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노벨 경제학상, ‘신뢰성 혁명’의 주역들에게
2022년 3월 15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지난해 10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연구와 생애를 정리해 소개한 글입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UC 버클리의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 교수, MIT의 조시 앵그리스트(Joshua D. Angrist) 교수, 그리고 스탠포드대학교의 귀도 임벤스(Guido W. Imbens) 교수가 함께 받았습니다.

출처=노벨상 위원회 홈페이지 갈무리.

특이한 점은 세 명의 수상자에게 상의 지분을 1/3씩 주지 않고, 데이비드 카드 교수에게 절반을, 나머지 두 교수에게 1/4씩 준 겁니다. 아마도 카드 교수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많은 연구를 함께 한 고(故) 앨런 크루거(Alan Krueger) 교수를 염두에 둔 발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 고인은 노벨상 수상에서 제외됩니다. 앨런 크루거 교수는 2019년 자살로 사망했습니다.)

크루거 교수가 오래 몸담았던 프린스턴대학교는 노벨 경제학상 발표 소식을 전하며, 카드 교수와 많은 연구를 함께한 크루거 교수의 이력을 다시 조명하기도 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노동경제학에서 큰 업적을 남긴 카드 교수와 사회 현상에서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방법론을 확립하는 데 공을 세운 앵그리스트, 임벤스 교수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보통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는 자연과학에서 하듯 통제된 환경에서 무작위 실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실험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많고, 가능하더라도 윤리적인 이유로 실험을 해선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자연과학의 실험과 최대한 비슷하게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냈고, 이를 현실에 적용해 검증해 왔습니다.

우리는 사회 현상 속의 인과관계를 과거보다 더 잘 규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 노벨 경제학상 심사위원회의 피터 프레드릭손 위원장

올해 수상자들은 여기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카드 교수가 크루거 교수와 함께 쓴 최저임금 관련 고전이 된 논문이 대표적입니다. 보통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어든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이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통념이 됐죠.

두 교수는 서로 맞닿아 있는 뉴저지, 펜실베니아 두 주에서 일어난 정책 변화를 자연 실험으로 삼았습니다. 뉴저지주는 최저임금을 시급 5.05달러로 올렸고, 펜실배니아주는 그대로 시급을 4.25달러로 유지했습니다. 주 접경 지역에 있는 패스트푸드 체인들의 고용을 비교해봤더니, 교과서의 설명, 통념과 달리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고용이 줄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데이터로 모아 통념을 검증한 논문은 고전이 됐고, 으로도 나왔습니다.

카드 교수는 또 1980년 미국 마이애미에 갑자기 쿠바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됐을 때 통념과 달리 기존 저숙련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거나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해내기도 했습니다.

 

앵그리스트 교수의 수많은 연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연구는 베트남전쟁 때 징집돼 군에 복무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이후 소득을 비교한 연구입니다. 특히 자원해 입대한 사람 말고, 징병 대상이 돼 군대에 복무한 사람과 징병 대상에서 제외된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나중에 번 소득을 비교했는데, 군에 복무한 사람의 소득이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보다 낮았습니다.

임벤스 교수의 연구 가운데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는지 살펴본 연구가 유명한데, 복권에 당첨됐다고 하던 일을 그만두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회과학 연구가 그렇듯 세 교수의 연구들에도 수많은 반론이 제기됐고,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인 주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 교수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을 통해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론을 구축,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입니다.

 

앵그리스트 교수는 지난 2010년에 쓴 에서 이런 방법론의 혁신을 “신뢰성 혁명(credibility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신뢰성 혁명은 경제학자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이론과 주장을 검증하는 방법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겁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이 점을 언급하며, 방법론의 혁신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썼습니다.

크루그먼 교수는 특히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 무턱대고 할 게 아니라 데이터를 꼼꼼히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검증한 뒤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야 한다며,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확립한 자연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