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달리기를 잘하는 비결: 딴 생각
2022년 4월 1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우리는 자신의 몸에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 질문에서 권한을 내 의지로 그 부위를 움직일 수 있는가로 정의하면, 우리는 우리 몸에 그리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의지와 무관하게 무릎이 올라가는 무릎 반사 같은 잘 알려진 동작 외에도 심장의 박동이나 소화기관의 운동 역시 우리의 권한 밖에 있는 신체의 움직임입니다. 추울 때 몸을 떨고 더울 때 땀을 흘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우리가 스포츠를 즐기는 중에 나오는 행동들은 어떨까요? 날아오는 공을 야구 배트나 테니스 라켓으로 맞출 때 적어도 우리가 공을 노려보고 그 공을 맞히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동작으로 갈수록 그 답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달리거나 걸을 때 발목이나 무릎의 동작을 신경 쓰는 이는 잘 없을 겁니다. 사실 스포츠에서 일어나는 많은 동작이 그렇지요.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특정한 동작에 신경을 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중 언제 그 스포츠에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사진=Unsplash

지난달 뉴욕타임스에는 우리가 달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을 생각하는 대신 다른 생각을 할 때 그 달리기를 더 잘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미국 녹스빌의 테네시 대학과 이란 테헤란의 샤히드 베헤시티 대학 연구원들은 10여 명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최고 속도의 70%로 6분 동안 달리게 하면서 산소 소비량과 혈류내 젖산을 측정했습니다. 또 달리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이야기하게 했습니다. 한 그룹에는 다리 근육에 집중하라는 지침을 줬고, 두 번째 그룹은 걸음 수를 세도록 하여 계속 몸에 집중하게 했으며, 세 번째 그룹은 어떤 수에서 숫자 3을 계속 빼는 계산을 하며 달리게 했습니다. 이 세 번째 그룹에게는 신체는 뛰고 있지만 정신은 달리기가 아닌 다른 생각을 하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그룹에는 아예 농구 게임 영상을 보여주며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신체적, 감정적 반응 분석 결과, 네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이 가장 달리기를 잘했습니다. 이들은 산소를 최소한으로 소비했고 젖산도 가장 적게 생성했습니다. 스스로 말하는 기분 또한 다른 자신의 몸에 집중한 그룹보다 나았습니다.

사실 이 결과는 “제한적 행동 가설(Constrained Action Hypothesis)”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이는 익숙한 동작의 경우 그 동작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할 때 우리가 이를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이 가설은 다소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이를 지지하는 많은 실험 결과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실험으로는 경험이 많은 골퍼들에게 각각 퍼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면서 퍼팅하게 했을 때보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퍼팅하게 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왔던 실험이 있습니다.

축구 선수에게 발놀림을 생각하면서 드리블을 하라고 할 때보다 발의 움직임을 생각하지 말고 드리블을 시켰을 때 더 드리블을 잘한 실험도 있습니다. (물론 초보자들의 경우 발의 움직임을 생각할 때 더 드리블을 잘했습니다. )

이 가설을 간단히 설명해보면 이렇습니다. 곧, 우리 몸이 그 동작을 알아서 잘하고 있을 때, 만약 우리가 이를 의식할 경우 결과적으로 그 과정을 방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니엘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소개된 시스템 1과 시스템 2는 이 설명을 뒷받침해 줍니다. 여기서 시스템 1은 직관적이고 자동화된 반응이며, 시스템 2는 논리적인 이성이 필요한 행동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어떤 행동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스템을 사용할지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처음 운전을 배울 때 사람들은 시스템 2를 통해 운전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이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운전에 충분히 능숙해진 다음에는 시스템 1의 무의식적 동작으로 운전이 가능해지며, 이제 머릿속으로는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드리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보자가 드리블할 때는 시스템 2가 필요하지만, 이미 드리블이 능숙해져 그 동작을 시스템 1으로 할 수 있게된 축구 선수에게는 괜히 그 동작을 생각하면서 굳이 시스템 1을 건드렸을때 결과가 더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음 그렇다면 다음 번에 조깅을 하러 나갈 때는 이어폰을 꽂고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자전거와 자동차는 조심해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