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일수록 코로나19에 취약하다
2020년 10월 25일  |  By:   |  경제, 세계, 칼럼  |  No Comment

(포린 어페어스, Jacob Leibenlu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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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가 지난 수십년간 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두 현상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은 미스테리에 가까운 정도였습니다. 모든 걸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학자들은 미국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꾸준히 약해진 데서 이를 설명할 실마리를 찾습니다. 노조 조직률이 낮아지고, 하청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일이죠. 임금을 올리고 일자리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협상력을 잃은 노동자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에서 소외됐습니다. 대신 그 과실을 차지한 건 주주 자본주의에서 투자자들과 막대한 보너스를 챙긴 기업의 임원들이었습니다.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은 극도로 심화했습니다.

불평등의 심화는 비단 미국뿐 아니라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와해하고 협상력이 약화된 미국에서 그 여파는 특히 심했습니다. 1980년과 2010년대 후반을 비교해보면, 미국에서 발생한 전체 소득 가운데 노동의 몫은 4%P 줄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버는 소득이 매년 수십억 달러씩 줄어든 셈입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노동자들은 노동권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핵심 수단을 잃었습니다. 단체 협상권이 점점 약화된 결과,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 협상 등을 진행할 수 있는 노동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합니다. 공공부문 노조를 제외한 사기업만 놓고 보면 노조 조직률은 7%로 더 낮습니다. 유럽에서는 노조 조직률이 훨씬 더 높습니다. 프랑스 98%, 이탈리아 80%, 독일 56%로 유럽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노동조합을 통해 단결해 임금 협상을 벌인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점점 더 설자리를 잃고 구석으로 밀려나면서 코로나19 팬데믹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 됐습니다. 미국은 산업화된 다른 주요 선진국 어떤 나라보다도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은 나라입니다. 미국이 코로나19에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겁니다. 비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빚어진 백악관의 리더십 부재, 주정부 차원에서의 잘못된 대처, 또 구조적인 인종차별도 피해를 키웠습니다. 물론 미국보다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더 잘 마련된 유럽 나라들에서도 산발적으로 지역 감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각국의 코로나19 일지를 살펴보면, 경제적, 정치적 목소리를 잘 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팬데믹이 초래한 보건 위기에 특히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스러졌습니다.

 

노동자의 건강이 공중보건의 핵심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퍼지기 시작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직장, 회사, 일터였습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초기에 코로나19가 발발한 아시아 국가들을 살펴본 연구 결과를 보면, 전체 확진자의 47.7%가 일터에서 바이러스에 걸렸습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병원이나 요양원 등 의료 분야 종사자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대중교통, 육류 가공업체를 비롯해 바이러스는 다른 사람과 오랜 시간 ‘밀접 접촉’이 불가피한 일터에서 빠르게 번져나갔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이 발생한 지 한참이 지나도록 미국 정부는 고용주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직장 내 방역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무런 점검이나 감독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의 공중보건·위생 관련 지침을 내려야 하는 정부 부처인 직업안전위생관리국(The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은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정치권에 돈을 대는 기업들은 노동자의 건강을 기업이 책임지게 하는 규제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고, 결국 정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규모와 발언권이 계속 줄어들어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부서로 전락한 직업안전위생관리국이 코로나19 관련 방역 지침을 발표한 건 바이러스가 이미 퍼질대로 다 퍼진 뒤인 5월의 일이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부족한 것도 미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은 기본적인 제도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아파서 일을 못하면 급여를 받지 못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유급 병가 규정이 노동법에 없기 때문입니다. 유급 병가 제도가 없어서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바이러스가 훨씬 더 빠르게 퍼지기도 했습니다. 아프다고 집에 있으면 돈을 벌 수 없는 노동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했고, 직장에 바이러스를 옮겼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되지 않은 노동자 88%는 고용주가 마음만 먹으면 아무 이유 없이 자유롭게 해고해도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병원이나 공사 현장을 비롯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렸다가 출근하지 못하게 돼 급여를 받지 못하거나 아예 해고된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동료가 이런 일을 겪은 걸 지켜본 사람들은 당연히 몸이 좀 안 좋아도 이를 최대한 숨기고 일터로 나왔습니다.

유럽 정부들은 달랐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자 재빨리 직장 내 방역 수칙을 강화해 발표했습니다. 팬데믹 이전에도 유럽의 노동자들이 보장받은 노동권은 미국 노동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유럽 직업안전보건기구는 코로나19 관련 직장 내 방역 수칙을 정하는 데 있어서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했다”고 밝혔습니다. 식료품 가공업계 같은 경우엔 아예 노사가 함께 직장 내 안전 지침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노사정위원회가 원활히 운영되는 독일에선 노사가 직장 내 방역 지침을 제대로 만들고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일찌감치 인식을 같이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팬데믹이 오자 독일 노동자들은 직장 내 방역 수칙을 엄격히 지켜달라고 사측에 요구할 수 있었고, 감염 우려가 있을 경우엔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비대면 회의를 하자고 일자리 잃을 걱정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이 일하는 일터의 방역 수칙과 환경에 대해 무언가를 제안할 권한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려면 미국을 보면 됩니다. 미국 전역의 육류 가공업체 관련 시설은 코로나19에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도축장을 비롯해 가공 공정을 하는 노동자들은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 서서 일합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공장의 작업 환경과 위생에 노동자들이 꾸준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규제 당국은 이를 묵살했습니다. 기업들은 오히려 “책임수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계속 출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상을 지급했고, 반대로 정해진 시프트를 채우지 못하는 직원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징계했습니다. 7월에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육류 가공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9%가 코로나19에 걸렸습니다. 확진자 가운데 무려 87%는 유색인종이었습니다.

육류 가공업체의 작업 환경은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동 강도가 세다 보니 자연스레 노동자 가운데 이민자가 많고, 이들을 향한 제도적 안전장치는 아무래도 덜 촘촘한 편이죠. 그런데도 유럽의 육류 가공업체 노동자들 중에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의 숫자는 미국의 1/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육류 가공업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 수는 미국이 유럽보다 50% 정도 많습니다.) 여전히 지역적으로 감염이 발생하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 보건당국은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방역에 나서 확산을 억제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육류 가공업의 규모가 가장 큰 독일과 스페인 정부는 기존 노동 보호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그래서 코로나19에 취약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규정을 재빨리 신설했습니다.

육류 가공업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피해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서 두드러질 뿐, 소매, 건축, 청소, 보건·의료 등 수많은 분야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대로 된 보호장치가 전혀 없던 미국 노동자들은 코로나19에 무방비로 노출됐습니다. 유럽 노동자들은 팬데믹에 맞서 더 엄격한 방역 지침을 직장에 요구했고,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바이러스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일자리와 임금을 보호받을 권리를 쟁취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마존 노동자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똑같이 직장 내에서 엄격한 방역 지침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하며 조업 중단에 돌입했습니다. 미국 아마존은 조업 중단을 이끈 노동자들을 해고해버렸습니다. 사측이 정한 회사 규정을 어겼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미국에선 사측이 그렇다고 하면 노동자를 해고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아마존은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프랑스 법원은 아마존 사측에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강화한 직장 내 안전 지침을 제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일터의 안전은 자연히 온 사회의 안전으로 이어집니다. 노동자들이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는 직장에서 방역 수칙이 잘 지켜져 바이러스에 안 걸리거나 덜 걸리게 되면 노동자들이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도, 또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가정도 더욱 안전해집니다. 전체 커뮤니티 방역의 관점에서 보면 일터에서부터 일종의 선순환을 만들어나가는 겁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특히 초반에 급격히 퍼진 지역이 이른바 “필수 노동자들”로 불리던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육류 가공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 일하는 술집이나 식당 종업원도 일찌감치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코로나19를 먼저 적극적으로 억제하지 못하면 바이러스가 전체 사회로 퍼지는 건 결국 시간 문제였던 셈입니다.

 

경제 회복도 노동자의 건강이 먼저 담보돼야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밀려나면서 미국은 경제 회복마저 더뎌지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경제는 말그대로 완전히 멈춰섰습니다. 올해 2분기 GDP는 미국에서 9.5%, 유로존에서는 12.1%나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경제 회복의 속도는 미국이 유럽보다 훨씬 더 느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번에도 약한 노동권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실업 보험(unemployment insurance)에 따라 실업 급여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지급한 나라가 미국입니다. 지난 3월 미국 의회는 실업 급여 재원을 확충하고 지원 요건도 완화했죠. 6월 기준으로 미국 전체 임금의 15.6%에 해당하는 돈이 실업 급여로 지급됐습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그 비중이 2.5%였습니다.

실업 급여는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대는 생명줄 같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 중엔 생명줄 같은 실업 급여를 신청하고도 몇 주, 몇 달이 지나도록 못 받은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껍데기만 남은 열악한 인프라에 있습니다. 실업 급여를 정산하고 지급하는 프로그램을 보면 1960년대에 쓰던 프로그램을 아직도 쓰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접근성이 한참 떨어지는 복잡하고 불친절한 시스템이 실업 급여 신청과 수령을 어렵게 하는 원흉이 되어버렸습니다. 실업 보험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을 실시했을 때 고안된 정책인데, 당시 백인과 유색인종은 분리해야 한다고 믿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농업과 가정부 등 가사노동은 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흑인과 라티노 등 유색인종들이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게 막은 겁니다.

또한, 고용주가 노동자들이 신청한 보험금 내역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직원들의 실업 급여 신청 건수에 따라 내야 하는 고용세 액수가 달라지자 고용주들은 노동자들이 실업 보험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게 방해할 유인이 생겼고, 결국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약해졌습다. 올해도 미국 노동부는 고용주가 팬데믹을 이유로 출근을 거부한 노동자들에게 실업 급여를 지급하지 않거나 재난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게 허용해줬습니다. 직장 내 방역을 철저히 하지 못해 우려되더라도 일터에 복귀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보상과 혜택을 잃는 걸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코로나19로 대통령이 긴급사태를 선포한 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지급되던 주당 600달러의 실업 급여가 지난 7월 말을 끝으로 지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근년에 유례를 찾기 힘든 경기침체에 그나마 생활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이던 실업 급여마저 끊기자 경기가 회복하는 속도도 더뎌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과 협의하지 않아도 되는 행정 명령, 행정 메모 등을 통해 일시적으로 급여를 지급하려 했지만, 이는 액수도 미미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이 늘 비난을 일삼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협상을 재개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실업률이 10% 아래도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실업 보험이 작동하지 않고 멈춰섰다는 건 미국 노동자들을 받쳐주는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드러내주는 단면입니다.

산업화된 다른 나라들의 사회적 안전망은 훨씬 더 튼튼합니다. 노동자들이 더 많이, 직접 안전망을 짜는 데 참여하는 것이 비결입니다. 유럽 국가들의 실업 보험은 미국보다 훨씬 탄탄합니다. 벨기에, 덴마크를 비롯한 여러 유럽 나라들이 이른바 겐트 방식(Ghent system)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겐트 방식이란 노조가 실업 보험을 직접 운영해 실업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조는 가급적 많은 노동자를 실업 보험에 포함하도록 제도를 운용합니다.

유럽 국가들에선 또 작업 분담이나 단기 고용 정책 등을 활용해 노동자들이 급여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해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정부는 단기 고용(Kurzarbeit) 제도를 12~24개월로 확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 고용 제도가 확대되면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고용주가 노동자를 완전히 해고하는 대신 근무 시간을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해고했다가 다시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줄어든 노동자의 급여를 실업 보험으로 일부 보전해줌으로써 독일은 경기 침체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경기 회복에 필요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제도가 완충장치 역할을 한 덕분에 지난 봄 유럽과 미국의 GDP 감소분은 비슷했지만, 유럽 국가의 실업률이 미국처럼 가파르게 치솟지 않았던 겁니다. 게다가 작업 분담 계획은 보통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같이 짜는데, 이때 정부도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습니다. 이는 경제 위기에서도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소득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기본적인 합의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실업 급여를 지급 액수만 비교하면 그 효과를 제대로 분석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지난 봄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에게 지급된 실업 급여의 액수는 미국이 유럽보다 조금 더 많았습니다. 대신 미국 노동자들은 유럽 노동자들보다 급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았고, 실업 급여를 받기까지 훨씬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치면서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유럽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도 얼마가 지나고 나면 다시 복직할 수 있다는 계획 아래 (액수는 작지만) 약속대로 지급된 실업 급여로 경제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경제 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들의 단결권, 협상력이 너무 약하다는 점입니다. 실업 보험을 비롯해 고용 안정성을 추구하는 제도는 다른 사람이 시혜를 베풀 듯 보장해주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스스로 지키고 확충할 때만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도 유럽 같은 고용 보장 조항이나 실업 보험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미 사문화된 지 오래인 조항들이 대부분으로 실제 노동자들이 그 혜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오기 전에 노동을 나누는 작업 분담 계획을 제도로 마련해둔 주가 50개 가운데 27개였습니다. 팬데믹 때문에 경제가 멈춰서 해고되거나 임시로 실직 상태가 됐을 때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주가 27개라는 뜻입니다. 나머지 23개 주에는 노동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습니다. 미국 중소기업 지원 제도 가운데 하나인 급여보호 프로그램(PPP, Paycheck Protection Program)은 6600억 달러, 약 750조 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해 뒀습니다. 이 돈은 경제 위기가 왔을 때 노동자들의 급여를 보전해 무분별한 해고를 예방하는 데 쓰는 돈입니다. 그런데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가운데 작업 분담 계획의 혜택을 누려 실업 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노동자가 2800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 실업 급여를 신청한 이들은 45만 명에 불과합니다. 또한, 실제 경제를 보면 급여보호 프로그램이 있어 회사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하지 않고 계속 고용하고 있다는 근거는 아주 빈약합니다. 고용 계약을 가급적 유지하고 함부로 해고해선 안 된다는 원칙이 사문화되지 않고 실제로 지켜진 아주 드문 사례를 미국 항공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결이 뭘까요? 승무원 노조를 비롯해 항공업계는 노조 조직률이 아주 높은 산업입니다. 이들이 규정을 지키도록 사측을 압박했기에 사측도 함부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없었습니다.

무너진 경제를 다시 굴러가게 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은 뭐가 있을까요? 우선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를 확실히 통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노동자와 가족들, 그리고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방역에 효과가 있는데 이를 강제할 수 없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도할 수 있는 유인책이 필요합니다. 몸이 아프면 일터에 나가지 않고 집에 있어도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것만한 유인책은 없을 겁니다. 미국 정부가 지원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고 싶다면, 이를 구상하고 시행하는 주체가 될 노동자들과 머리를 맞대야만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없습니다.

노동자들이 믿고 기댈 수 있는 강력한 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실업률이 오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경제 전반에 지우게 된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돈은 그저 한 가계의 생계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급한 대로 생필품을 구하느라 돈을 쓰면 그렇게 소비가 진작돼 돈이 돌고 이는 경기가 회복하는 데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 결국,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은 경제 회생에 꼭 필요한 돈인 것이다.

반대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실업 급여나 수당 등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면, 또는 해당 프로그램의 재원이 모자라 경기침체가 본격화하기 전에 이미 지급할 돈이 바닥나 버린다면 노동자들의 소비에 기댄 경기 진작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의 상황이 딱 그렇다. 급여를 보전해주는 프로그램은 유명무실했고, 별도로 지급한다는 지원금은 너무 더뎠다. 그 결과 미국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 순간 당장 다음날 의식주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중소기업과 지역 커뮤니티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지지대인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지자 침체에 빠진 경기가 회복은커녕 반등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됐다.

 

노동자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이미 수많은 경제학자가 거듭 지적한 것처럼 팬데믹 상황에서 공중 보건을 지키고 경제가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절대로 잡을 수 없는 두 마리 토끼가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다 알다시피 공중보건과 경제 어느 것도 지키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리더십의 실패도 큰 문제였지만, 그 전에 의사결정 과정에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 자체가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당장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팬데믹 때문에 경제를 서둘러 닫았다가 재개할 때 실제 일선 노동자들과 협의했다고 하는데, 정부와 협상에 임한 노동자들이 과연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라.

반면 코로나19로 역시 문을 닫았던 학교를 다시 여는 과정은 미국의 다른 산업 분야를 재개하는 데 따르는 논의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 선생님 가운데 교사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미국 공립학교 교사의 노조 조직률은 70%다. 실제로 미국 전역에서 섣불리 학교를 다시 열려는 정부와 교육 당국의 방침에 항의하는 교사들이 조직적인 시위를 벌였고, 그 결과 재개 계획이 취소되거나 일정이 뒤로 밀렸고, 교사는 물론 교직원과 학생 모두를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보호하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장치도 마련됐다. 교사들이 어디서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던 건 아니다. 특히 교사 노조가 제대로 조직되지 않은 지역에 있는 선생님들은 정부의 잘못된 방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쨌든 교사는 자신의 안전과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미국의 다른 노동자들과 분명히 다른 권한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노동자는 언제나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갈아끼울 수 있는 부품 같은 걸까? 팬데믹을 맞아 미국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공중보건의 위기로 이어졌다. 미국 주정부 가운데는 마스크를 쓰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고조차 내놓지 않은 곳이 많다. 주정부가 나서서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거나 권하지 않고, 이를 고용주나 사업장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 곳이 너무 많았다. 여기에 공화당은 노동자나 소비자, 이들의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고용주나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려 했다. 경제 회복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미리 없애두겠다는 취지였다. 기업으로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로 들릴 수 있는 조치다.

반대로 많은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회적 대화”의 경험과 전통을 이번에도 적용했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을 처음부터 노동자의 대표가 기업의 대표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구가 유럽 각국에서 활발히 운영되는 노사정위원회로, 그 역사가 긴 만큼 정치적인 원칙과 세부적인 규정도 잘 마련돼 있다. 정치학자 존 알퀴스트와 마가렛 레비는 노동조합이 자기 조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까지 고려해 행동하는 이유를 고찰한 책을 썼다. 특히 결국엔 나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이들과 단체를 생각해 이들과 연대하게 되며 점점 연대의 폭을 넓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더 쉽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개혁하고 노조 활동을 보장하면 그저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거나 경제적인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위기가 왔을 때 더 잘 견디는 힘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힘이 약해질 때 그 사회가 갈수록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곳으로 변하는 걸 목격했다. 2020년 유례를 찾기 힘든 팬데믹을 겪고 나서 남은 교훈은 노동조합이 번성하는 곳, 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와 국가가 팬데믹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