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스 결과와 선거구 재획정
2021년 8월 31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워싱턴포스트 멍키케이지 / Rowan McGarry-Williams, Noah Kim, Deanna Han, Sarah Sadhw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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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미국 인구총조사국(U.S. Census Bureau)이 2020년 센서스 최종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용자가 궁금한 데이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해설이 포함된 버전은 9월 30일에 발표됩니다.) 이번 센서스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적잖은 차질을 빚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막판에 조사 기한을 급히 바꾸거나 예산 지원을 끊었고, 불법 이민자를 조사에서 배제하려 하는 등 방해한 탓에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예년보다 4개월 이상 늦게 센서스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원래는 10의 배수가 되는 해의 4월 1일이 인구총조사의 날(Census Day)이고, 이듬해 4월 1일에 조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10년마다 한 번씩 하는 인구총조사는 인구 구성의 변화를 확인하는 데도 중요한 데이터지만, 다른 무엇보다 선거구를 새로 획정하는 데 근거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인구총조사국은 에 따라 각 주에 센서스 결과를 제공해야 합니다. 각 주는 인구총조사국이 보내온 데이터를 토대로 10년마다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합니다.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는 목표는 분명합니다. 미국인이 선거에서 행사하는 한 표가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최대한 같은 값을 지니도록 하는 겁니다. 주 정부는 선거구의 인구를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는 작업을 하고, 새로 획정한 선거구로 내년 중간선거를 치러야 합니다.

이번 센서스 결과를 보면 미국 인구는 10년 전보다 7.4% 늘어나 3억 3,144만 9,281명입니다. 인구 구성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남쪽과 서쪽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센서스 결과에 따라 하원 의석 435석을 배분하게 되고, 그에 따라 각 주의 선거인단 숫자도 정해지는데, 인구가 많이 늘어난 주에선 의석이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줄어든 주는 의석도 덩달아 줄어듭니다. 넓게 보면 북동부에 있는 일리노이, 뉴욕,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웨스트버지니아주가 하원 의석을 한 석씩 잃었습니다. 반대로 남서부에 있는 콜로라도, 플로리다, 몬태나, 노스캐롤라이나, 오레곤주의 의석은 한 석씩 늘어났습니다. 텍사스는 무려 두 석이나 의석이 늘었고, 캘리포니아는 역사상 처음으로 의석이 줄었습니다.

2020 센서스 결과 주별 하원 의석 변화. 주별로 배정된 선거인단은 각 주의 상원과 하원 의석수를 더한 것이므로, 의석수의 증감이 곧 선거인단의 증감이 된다. 주별 인구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공식은 인구총조사국의 설명을 참조.출처=미국 센서스

 

의석을 주 안에서 어떻게 나누느냐, 선거구를 어떻게 다시 획정하느냐도 선거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입니다. 각기 다른 유권자 집단의 성향에 따라 어떻게 선을 긋느냐가 선거의 당락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연방 정부의 각종 지원금이 어느 지역에 우선 배정되느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센서스 데이터를 보면 도시(urban) 인구는 줄고, 근교(suburban)에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된 점이 눈에 띕니다. 선거구는 인구를 토대로 결정되는 만큼, 자연히 도시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들보다 근교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또 도시에서 가까운 근교로도 모자라 더 멀리 떨어진, 그러나 완전히 시골(rural)이라고 하기엔 도시가 가까운 준교(exurb) 지역의 인구도 늘었습니다. 근교와 준교 지역의 늘어난 유권자 가운데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가 많더라도 이들의 표가 민주당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아니면 지지율을 높여도 여전히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화당 후보를 넘지 못해 사표가 될지는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난 10년간 미국 인구는 7.4% 늘었지만, 인구 증가세는 1930년대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대부분 카운티의 인구가 줄었습니다. 다만 이번 센서스 과정에서 특히 많은 경우 저소득층인 유색인종, 취약 계층이 제대로 집계되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면 선거구를 획정하는 데 이들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자연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기본적인 통로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그 지역도 대표자를 뽑는 데 인구만큼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되는 거죠. 센서스 결과에 실제 인구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으면, 해당 지역사회는 연방정부가 내려보내는 다양한 지원금을 받는 데도 불리해집니다.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우려

집계에 빠진 부분이 꽤 있는 듯하지만, 어쨌든 이번 센서스 결과에서 유색인종 커뮤니티는 늘어났습니다. 인종 별로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인구 성장세의 절반 이상을 라티노가 책임졌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빨리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은 10년 전보다 35%나 급증해 2,400만 명이 됐습니다. 흑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2%를 차지해 10년 전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인종별 인구 변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백인 인구가 줄었다는 점입니다. 전체 인구 가운데 백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과 비교해 무려 8.6%포인트나 줄었습니다. 유색인종의 투표권을 제한하거나 억압해온 역사가 있는 보수적인 주들에서는 백인 인구가 준 만큼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정치적 대표성이 커지지 않도록 희석하는 쪽으로 선거구를 다시 그리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법률자문기금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는 주 정부가 선거구를 그릴 때 유색인종의 정치적 목소리를 제약하거나 배제하는 쪽으로 제리맨더링(gerrymandering)을 하거나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을 어기는 사례가 있는지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주 정부의 권한 막강한 연방제 국가 미국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는 일은 주 정부와 주의회의 소관입니다. 현재 주지사와 주의회가 모두 공화당인 주가 23곳, 민주당인 주가 15곳, 주지사가 속한 당과 주의회 다수당이 다른 주가 12곳입니다. 전통적으로 선거구 재획정은 주의회 다수당과 주지사가 상당 부분 좌지우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수당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선거의 룰을 바꿔버리면 계속해서 선거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질 위험이 있는 셈이죠.

이번에는 애리조나(AZ), 캘리포니아(CA), 콜로라도(CO), 미시건(MI), 몬태나(MT), 아이다호(ID), 워싱턴(WA), 뉴욕(NY) 등 총 여덟 개 주가 독립적인 선거구 재획정 위원회를 꾸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양당을 지지하는 시민들로 구성되는 위원회는 선거구 재획정 전반을 관장하며, 선출직 정치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구입니다.

주 정부가 자체적으로 재획정 원칙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몬태나주 선거구 재획정 위원회는 경쟁성 원칙을 추가했습니다. 어떤 선거구도 특정 정당에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선거구를 짜기로 한 겁니다. 어차피 승패가 뻔히 정해진 선거구에서는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유인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던 몬태나는 지난 선거까지 주 전체에 하원의원 한 석이 배정됐었는데, 이번 센서스 결과 인구가 늘어 두 석을 배정받게 됩니다.)

또 오하이오(OH)와 미주리(MO)주는 가장 최근 선거의 공화당, 민주당 득표율을 토대로 두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비슷하게 섞이도록 한 선거구를 그리기로 했습니다. 이런 원칙은 인종 구성이 다양한 주에서는 투표권법에 저촉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 전체로 보면 흑인 비율이 높지 않지만, 흑인들이 특정 지역에 모여 사는 주에서는 선거구의 경계선을 흑인 커뮤니티 한가운데 그어 흑인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희석하지 못하도록 이른바 소수 집단이 다수를 차지하는 선거구(majority-minority districts)를 지켜 왔습니다.

 

센서스에 누락된 사람들이 초래할 문제

앞서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이 이번 센서스가 정확한 인구 집계를 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집계가 잘 안 되었다면 저소득층이나 취약 계층이 누락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의 방역은 특히 취약 계층이 모여 사는 곳에서 무너졌는데, 이런 곳에서는 센서스 조사원이 집집이 방문하기도 어려웠을 테고, 인터넷 보급률도 낮아 온라인으로 참여했을 확률도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센서스 질문에 국적을 포함하려 하면서 불법 이민자들이 센서스를 회피했을 수도 있습니다. (센서스는 원래 국적이나 이민 지위와 관계없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정확히 집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렇게 취약 계층, 이민자, 유색인종 커뮤니티의 집계가 부실하지 않게 신경을 쓴 주들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가 대표적인데, 특히 언어장벽이 이민자 커뮤니티의 센서스 참여를 가로막지 않도록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언어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텍사스처럼 저소득층, 유색인종, 이민자 커뮤니티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쓴 주들은 센서스 참여를 따로 독려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미국 연방 하원에선 민주당이 다수당이지만, 의석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되찾아오느냐 못 하느냐가 선거구 재획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번 센서스가 미칠 영향은 중대합니다. 뉴욕대학교 로스쿨의 브레넌 정의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50개 주 가운데 18개 주에서는 공화당이 선거구 재획정에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과 트럼프가 치열하게 다툰 주들도 18개에 포함됐습니다. 이번에 획정한 선거구는 2030년 선거까지 이어집니다. 선거구 재획정을 둘러싼 공방은 적어도 내년 중간선거 전까지는 치열하게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