하게 보이지 않던 일을 이제는 누군가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시대가 변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종교와 과학은 종교가 신의 존재, 기적과 같은 비자연적 현상을 주장하는 한 견해를 같이하기 어렵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공개적으로 종교를 비판하고 있으며, 진화생물학자 제리 코인은 “과학과 종교가 전쟁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스티븐 제이 굴드와 같이 과학과 종교가 서로 겹치지 않는 교권(magistra)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종교를 포함한 표현의 자유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권리입니다. 곧 누군가의 종교적 발언이나 행동을 막기 위해서는 그 발언이나 행동이 일어나는 영역과, 그 결과가 미칠 영향을 모두 고려한 기준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는 다른 모든 종교와 사상에도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겠지요.
결국, 핵심은 지난 30년 동안 이런 사회적 기준이 바뀐 데 있을 겁니다. 여기에는 좌우의 종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으며, 특히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기독교가 우파 민족주의와 결합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종교에 대한 마르크시즘의 반감이 좌파 안에 계속 남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쩌면 불평등 때문에, 아니면 SNS 때문에, 아니면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 때문에 두드러지는 양극화된 세계와 이로 인한 불관용이 하나의 이유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