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메이저 기업, 수소에 통 큰 배팅
2020년 11월 24일  |  By:   |  경영, 경제  |  No Comment

(월스트리트저널, Giulia Petroni and Dieter Ho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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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수소 에너지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 기대됩니다.

글로벌 탈 화석연료 흐름에 따라 기존의 석유, 가스 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잠재력이 큰 수소 시장에 진출하는 에너지 기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 규제 강화로 굴뚝산업에서 수소 이용이 확산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수소 연료전지에서 생산된 친환경 전기가 공장, 가정, 자동차, 선박, 비행기에 전기를 공급할 것입니다.

여전히 걸림돌이 적지 않지만,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 PLC), BP(BP PLC), 렙솔(Repsol SA)을 비롯한 석유 메이저 기업이 수소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인프라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성장성이 높은 수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배팅하는 것이죠.

투자회사 노무라 그린테크 캐피털 어드바이저스(Nomura Greentech Capital Advisors)의 올라프 준틸라(Olav Junttila) 상무는 에너지 메이저 기업의 수소 산업 진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수소를 대량으로 이용하려면 생산 시설뿐만 아니라 압축, 수송, 유통, 전환 시설도 필수입니다. 석유, 가스 분야의 메이저 기업은 이러한 인프라에 강점이 있으며, 기존 자원을 활용하여 수소 산업에서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산업 현황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공급에서 수소의 비중은 5% 미만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정유와 화학 분야에서 이용합니다. 하지만 전망은 밝습니다. 블룸버그NEF(BloombergNEF)는 정부의 지원정책에 힘입어 2050년에는 수소가 전체 에너지 소비의 1/4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글로벌 단체인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는 2050년이 되면 수소 산업의 수익이 연간 2조 5천억 달러(2,790조 원)에 달하리라 전망합니다.

하지만, 블룸버그NEF의 마틴 텡글러 수석 연구원은 앞으로 최소 20년간 수소의 생산비용이 천연가스보다 낮아지기 어렵다고 예상합니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텡글러 연구원은 수소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화석연료가 배출하는 탄소에 높은 가격을 매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탄소세와 배출권이 대표적인 방안입니다. 이런 규제가 도입되면 철강, 시멘트 등 굴뚝산업 분야의 기업은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합니다. 기존의 석유, 가스 메이저 기업으로부터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공급받으면 탄소를 줄일 수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 기업이 노리는 새로운 기회가 바로 이것이죠.

그러나 현재 생산되는 수소는 대부분 탄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친환경 연료가 아닙니다. 수소의 대부분은 화석연료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레이, 브라운, 또는 블루 수소는 탄소를 발생시킵니다. 재생에너지에서 생산되는 그린 수소는 탄소 배출이 없지만, 전체 수소의 1%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린 수소는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산업의 난제인 전력 저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맑은 날씨에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과잉 전력을 수소로 전환해 저장했다가 나중에 사용하는 식이죠.

셸은 최근 수소 등 저탄소 시장에 대한 투자 확대를 위해 사업 구조조정 방안과 비용 절감 계획을 밝혔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수익이 줄어들고 화석연료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었습니다. 셸의 벤 반 뷰어든(Ben van Beurden) 대표는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셸은 2050년에도 석유와 가스를 판매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탄소 전기, 바이오 연료, 그리고 수소가 우리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앵글로더치(Anglo-Dutch)는 2030년까지 독일의 라인랜드 정유공장의 녹색 수소 생산을 10배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스페인 최대의 에너지 기업인 렙솔도 재생에너지와 수소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2050년 온실가스 순 배출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25년까지 전체 지출의 1/4을 저탄소 분야 프로젝트에 투입하기로 발표했습니다.

렙솔은 올해 스페인 북부에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연료 공장을 짓는 데 6,000만 유로(790억 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풍력 발전에서 생산된 그린 수소와 정유소에서 배출된 탄소를 결합하여 합성 연료를 만들게 됩니다 렙솔은 새로운 연료를 자동차, 비행기, 트럭, 기계에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렙솔의 제이미 마틴 후에즈(Jaime Martin Juez) 이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석유, 가스 기업은 수소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BP는 2050년까지 탄소 순 배출제로를 공언한 또 다른 석유 메이저 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2030년까지 일부 지역에서 블루 수소와 그린 수소 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그레이 수소는 생산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BP는 올해 270만 호주 달러(22억 원)를 투입해 호주 서부에 그린 수소 수출시설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다른 에너지 기업과 제휴하여 수소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입니다. BP는 2050년까지 블루 수소와 녹색 수소가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6%~15%를 차지하리라 전망합니다.

한편, 미국과 유럽의 기업만 수소 산업을 노리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독일 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가스 제조회사인 린데(Linde PLC)는 수소 생산 분야에서 손꼽히는 기업입니다. 지난 7월 린데는 중국의 석유 기업인 중국해양석유(CNOOC Ltd.)의 자회사와 수소 산업 협력에 합의했습니다. 수소를 정제, 유통하고, 중국 내 수소 충전소를 건설하는 사업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지난 9월 유엔에서 2030년 말 중국의 탄소 배출이 정점을 찍은 후, 2060년 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계획의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수소 활용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수소 배관 및 보조금

석유와 가스 메이저 기업들이 수소 산업에서 성공을 기대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인프라입니다. 수소는 밀도가 낮기 때문에 대용량 저장과 차량, 선박 운송이 어렵습니다. 반면, 배관을 통해서 천연가스보다 3배 빠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에 파이프가 수소의 대용량 수송을 위한 유망한 대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 기업은 기존에 보유한 가스 배관을 활용하거나, 배관을 추가로 더 설치하여 수소를 수송할 수 있습니다.

셸의 올리버 비숍(Oliver Bishop) 수소 담당 책임자는 수소 전용 배관을 제안합니다. 소량의 수소를 천연가스에 희석해 기존의 가스 배관으로 수송할 수도 있지만, 천연가스 배관 옆에 수소 전용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쉬운 방안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재생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수소 경제를 확산하는 데에는 큰 난관이 있습니다. 청정한 수소일수록 생산비용이 높다는 점입니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탄소를 일부 배출하는 블루 수소의 추정 생산비용은 kg 당 약 2유로(2,600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그린 수소는 2.5유로~5.5유로(3,300원~7,200원)입니다. 반면 탄소배출이 많은 브라운 수소나 그레이 수소는 1.5유로(2,000원) 수준입니다.

블룸버그NEF는 수소 관련 인프라를 현대화하고 녹색 수소의 생산비용을 낮추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500억 달러(167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보조금이 필요하다고 예상합니다. 이 경우 향후 10년 안에 그린 수소 생산비용이 kg 당 2달러(,2200원) 수준으로 떨어지고, 중국, 인도, 서유럽에서는 2050년에는 1달러(1,100원)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수소의 수익성이 천연가스, 심지어 재생에너지보다 낮다고 경고합니다. 영국의 에너지 컨설팅 기업인 PWR의 마이크 파(Mike Parr) 회장은 “수소의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기업들에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지만, 정부의 기후정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소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수소 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EU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55% 줄이고, 2050년에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고 있는데, 수소가 이 전략의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수소 생산에 1,800억 유로~4,700억 유로(238조 원~621조 원), 저탄소 화석연료 기반의 수소생산에 30억 유로~180억 유로(4조 원~24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할 것이라 언급했습니다.

EU는 향후 4년 안에 기존의 수소 생산에서 탄소 배출을 없애고, 최소 6기가와트의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 생산시설을 구축할 계획입니다. 2030년에는 수소 생산시설을 40기가와트로 확대할 것입니다. 이는 총 2,000만 대의 차량에 충분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EU는 이 과정에서 수소 연료가 제철, 해상운송 등 다양한 분야까지 확산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미국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면 수소 산업의 전망이 밝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이든의 2조 달러(2,230조 원) 규모 기후변화 계획에는 그린 수소 생산기술을 포함한 신기술 개발 자금 4천억 달러(450조 원)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거대 석유회사인 셰브런(Chevron Corp.)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자동차용 수소 충전소를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환경규제 강화, 수소차 확산, 기술 발전에 맞추어 수소 분야의 투자를 늘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셰브런의 대변인은 캘리포니아와 한국에서 수소충전소 시범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마이크 위스 셰브런 대표는 지난 1월 수소위원회(Hydrogen Council)에 가입하면서 이렇게 포부를 밝혔습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더 청정한 에너지 대안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수소는 수송 연료, 산업 원료, 에너지 저장매체로서 미래의 저탄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의 호세 미겔 베르무데스 메넨데즈(José Miguel Bermúdez Menéndez) 에너지 기술 분야 연구원은 석유, 가스 메이저 기업들이 수소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특히, 다양한 수소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기업이 보유한 탄소 포집 설비, 해양 기술 분야의 전문성과 대규모 자본이 필수입니다. 메넨데즈 연구원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석유, 가스 분야의 기존 메이저 기업은 수소 산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이것은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이 기업들이 보유한 역량이 수소 산업을 키우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