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데이비드 샤펠과 ‘개그가 지켜야 할 선’
2022년 3월 17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미국의 인기 코미디언 데이비드 샤펠(Dave Chappelle)의 새로운 넷플릭스 쇼 “더 클로저(The Closer)”가 공개 2주 만에 LGBTQ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다는 지적과 함께, 불만을 표한 직원들이 정직되거나 해고되고 넷플릭스 대표가 성명을 발표하는 등 사태가 격화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샤펠은 흑인을 향한 인종차별에 대해 영리하고 날카로운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으로, 평단의 찬사와 부를 모두 거머쥔 인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과 성소수자를 향한 조롱과 혐오를 주 무기로 삼아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신작 “더 클로저”에서 그는 작정한 듯 자신을 향한 공격을 주제로 삼았는데, 진정한 반성은커녕 자신을 피해자로 포지셔닝하면서 계속해서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비판의 목소리입니다.

데이비드 샤펠의 쇼 “더 클로저”. 사진=넷플릭스 갈무리

넷플릭스 내부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지난 7일, 넷플릭스 소속의 한 엔지니어가 트위터에 “더 클로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장문의 타래를 올렸습니다. 그는 정직당했지만, 트위터에 글을 올린 것과 인사 조처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성명이 나오고 하루 만에 정직 처분이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뒤에는 데이비드 샤펠 쇼에 글로벌 히트작 시리즈 “오징어 게임”보다 더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다는 자료가 유출돼 기사화되었고, 이 자료를 유출한 직원은 해고되기도 했습니다.

넷플릭스 본사의 트랜스젠더 직원 모임은 오는 20일 파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CEO 테드 사란도스는 지난 8일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넷플릭스는 혐오나 폭력을 조장하는 콘텐츠를 허용하지 않지만, ”더 클로저“가 그 선을 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며, “스탠드업 코미디 장르 자체가 비열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좋아하는 주요 장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논란이 있지만 여전히 서비스되고 있는 다른 작품들(“큐디스”, “루머의 루머의 루머”, “365일”)도 있고,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들(“오티스의 비밀상담소”, “컨트롤 Z”, “디스클로저”)를 예로 들면서 플랫폼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더 많은 목소리를 담기 위해 넷플릭스가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란도스는 이어 콘텐츠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표현의 자유 수준과 업무 환경에서 적용되는 기준은 엄연히 다르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 이상 비평은 피할 수 없습니다. 작품의 화제성이 높으면 비평도 화제가 됩니다. 슬레이트는 선임 에디터의 리뷰를 통해, 샤펠의 개그는 흑인, 특히 흑인 남성으로서 자신의 좁은 경험을 기반으로 하며, 다른 소수자에 대한 공감이 모자란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미국 역사에서 흑인 집단의 고난을 최상위의 고난으로 두고, 나머지 소수자 집단의 어려움을 덜 고통스러운 것, 또는 비교적 빨리 극복된 문제로 치부하는 그의 고질적인 세계관은 인종적 소수와 다른 소수자 집단의 교차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뉴욕타임스도 퀴어이자 유색 인종 정체성을 가진 유명 작가 록샌 게이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게이는 “데이브 샤펠의 나약한 자아”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예민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문화가 있지만,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발끈하는 쪽은 오히려 샤펠 본인이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또 샤펠의 개그는 다양한 소수자 집단 간에 싸움을 붙이는 격이라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조롱은 가장 낮게 달린 과일, 즉 가장 쉬운 상대만 골라 공격하는 행태로, 보수적인 베이비부머를 연상시키는 개그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국에서 딱히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고,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의 핵심인 사회, 문화적 뉘앙스는 언어와 국경의 장벽을 넘기 어렵습니다. 미국 언론을 통해 체감할 수 있는 논란의 크기가 우리나라 언론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사회 정의 운동의 교차성 이슈에서부터 유머와 혐오 사이에서 선은 어디에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 플랫폼이 콘텐츠에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