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괜찮은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22년 4월 5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툴루즈 경제대학원이 지난 5월 말에 연 “공공재(common good)” 학술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하는 세 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앞서 MIT의 아피짓 베네르지, 에스더 듀플로 교수 부부의 주장을 전한 “팬데믹과 부유세” 이야기를 소개했죠. 또 앵거스 디튼 교수가 지적하는 “절망의 죽음과 두 개의 미국”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드렸고요.

오늘은 계속해서 불평등이 심화해 공공재가 메말라가는 현상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관한 고민을 전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앞서 소개한 석학들처럼 노벨 경제학상을 아직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군을 꼽을 때마다 늘 빠지지 않는 MIT의 정치경제학자 다론 아스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입니다. (심지어 아스모글루 교수의 위키피디아에도 그 점이 언급돼 있습니다.)

경제와 정치를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현실의 데이터를 활용해 두 분야의 상호작용을 날카롭게 분석한 아스모글루 교수는 팟캐스트 아메리카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학자 가운데 한 명일 겁니다. 아스모글루 교수는 툴루즈 경제대학원이 주최한 공공재 학술회의에 참석해서도 괜찮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상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일자리의 양극화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비대해진 자본의 권력, 영향력, 협상력을 사회가 적당히 제한하지 못한다면 괜찮은 일자리가 점점 더 사라져 중산층이 줄어들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고 경고합니다. 이를 위해 아스모글루 교수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변한 노동시장 제도와 새로운 시대에 의미 있는 노동의 가치를 매기는 법에 관해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다론 아스모글루 교수. 사진=MIT

지난 두 편의 인터뷰를 소개할 땐 인터넷에서 글을 찾지 못해 링크를 못 달았는데, 오늘 글을 준비하다가 링크를 찾았습니다. PDF 링크에서 원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유럽의 봉건사회나 오스만 제국, 또는 예전 중국 왕조에서는 엘리트 지배 계층과 기층 대중이 철저히 분리돼 있었습니다. 사회가 조직되고 통치, 기능하는 방식에 대부분 사람은 거의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은 분명 이와 다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기제가 바로 좋은 일자리입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사회적 계층 이동이 활발해지고, 공공재가 더 잘 공급된 데는 좋은 일자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원하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합니다. 고용 계약서도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생활임금은커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일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또한, 지금 하는 일이 승진이나 더 좋은 기회를 찾아갈 때 도움이 될 만한 경력을 쌓게 해준다면 더 좋을 겁니다. 방금 언급한 것들이 모두 좋은 일자리 혹은 괜찮은 일자리를 구성하는 요건입니다. 즉 돈을 많이 번다고 반드시 그 직업이 좋은 일자리인 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그 일을 하면서 세상에, 사회와 경제에 무언가 이바지하고 있다고 느끼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약 35년 동안 미국과 서유럽 국가에는 좋은 일자리가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노동자들도 넉넉한 임금이 보장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습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주 튼튼했던 시절이죠. 경제는 빠르게, 그러나 동시에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교육 수준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출신 배경이 다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고루 올랐습니다. 광산이든 사무실이든 시장이든, 공장 생산라인이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내가 노동을 통해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오늘날 상황은 여러모로 2차대전 이후와 다릅니다. 대학 졸업장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허락된 일자리 가운데 좋은 일자리로 분류할 만한 일자리는 극히 드뭅니다. 갈수록 기준이 높아져서 이제는 괜찮은 일자리 가운데 석사나 박사 학위를 요구하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교육 수준이 낮은 저학력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정체되거나 꾸준히 줄고 있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춰진 프랑스에선 임금이 미국처럼 급감하지 않지만, 대신 일자리 자체가 줄어들어 저학력 노동자들의 실업률이 높아졌습니다.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을 능력 중심 사회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로봇, 소프트웨어,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자동화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경쟁력이 없는 기존 일자리들은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저는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능동적으로 이끌어 온 사회적, 제도적 변화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겪는 기술 변화도 결국은 우리가 치열한 논의를 거쳐 선택한 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50, 60년대만 해도 대부분 기업은 노동자를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원이자 이해관계자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죠. 여기에는 세계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보다 사상의 조류가 변한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이 등장해 시장을 지배하게 된 건데, 바로 기업은 경영자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기업의 목표가 주주와 경영자의 이익을 최대한 많이 내는 데 있다면 그때부터 노동자는 중요한 자원이나 이해관계자가 아니라 비용이자 짐으로 인식됩니다.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낄 수만 있다면 아끼는 게 좋은 다양한 비용 가운데 인건비가 포함된 겁니다.

이런 생각이 보편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1990년대부터 기업들은 이윤이 났을 때 이를 나누는 대상을 확 좁혔습니다. 노동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에서 주주와 경영자의 수익은 급증했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체되거나 깎입니다. 비용을 줄이는 많은 행위에 혁신이란 이름표가 붙으면서 해고도 쉬워졌습니다.

2차대전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 공정과 제조업 현장에서 자동화가 가속화한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노동자들의 생산성도 비약적으로 늘어났고, 새로운 유형의 직업과 기회가 생겼다는 점도 잊어선 안 됩니다. 기술의 변화가 반드시 그 자체로 좋은 일자리를 없애는 절대적인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새로 등장한 기술 못지않게 정부와 사회가 기업에 어떤 인센티브를 줬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선진국, 특히 미국은 상당 부분을 자동화에 기댄 기업들에 너무 많은 기회와 혜택을 줬습니다. 정부가 테크 기업을 적극적으로 우대했다기보다는 이들이 자동화를 이용해 이른바 ‘노동 없는 성장’을 너무 빨리 이룩하도록 방치한 게 문제를 키웠습니다.

구글은 시가총액은 물론이고, GDP에 기여하는 정도에서도 이미 GM을 뛰어넘었습니다. GM은 100만 명 가까운 노동자를 고용한 회사지만, 구글의 직원은 다 합해야 8만 명 정도입니다. 물론 산업 분야가 다르고, 사업 모델이 다른 회사를 일괄적으로 규제해선 안 됩니다. 문제는 전 세계가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구글 같은 모델을 이상적인 표준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데 있습니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 정부가 기술 변화의 영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하고 조율했습니다. 이는 일정 부분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했기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의 협상력이 노동자를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주주의 이익이 가장 중요해졌고, 국제적으로 경쟁이 더 치열해졌으며, 조세 회피처가 많아진 것도 모두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동화 기계나 소프트웨어 등 자본에 매기는 세율은 노동에 매기는 세율보다 훨씬 낮다. 출처=브루킹스 연구소

지금 우리는 노동과 비교했을 때 자본에 사실상 거의 세금을 매기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현재 미국 기업은 자동화 기계나 소프트웨어를 들였을 때 여기에 5%도 안 되는 세금을 냅니다. 반대로 노동자를 고용하면 여기에는 적어도 25%, 때로는 35%에 이르는 돈을 세금으로 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출량이 같다면 비용을 줄이는 쪽을 선택하는 게 당연한 회사가 사람을 덜 뽑고 기계를 들여놓는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 결과 지금 미국은 자동화가 너무 많이 진행돼 버렸습니다. 이는 단순히 일자리의 양극화를 초래해 불평등을 심화할 뿐 아니라, 공공재를 매개로 촘촘히 짜인 사회의 네트워크도 갉아먹습니다.

지나친 자동화를 되돌리고 공공재를 복원할 방법이 있을까요? 문제의 핵심 중에 하나로 지적한 세제를 개편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세제를 고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본은 강력한 협상력을 이용해 전방위 로비를 펼 수 있고, 디지털 시대에 조세 회피처로 돈을 옮기기도 쉬워졌습니다. 그래서 세제 개편은 전 세계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나라가 공조할 때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혁신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고 알아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선 우선 노동을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기업 경영은 물론 사회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핵심 자산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우해야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 질서를 어떻게 구성할지, 또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에 관해 기업들은 물론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관점을 두루 반영한 사회적인 논의를 계속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