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카, 그리고 우리가 알던 자동차 산업의 종언
2021년 7월 20일  |  By:   |  IT, 경영  |  No Comment

(월스트리트저널, Christopher Mims)

원문보기

오늘날 자동차는 점점 더 바퀴 달린 컴퓨터에 가까운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애플을 비롯한 테크 기업들이 5조 달러(5,730조 원)의 자동차 시장을 정조준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로 보입니다.

 

애플 자동차 시장 진출은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자동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으로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기계 부품 숫자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적습니다. 기계 부품을 적게 이용하는 전기차는 자율주행이라는 근본적 혁신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동차는 엔진, 변속기, 구동축, 브레이크 등 기계 부품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기계 역학이 발전하면서 기계 장치를 보조하기 위한 전자 센서와 프로세서가 점차 도입됐지만, 자동차가 움직이는 근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자동차에 장착된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반도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작동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전기 모터, 정교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맞춤형 크루즈 컨트롤이 기존의 기계 장치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전자 장치들이 복잡해지면서 전자 시스템을 통합 제어하는 메인 컴퓨터가 필요해졌습니다.

메인 컴퓨터가 모든 시스템을 제어하게 된다면 더 적은 숫자의 반도체로 더 많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 제어 시스템이 미치는 파장은 비단 하드웨어의 개선에 그치지 않습니다. 미래 자동차 산업에 근본적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차량 통합 운영체제가 자동차의 성능, 자동차 제조업체의 수익 구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을 결정할 것입니다.

애플의 직원 누구도 향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지난 수년간 자동차 산업을 진지하게 고민해 왔습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수백 명의 직원을 고용했죠. 그러나 어느 순간 우선순위가 바뀌면 고용했던 사람들의 역할을 없애고 유사한 기술을 보유한 다른 엔지니어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더 많은 엔지니어를 해고했습니다. 여전히 애플이 자동차 산업에서 노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애플은 최근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제조업체와 자동차 생산 제휴에 관해 논의했지만, 협상은 흐지부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최고가 될 때까지 실험을 이어갈 것입니다.

다수의 자동차 제조업체 및 부품사와 협업하는 다국적 컨설팅 업체 캡제미니 엔지니어링(Capgemini Engineering)의 기술 혁신 담당 이사인 피터 핀틀(Peter Fintl)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애플이 자동차 제조와 엔지니어링을 면밀히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준비하는 것이 자동차인지, 기술 플랫폼인지, 혹은 모빌리티 서비스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텔(Intel), 엔비디아(Nvidia), 화웨이(Huawei), 바이두(Baidu), 아마존(Amazon), 구글(Google)을 비롯한 많은 테크 기업들은 IT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보수적이며, 이윤율이 낮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려 합니다. 반면, 포드(Ford), 제너럴모터스(General Motors), 도요타(Toyoda), 다임러(Daimler), 폭스바겐(Folkswagen)을 포함한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저와 보쉬(Bosch), ZF, 마그나(Magna) 등 자동차 부품산업의 강자들은 테크 기업처럼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모든 기업이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많은 전문가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가 더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고용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폭스바겐은 이미 수천 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두고 있었음에도, 지난 2019년 3월 기술개발팀에 2천 명을 추가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요타의 벤처 캐피털 펀드인 도요타 AI 벤처스의 짐 애들러(Jim Adler) 이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모든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다음 차례는 자동차입니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맥킨지(McKinsey)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전자 장비 부문 파트너인 요하네스 다이히만(Johannes Deichmann)은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오늘날 가장 복잡한 자동차에는 최대 200개에 달하는 컴퓨터가 탑재돼 있습니다. 이 컴퓨터들이 엔진 계통,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에서부터 에어컨과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죠. 다만 이 컴퓨터들은 여러 공급업체에서 각각 제작했고, 공급 업체의 독자적인 소프트웨어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조차 이런 컴퓨터에 접속해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모듈화가 어느 수준까지는 괜찮습니다. 말리부를 제작하는 GM이 유리창 와이퍼를 제어하는 반도체의 작동 방식까지 알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런 독립된 각각의 프로세서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시스템이 너무 복잡해졌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테슬라는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인 아펙스.AI(Apex.ai)의 잰 백커(Jan Becker) 대표는 테슬라가 자동차에 장착된 수백 개의 작은 컴퓨터를 소수의 크고 강력한 컴퓨터로 교체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컴퓨터가 전용 마이크로칩으로 각각 돌아가던 복잡하고 파편화된 시스템에서 벗어나 모든 프로세서가 자동차 통합 소프트웨어 모듈 위에서 체계적으로 실행되는 것입니다.

테슬라가 무선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차량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 덕분입니다. 향상된 가속력과 주행거리, 정교한 자율주행 시스템, 깜빡이를 건드렸을 때 방귀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원하십니까? 테슬라는 부품을 비롯한 하드웨어 교체 없이 무선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이런 기능 향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마치 스마트폰의 소프트웨어를 지속해서 업데이트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앞다투어 자체적인 자동차 운영체계 구축에 나섰습니다. 핀틀 이사는 자동차 운영 시스템 분야가 많은 기업에 열려 있으며, 현재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주행 OS를 출시했으며, 자동차 메이저인 폭스바겐과 다임러는 테슬라와 유사한 자체 OS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IT 플랫폼인 구글은 안드로이드 차량 운영체제를 개발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포드는 2023년부터 중국 밖의 지역에서 판매하는 모든 모델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할 것이며, 구글을 통해 차량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관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GM은 전기차 허머(Hummer)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을 앞둔 애플의 고민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애플은 우수한 소프트웨어,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활용해 구글처럼 고가의 자동차 운영 플랫폼을 개발해 자동차 제조사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동차 운영체제 개발에서 그치지 않고, 애플 자체 브랜드의 자동차를 제조할 수도 있습니다. 모빌아이(Mobileye)를 소유한 인텔(Inter), 웨이모(Waymo)와 안드로이드 차량 운영체제를 보유한 알파벳(Alphabet), 그리고 엔비디아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소프트웨어나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딜로이트(Deloitte)의 자동차 리서치 부문장인 라이언 로빈슨(Ryan Robinson)은 테크 기업들이 자동차를 직접 제작하지 않고 자동차 운영체제만 제공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수천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을 고용해 자동차를 생산, 운반하고,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래서 많은 테크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기존의 자동차 제조사와 협력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년간 전문가들은 자동차 메이저들이 테슬라를 순식간에 따라잡으리라 예상했지만, 이런 예상은 한참 빗나갔습니다. 이들은 전기차에서 훨씬 중요한 건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제조사들은 오늘날 자동차와 운전자가 기대하는 수준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합니다. 폭스바겐은 지난 6월 전기차 플래그십 모델의 출시를 연기했습니다. 수년간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쏟았지만,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자동차 산업 진출

다이히만 파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플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것은 업계의 커다란 미스터리입니다.”

애플은 이미 아이폰용 카플레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엔터테인먼트와 내비게이션과 같은 제한된 기능만 제공합니다. 차량의 통합 운영체제에 필요한 시스템, 기능과는 동떨어진 서비스입니다. 애플은 스마트 차량에 필수적인 반도체와 센서를 설계하는 능력이 매우 우수하지만, 애플이 설계한 칩들은 주로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에 탑재됩니다.

 

대답 없는 애플

애플은 차량을 통합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체 반도체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플은 사용자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품의 모든 부품을 직접 통제하는 수직계열화 생산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다음 통신사 AT&T에 했던 것처럼 자동차 제조사들을 통제하려 한다면, 과연 자동차 회사들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갈까요? 애플이 아이튠즈를 출시했을 때 음악 레이블에 했던 것처럼 하면 어떻게 될까요? 과거 애플은 단박에 형세를 역전시켰고, 거대한 시장과 우리의 일상을 동시에 장악했습니다.

올해 2월 애플이 현대자동차와 진행하던 자동차 생산 제휴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아마 현대자동차는 애플의 하청업체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닛산이 애플과 협력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만약 맨땅에서 독자적으로 새로운 자동차 제조사를 일굴 수 있는 테크 기업이 있다면 바로 애플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애플이 목표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2의 테슬라가 되는 것이 애플의 목표라면, 이 과정에서 자동차의 제조, 시험, 서비스를 모두 책임지는 고된 과정을 견뎌야 합니다. 과연 애플 이사회가 이런 결정을 내릴까요?

제3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애플이 자동차 제조업체와 협력해 차량 운영체제를 개발하지 않거나, 혹은 전기차를 직접 생산해 테슬라를 비롯한 전기차 스타트업과 경쟁하지 않더라도 애플에는 여전히 남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 전장으로 꼽히는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입니다. 애플이 전기차용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기업을 인수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먼 미래에 대한 애플의 야심을 보여줍니다. 애플카보다는 애플 모빌리티가 더 그럴듯하지 않을까요?

GM의 크루즈(Cruise), 아마존의 죽스(Zoox) 등 경쟁 기업들은 이미 이 목표를 좇고 있습니다. 구글의 자회사인 웨이모가 애리조나에서 시험 운행하는 것을 제외하면 로봇 택시 서비스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습니다. 애플에도 시간은 충분합니다. 애플은 현재 완성차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닛산과 같은 제조사에 막대한 추가 수익을 안겨주면서도, 애플이 수직계열화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다이히만 파트너는 애플 등 테크 기업이 자신들의 브랜드를 부착한 자동차를 설계해 자동차 제조사에 생산을 맡길 수도 있다고 전망합니다. 차량은 애플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일부가 될 것이고, 자동차 생산업체의 이름은 전혀 드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애플은 전자제품 제조 기업이 아닙니다. 모든 제품을 위탁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폭스콘(Foxconn)에 생산을 위탁하고 있습니다. 애플이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다면 유사한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용자 경험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애플은 이런 제품을 개발하는 기술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으며, 생산은 폭스콘 등 제조업체에 맡깁니다. 독보적인 기술적 전문성을 가지고 비전을 실현합니다. 그리고 많은 기업의 도전과 실패를 통해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예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애플은 자체 자율주행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애플이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지 못한 채 제품 개발에만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게 될지도 모릅니다. 시장에 출시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끝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모빌리티 산업은 규모와 복잡성 측면에서 개인 모바일 컴퓨터와 완전히 다릅니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애플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광범위한 협업이 필요합니다.

지난 3월 도요타의 아키오 도요다 사장은 애플이 자동차를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팔려면 앞으로 40년은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날렸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특히, 애플이 꿈꾸는 목표가 단순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14억 대의 자동차 중 상당 부분을 탄소 배출이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로 대체하겠다는 교통 시스템의 급진적인 혁신이라면 말이죠. 다시 말해, 이것은 1조 달러(1,140조 원) 규모의 거대한 산업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애플이 이런 대규모 혁신에 이미 한 번 성공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