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뉴스룸의 다양성, 성과와 과제
tags : #BBC, #다양성, #방송, #언론, #여성, #유색인종, #패럴림픽 2022년 2월 22일 | By: eyesopen1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막을 내렸습니다. 보통 패럴림픽이 곧바로 시작되지만, 올해 베이징 패럴림픽은 2주간 숨을 고른 뒤 3월 4일에 개막합니다. 지난해 도쿄 패럴림픽 기간에 뉴스룸의 다양성과 관련해 썼던 글을 소개합니다.
KBS가 이번 도쿄 패럴림픽 기간에 중계방송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고, 휠체어를 탄 최국화 앵커가 저녁 메인뉴스에서 패럴림픽 소식을 전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KBS는 지난 2011년부터 한국 방송사 중 처음으로 장애인 앵커 선발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2019년에는 지상파 최초로 여성 앵커에게 메인뉴스를 맡기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나이 많은 남성 메인 앵커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 보조 앵커 구도가 익숙한 뉴스룸에도 작지만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뉴스 방송 화면이 사회의 권력 구도를 그대로 반영해 온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닙니다. 2015년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뉴스가 인용하는 전문가 가운데 여성 비율은 19%, 보도하는 기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37%에 불과했습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17년 “50:50 프로젝트”를 시작해, 여성 출연자의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리고, 소수인종과 장애인의 출연 비율도 차차 높이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단순히 출연자의 숫자를 맞추는 일뿐 아니라 여성이 과소대표되는 분야는 없는지, 방송 아이템 선정에서부터 성차별적인 요소가 없는지를 꼼꼼하게 살피고, 다양한 목소리를 전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BBC가 모니터링하는 데이터에는 출연자뿐 아니라 BBC 교향악단 단원, 전화 연결 대상,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사진까지도 포함됩니다. BBC는 모니터링 1년 만에 출연자 성비가 50:50인 프로그램이 27%에서 74%로 늘어났다며 성취를 자랑했고, 2020 3월 기준 78%의 프로그램이 2년 이상 50:50 성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CNN도 지난 8월 17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 미디어계의 달라진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백인 남성들이 이끌어 오던 뉴스 방송국 ABC와 MSNBC에 최초의 흑인 여성 사장이 등장했고, 틴보그,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같은 매체에서도 유색 인종 편집장이 탄생했습니다. 로이터 통신과 워싱턴포스트도 사상 첫 여성 편집국장을 맞이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 니먼 랩(Nieman Lab)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20대 신문 가운데 백인 남성이 편집국장인 곳이 7군데이고, 12개 신문사에서 편집국장은 여성, 유색인종, 또는 여성 유색인종입니다.
조직의 인종, 성별, 문화적 다양성이 성과 및 역량과 직결된다는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뉴스룸이 다양성을 갖추어야 하는 이유에는 윤리적, 철학적 명분도 추가될 것입니다. 조직의 다양성 목표를 수립하고 측정하는 도구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닐슨은 콘텐츠 체작사, 배포사, 광고사가 다양한 집단이 등장하는 스크린 타임을 측정하는 툴을 개발했고, 블룸버그도 공기업이 정책과 고용, 투명성 등을 기준으로 성평등을 얼마나 추구하고 있는지 살피는 성평등지수(GEI)를 도입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대의명분을 근거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시청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불미스러운 사태나 위기가 발생하자 수습책 차원에서 다소 급작스러운 변화가 이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BBC의 경우 영국에서 2017년 임금 격차 해소법이 통과되면서 공공기관으로서 감사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임원급 여성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하면서 50:50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해 동안 전 세계를 휩쓴 “미투” 성범죄 고발 운동,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반대 운동 역시 여성, 유색인종 CEO와 편집장들의 등장을 불러온 요인일 것입니다. 실제로 <틴 보그>의 현 편집장은 동성애 혐오, 인종차별 발언으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전임자로부터 자리를 이어받은 유색인종 여성입니다. 분명히 진보가 이루어졌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저널리스트들의 번아웃이 극에 달하고 미디어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 상황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넘겨받은 이들은 위기 상황 속에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합니다. 여기에 “최초”라는 상징적인 타이틀과 높은 위치에 올랐지만 조직 전체에서는 여전히 소수인 상황은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대중의 인식 변화도 함께 가야 할 부분입니다. BBC의 시청자 조사 결과, 55세 이상 응답자 6명 가운데 1명은 여성 출연자가 늘어나서 BBC를 덜 보게 되었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