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콜린 파월이 남긴 것
2022년 3월 23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숨진 뒤 부고 기사들의 내용을 종합해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지난 10월 27일에 쓴 글입니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국무부 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지난 18일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파월은 군인으로서, 관료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9.11 테러 대응 과정에서 제대로 된 근거 없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정부의 최고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는 일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처음부터 내켜 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직위는 물론 높은 인기와 인지도 덕분에 미국 시민들에게, 또 전세계에 전쟁의 명분을 설득하고 “영업”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년에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다며, 후회의 뜻을 여러 차례 밝혔고, 자신의 부고의 첫 부분이 온통 이라크 전쟁 이야기로 채워질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사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부고가 실제로 그렇게 쓰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많은 살상과 파괴는 물론 엄청난 후폭풍을 남긴 전쟁으로, 파월은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 최초의 흑인 합참의장, 최초의 대통령 안보 담당 보좌관으로서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을 개척한 공 역시 마땅히 언급되어야 합니다.

사진=워싱턴포스트

미국 언론도 국무부 장관으로서의 파월과 이라크 전쟁에 초점을 맞춘 기사와 함께, 인종차별이 엄존하는 미국 사회에서 권력의 자리에 오른 흑인으로서 파월이 수행한 선구자적 역할도 조명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피니언란의 칼럼을 통해 파월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매우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짚었습니다.

그는 좋은 선례를 남겨 흑인도 백인과 똑같이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뒤에 오는 흑인들은 오로지 실력과 성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모범적인 각오를 밝히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파월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점이 자신의 편견 없음을 과시하는 방패로 사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법에서 파월은 거리로 나서는 민권운동가 타입보다는, 구조 내에서 성공해 위로 올라간 후에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쪽이었습니다. 의회 내 흑인 교섭단체인 블랙 코커스에 회의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민주당, 공화당이 모두 강해야 흑인의 인권이 개선된다며, 흑인 커뮤니티의 대세와 달리 공화당원을 자처한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칼럼은 명백히 인종차별적인 정책을 펼치는 공화당을 그런 명분으로 지지한 점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2008년 대선에서 파월이 오바마 지지를 선언하여 “우선순위”를 확실히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NPR은 2008년 대선 당시 파월의 오바마 지지에 대해 좀 더 자세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레이스 초반에 파월은 공화당 후보 매케인에게 기부하기도 했지만, 이내 입장을 바꾸어 오바마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당시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무슬림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큰 이슈였는데, 당시 파월은 공화당의 이슬람 혐오를 강하게 비난하면서 오바마는 무슬림이 아니지만, 설사 무슬림이라 해도 그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명확하게 발언했습니다.

파월이 인종 문제에 대해 평생 고수해 온 태도를 생각할 때 그가 무슬림과 멕시코인을 향한 혐오 발언을 발판 삼아 입지를 다진 트럼프에게 반감을 보인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파월은 2020년 대선에서도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항의 시위가 전국을 휩쓸던 2020년, 파월은 NBC 뉴스에 출연해 미국의 인종차별은 현실이며, 대통령은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운동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청년 시절 몸소 경험한 인종 분리 정책을 언급하기도 한 그는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냐는 앵커의 질문에, “그 단어를 쓰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대통령은 분명 비관용적이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파월은 결국 2021년 1월 6일 일어난 폭도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평생 몸담아 온 공화당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