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팬데믹의 한가운데서 공동선을 외치는 이유
2022년 4월 7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쓴 예전 글을 다시 소개할 땐 ‘저때는 얼마 지나고 나면 팬데믹이 끝나 있겠지…’ 하고 기대하던 게 생각납니다. 오늘 소개하는 글도 그렇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이 글을 썼을 땐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을 부리기 전이었습니다. 엔데믹(endemic)에 관한 희망 섞인 이야기가 나오던 때였죠. 안타깝게도 코로나19는 2022년에도 종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일주일 뒤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오미크론 변이 발표의 주요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기도 했네요.

 

툴루즈 경제대학원이 지난 5월 말에 연 “공동선(common good)” 학술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나만 더 소개합니다. 원래는 지난주에 소개한 아스모글루 교수의 좋은 일자리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했는데, 회의를 주최한 툴루즈 경제대학원 장 티롤 교수가 왜 공동선을 이야기하는지 소개한 글을 빠트려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티롤 교수는 우리가 생각이나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사회적으로 공동선을 확충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표를 공유한다면 협력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 공동체, 사회 집단, 국가마다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 때론 서로 같은 목표 때문에 경쟁하거나 부딪칠 일도 있겠지만, 공동선을 우선으로 한다면 잠재적인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율할 수 있으며,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원칙을 세울 수 있다는 겁니다.

티롤 교수는 또 경제학자들이 공동선을 논의하는 학술회의를 여는 건 공동선을 경제학만의 언어로 정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그보다 목적과 수단을 좀 더 명확히 구분하고, 공동선을 확충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지면, 거기에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 경제학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 티롤 교수. 사진=노벨상 위원회

환경 문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탄소세 문제는 공정과 효율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공동선을 원칙으로 삼으면 구체적인 목표를 좀 더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기업은 탄소세를 포함한 다양한 환경 부담금을 더 많은 공동선을 구축하기 위해 각자 몫만큼 치르는 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ESG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 당장 이윤이 조금 줄어드는 걸 감수합니다. 그동안 기업들은 제대로 된 탄소세를 내지 않고 오염물질을 공짜로 배출해왔습니다.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던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는 물류, 항공, 농·어업, 운수업을 비롯해 그동안 정당한 비용을 치르지 않고 환경 오염에 무임승차해 온 수많은 산업의 문제를 공론화했습니다. 그래서 건축, 교통 부문, 또 탄소세가 없는 나라에서 제품을 수입할 때 탄소세를 실질적으로 더 부과하며, 친환경 연구개발(green R&D)에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크리스티안 골리에 교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특정 국가, 한 사회만 잘한다고 공동선을 제대로 구축할 수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얻었습니다. 조세 회피처가 버젓이 있는 한 부유세를 효과적으로 거둬 불평등을 줄이려는 여러 정부의 노력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습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일, 코로나19 백신을 가난한 나라에 빠르게 보급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백신을 보급하는 건 인도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바이러스가 자꾸 퍼져 변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으려는, 선진국으로선 다분히 이기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라도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을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높일 때만 진정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과거에 중요한 의약품 특허를 UN 주도하에 일종의 공동선으로 관리했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전례 없이 빠르게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테크 기업 20개 가운데 11개가 미국 기업, 9개는 중국 기업입니다. 유럽으로서는 혁신에서 뒤처진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다소 씁쓸한 지표라고 할 수 있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유럽은 특히 미국이 기초과학에 성공적으로 투자했던 DARPA(국방고등연구기획청), NSF(국립과학연구기금), NIH(미국 국립보건원) 등의 사례를 참고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 정책과 산업 정책을 짤 때 그 분야와 주제를 잘 아는 전문가의 조언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다만 혁신이 알아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과 함께 불평등을 줄여가는 정책을 함께 처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공동선 학술회의에서 상속세를 현실적으로 부과해 더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재원으로 쓰는 방안을 논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그만한 돈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부자들에게는 아마 재산이 3조 원이든 200조 원이든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별 차이가 없을 재산의 아주 일부만 효과적으로 활용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한다면, 여기서 오는 재분배 효과는 아주 클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교육의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프랑스는 재산세나 상속세율이 모두 높지만, 동시에 세금을 덜 낼 수 있는 편법을 효과적으로 규제하지 못한 측면도 있습니다. 적정 세율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금을 공정하게 징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편법을 막아야 하겠죠. 유럽 대부분 나라에 비하면 미국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너무 못 걷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