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 칼럼] 아프가니스탄, 2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2022년 2월 14일  |  By:   |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  No Comment

취임 첫 해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장 낮았던 순간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 잇단 혼선을 빚은 직후였습니다. 반년이 지난 지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문제를 놓고 미국의 군사, 외교 역량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오늘은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8월 25일에 썼던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올렸습니다.


미국이 또 한 번 전쟁에서 졌습니다.

요즘 미국 언론을 보면 온통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뿐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의 전력,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능력을 잇달아 오판한 결과 섣불리 철군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이렇게 빨리 진격할 줄 몰랐던 미국은 부랴부랴 탈레반에 8월 31일로 정한 민간인의 아프가니스탄 출국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탈레반이 이를 거절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남은 일주일 동안 미국인을 최우선으로 탈출시키는 작전을 벌이고 있지만, 기한 내에 미국인을 모두 안전히 귀국길에 오르게 할 수 있을지, 또 미군을 도운 통역사를 비롯한 아프간 국민의 안전은 보장할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코로나19 백신 보급이나 경제 회복 등 호재에 힘입어 비교적 순항하던 바이든 행정부는 1월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위기에 빠졌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는 미국인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바이든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공공연히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 중간선거에서는 야당인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탄핵은 시간문제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많은 언론이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 실패나 탈레반의 위협을 왜 미리 감지하지 못했는지와 같은 ‘지금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계를 앞으로 돌려보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오래전부터 미국이 이길 수 없는 전쟁으로 굳어졌습니다. 바이든이 아니라 누가 대통령이었더라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떻게 패배하느냐를 선택할 일만 남았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였고, 어쩌다 막강한 전력을 갖추고도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끝내지도 못하는 수렁에 빠져 있던 건지를 차분히 분석한 글을 찾아봤습니다. 복스(Vox)의 공동창업자로 오랫동안 복스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칼럼을 쓴 매튜 이글레시아스(Matthew Yglesias)가 지난해 복스를 떠나 서브스택(Substack)을 통해 시작한 블로그 ‘느리고 따분한(Slow Boring)’에 쓴 글에 닿았습니다. 대부분 글은 구독료를 내야 볼 수 있는데, 이 글은 무료로 공개돼 있습니다. 글의 핵심을 추렸습니다.


잇단 실언과 실정으로 얼룩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4년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잊었을지 모르지만, 사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8년도 겉으로 드러난 문제도, 속으로 곪기 시작한 치부도 정말 많았다. 이건 부시 대통령 개인이 나쁜 사람이거나 부시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근본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취임한 지 여덟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9.11 테러가 일어났다. 미국 대통령은 원래 주 정부의 권한이 강한 연방제의 특성상 대내적으로는 권한이 많지 않은 약한 대통령이지만, 대외적으로는 막강한 권한을 지닌다. 그런 미국 대통령에게 취임 첫해 일어난 테러 공격 탓에 여론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며 사실상 전권을 쥐여준다. 부시가 아니라 누구였더라도 세계 최강의 군대를 지휘하는 통수권자로서 군사력을 동원해 어떤 식으로라도 9.11 테러를 일으킨 이들을 향한 보복에 나섰을 것이다.

당시 대다수 미국 사람들은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국제사회도 미국이 어떻게 나서든 이를 제지하거나 견제할 의지도, 힘도 없었다. 여러 강대국이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는 상황이라면 ‘힘의 균형’ 덕분에 미국이 지구 반대편으로 군대를 보내 전쟁을 일으킬 때 다른 나라의 눈치라도 봤을 텐데, 냉전이 끝난 뒤 미국은 견줄 데 없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초강대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20세기 국제 질서의 기본적인 행위자는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은) 국가다. 그러나 알카에다도, 탈레반도 국제사회가 공인한 국가가 아니었다. 무릇 전쟁이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선전포고하고 나서 시작되곤 했는데,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도, 탈레반도 국가가 아니니 선전포고를 할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테러와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만 같은 전쟁이라도 누구를 적으로 설정하고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받아들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부시 행정부가 택한 길은 이기지 못할 전쟁으로 향하는 진창이었다.

다른 식으로 전쟁을 치를 수도 있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를 찾아내 제거한 다음 신속히 돌아올 수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는 탈레반 같은 근본주의 종교 세력이 아니라 다른 야권에 맡기는 것이다.

아니면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가를 아예 다시 세워주는 방법도 있었다. 제도를 이식하고 돌아가게 만들려면 적잖은 인력과 물자가 들겠지만, 확실한 친미 국가를 세워 그 지역의 정세를 관리하는 거점으로 쓰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결과적으로 위의 두 가지 중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다. 우선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 제거하려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 미군은 토라보라(Tora Bora) 지역까지 빈 라덴을 둘러싼 포위망을 좁히는 데 성공했지만, 빈 라덴은 탈출에 성공했다. 첫 번째 방식, 신속하게 적군의 지도자를 제거한 뒤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오는 길은 그렇게 막혔다.

사실 부시 행정부의 군사·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네오콘에겐 미국이 나서 아프가니스탄을 적극적으로 재건하는 두 번째 전쟁 방식도 미덥지 않았다. 들어갈 자원과 품에 비해 성공할 가능성이 낮기도 했고, 무엇보다 네오콘은 이라크를 침공하고 싶어 했다.

 

2001년 당시 미군의 기본 방침 중 하나가 1-4-2-1 원칙이었다. 숫자 하나하나에 뜻이 있는데, 제일 처음의 1은 미국 본토를 철저히 지키는 것이었다. 두 번째 4는 전략적 이해관계가 큰 4개 지역에서 적국의 도발을 봉쇄하는 것을 뜻했다. 세 번째 2와 네 번째 1이 의미하는 건 동시에 전 세계 두 군데에서 전쟁을 치르더라도 모두 승리할 역량을 갖추고, 특히 둘 중 최소한 한 군데에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야 한다는 뜻이었다. 압도적인 승리란 적국의 정권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목표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이라크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한반도에서 북한이 도발하면 남한을 지켜낼 역량을 갖추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군은 전 세계를 전장으로 삼고 신속하게 주요 전력을 이동하는 다양한 전시 동원 훈련을 강화했다.

1-4-2-1 원칙은 부시 행정부에 현실적인 제약으로 작용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전면전을 벌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결국, 이라크를 침공하는 쪽을 택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엔 계속 어정쩡하게 발을 걸쳐놓은 채로 ‘악의 정권’인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에 친미 국가를 세우기로 한 것이다. 네오콘은 물론 이런 전략을 대중에게 설명하고 여론의 지지를 구하지 않았다. 이미 사실상의 전권이 부시 행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이라크 전쟁과 재건에 드는 자원은 미국의 경제력을 고려하면 당장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부담스러운 부채로 쌓여갔다.

 

이라크에 화력과 자원을 집중하는 사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조용히 발을 뺄 기회를 여러 차례 놓쳤다.

먼저 2001년 12월에 탈레반이 미국에 항복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다. 9.11 테러 직후 미군이 바로 탈레반에 맹공을 퍼부어 탈레반 세력을 칸다하르 밖으로 모두 몰아낸 뒤의 일이었다. 당시 탈레반은 지도자 물라 오마르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면 미국에 항복하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탈레반은 오마르가 탈레반 지도자 자리를 내려놓고 칸다하르에서 조용히, 품위 있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는데, 미국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탈레반과는 일말의 타협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던 때인 만큼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는 결정일지 몰라도, 앞서 살펴본 미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전략적으로는 아쉬운 선택이었다. 두 군데에서 전면전을 벌이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쪽(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 단체의 수장을 제거하는 작전도 실패한 상황이었다. 이때 적군이 먼저 항복할 뜻을 표시한 건 기회일 수 있다. 타협을 거부하고 탈레반의 완전한 제거만 부르짖을 거라면 당연히 권력 공백에 따르는 혼란을 막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하는 데도 자원을 들일 수밖에 없는 게 점령군의 숙명이다.

미국은 이렇게 애매하게 발만 걸친 채 시간을 보냈다. 또한, 자기 입맛에 맞는 정치 체제를 만들고, 미국 말을 잘 듣는 지도자를 앞세우려고 자꾸 정치 과정에 개입해 책임지지 못할 훈수를 뒀다. 탈레반에 대응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물러난 왕을 다시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이나 의원내각제 방식의 정부를 꾸리려던 계획을 한사코 막은 것도 미국이었다. 대신 미국은 친미 성향이 강한 카르자이를 강력한 권한을 지닌 대통령으로 세우려 했고, 그 뜻을 관철했다.

전제 군주가 복귀했어야 한다거나 의원내각제를 택했다면 아프가니스탄이 지금보다 나았을 거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일찌감치 발을 뺐어야 할 전장에 남아 계속 결과적으로 무책임한 훈수만 두는 사이 미국은 스스로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진 것이다. 탈레반과 미군 사이에 전면전만 없었을 뿐 안정적인 정치 제도는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했고,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계륵을 넘어 구제 불능 상태였다. 친미 정권은 무능하고 부패했고, 탈레반은 친미 정권 아래서 보란 듯이 세를 넓혔다. 진퇴양난에 빠진 상황에서 미군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금이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면전을 벌이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설파하는 데 성공한다. 부시 대통령이 저지른 최악의 실패 중 하나를 수습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는지 오바마 대통령은 전선을 확대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병력 증파에 강력히 반대하며 군 수뇌부와 맞서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안으로 증파 규모를 줄였다는 사실은 여러 차례 기사로 보도됐다.) 결과는 물론 실패였다. 탈레반은 이미 무능한 친미 정권과 손을 잡고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군은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엔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한다. 대대적으로 파병 규모를 늘리기는 어려우니, 대규모 공습을 통해 탈레반에 타격을 입히면 이들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고,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거란 계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도 군이 원하는 대로 공격을 감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로 실패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세웠고, 파병한 군인을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었다.

만약 조 바이든이 아니라 에이미 클로부샤르나 피트 부티지지가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돼 백악관에 있었다면, 얼마든지 오바마와 트럼프가 한 실수를 되풀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직 이길 수 있다는 군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고, 오래전부터 확신하던 대로 철군을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세워둔 철군 계획을 그대로 이어가면 됐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덜한 선택이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음 달 9.11 테러 20주기를 앞두고 철군 계획을 마무리하려 했다. 계획대로 철군이 진행됐지만,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수도 카불을 점령할 거라는 점은 미국 정보 당국도 정확히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혼란이 가중될수록 바이든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일부 매파들의 지적 가운데는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다.

먼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을 전부 철수하는 바람에 수도 카불이 탈레반의 손에 이렇게 쉽게 함락됐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는 비판의 대안을 고려하면 의미가 없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지난 20년간 모든 치안과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정부군은 스스로 지킬 능력을 조금도 기르지 못했다. 대통령은 잽싸게 나라를 버리고 아랍에미리트로 피신했다. 카불을 지킬 수 있을 만큼 미군을 남겨둔다는 건 결국, 철군 계획과 양립할 수 없다. 임기 내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철군 계획 자체는 이해하지만, 철군 방식이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다. 일리 있어 보이는 비판이지만, 사실 앞선 두 행정부에서 철군 대신 증파를 통해 전선을 확대했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었다. 더 안전하게, 더 많은 병력, 민간인이 무사히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패배(敗北)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겨루어서 진다는 뜻 말고 싸움에 져서 달아난다는 뜻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최강대국 미국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미국은 전쟁에서 패배했고, 패전국이 전장을 무사히, 여유롭게 빠져나가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1975년 사이공과 2021년 카불. 사진=시어런 마자리(Shireen Mazari) 트위터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문제를 둘러싼 정쟁에 시간을 소모하기보다는 애초에 일으키지 말았어야 할 전쟁을 무리해서 일으킨 점, 또 전쟁을 끝낼 수 있던 몇 차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점을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초강대국이라도 압도적인 군사력만으로 모든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45년 전 베트남에 이어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한 번 증명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