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심리학자
(David Shariatmadori, 가디언)
코로나 바이러스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난 3월, 심리학자 리사 펠드만 바렛은 집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습니다.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뉴질랜드를 방문 중이었지요.” 자신의 감정 연구 실험실이 있는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 외곽에 위치한 뉴턴시에서 그녀는 전화로 내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대학생인 자기 딸이 봄 방학 기간에 맞춰 뉴질랜드를 방문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각국의 여행 제한이 심해지자, 그녀는 계획을 바꿔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었지요. 그 애가 꼭 와야할까? 아니면 그냥 내가 집으로 가야할까? 그러니까 이 코로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여러가지 가능한 위험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 다른 이들은 공포, 혹은 공황이라 부를 감정 상태에 자신이 빠졌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무서워요”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불확실성에 의한 강한 흥분 상태를 겪고 있어요.”
저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이유는 당신이 그녀가 2018년 출판한 놀라운 책인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를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렛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용어의 문제라는 사실을 과학은 이야기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가족은 이미 여기에 적응한 상태입니다. “내 딸은 다른 대학생들처럼 이렇게 말하곤 하죠. ‘너무 걱정되요.’ 내가 그 애를 쳐다보면, 그 애는 한숨을 쉬고는 이렇게 다시 말합니다. ‘알겠어요 엄마. 나는 불확실성 때문에 강한 흥분 상태에 있어요.’ 이렇게 말할때도 있습니다. ‘정말 우울하네요.’ 그럼 나는 묻죠. ‘우울하다고?’. 그럼 그 애는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알았어요. 지금 내 신체 예산이 바닥나 불쾌한 느낌이 난다구요. 이제 됐어요, 엄마?’”
얼핏 보면 고통을 느끼는 딸에게 너무 딱딱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바렛은 매우 따듯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정이 많고, 유쾌하며, 장난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감정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그래서 불필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이 판데믹 때문에 특히 감정적이기 쉬운 시기에 그녀의 이런 주장은 더 널리 알려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오해 중 가장 커다란 것은, 감정이 선천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이 동일한 감정을 느낄 뿐 아니라, 일관성 있게 측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분노는 명백한 심리적 “지문”을 가지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구성 요소로 여겨집니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는 이 감정에 그저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렛은 이는 완전히 틀린 생각이라 말하며, 이를 지지하는 여러 과학적 증거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분노”는 문화적인 개념이며, 매우 다양한 신체적 변화를 가리킬 뿐 아니라, 이에 해당하는 하나의 특정한 표정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심지어 같은 사람의 경우에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캐나다 북서쪽에 사는 이누이트인 유트쿠(Utku)족의 경우 “분노”에 해당하는 개념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행복”, “흥분”, “실망” 등의 다른 감정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어떤 감정도 하나의 객관적인 신체 상태에 대응되지 않습니다. 곧, 감정이란 문화가 만들어낸 인공물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아직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갓난 아기들 조차도 어떤 불만을 표시하지 않나요? 유트쿠 족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때 심장이 빨리 뛰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경험을 겪지 않는 건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물론 아기들이나 유트쿠족 또한 그런 경험을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이런 사건을 “분노”로 해석할지가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바렛은 인간 경험의 보편적 요소로 감정이 아닌, 흥분(arousal)의 연속적인 정도를 말하는 한 축과 쾌감(pleasantness)과 불쾌감(unpleasantness)으로 이루어진 다른 한 축으로 이루어진 2차원 평면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정서(affect)”라 부릅니다. 이는 의식의 기본적인 특징이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 따라 이 사분면 상에 존재하는 자신의 상태를 특정한 감정에 끼워맞추게 됩니다. 즉, 높은 흥분도와 강한 쾌감을 느낄때 뇌는 이를 “절정(ecstasy)”이라 해석할 수 있으며, 낮은 흥분도와 강한 불쾌감은 “비참함”이라는 감정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낮은 흥분도와 강한 쾌감은 “만족”으로, 높은 흥분도와 강한 불쾌감은 “공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물론 롤러코스터를 탈 때 처럼 쾌감이 공포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권과 언어가 유사한 생리학적 상태와 연결될 수도 있지만, 그 단어들은 미묘하게, 혹은 확연하게 다른 맥락을 가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일롱옷 부족은 높은 흥분도의 강한 쾌감을 “리젯”이라 부르며, 바렛은 이 감정이 “축구와 같은 경기에서 충동적인 에너지를 강력하게, 능동적으로, 그리고 때로 공격적으로 다른 이에게 보이는 상태”를 이야기한다고 말합니다.
바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만약 “공포”가 그저 높은 흥분도의 강한 불쾌감에 대해 문화적으로 이름 붙인 개념임을 이해할 경우, 이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험 전에 느끼는 강한 흥분을, 시험에 대한 긴장과 불안으로 당신의 뇌가 받아들이는 것과, 강인한 결의로 받아들이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바렛은 말합니다. “내 딸이 실제로 경험한 일입니다. 아이는 가라데 검은띠 시험을 앞두고 있었죠. 사범님은 검은띠 10단이었고, 덩치가 매우 큰 무서운 분이었어요. 아이는 극도로 흥분했는데, 사범님은 아이에게 ‘진정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대신 이렇게 말했죠. ‘너의 불안한 마음을 차례대로 날려 보내라’.” 이 말이 아이의 경험을 바꾸었어요. 그 아이의 뇌는 두려움을 만드는 대신 결의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렛은 이 모델을 설명할 때 우리의 뇌를 어둡고 조용한 상자, 그러니까 두개골 속에 갇힌 죄수로 이야기합니다. 이 죄수가 바깥 세상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빛(시각), 기압(청각), 화학물질(미각과 후각) 밖에 없습니다. 이 감각의 변화를 무엇이 일으키는지도 알지 못하며, 따라서 지금 가진 정보만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뇌는 과거의 비슷한 감각과 이를 비교하여,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측합니다. 당신이 숲 속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볕은 당신 앞에 줄무늬의 그림자를 만듭니다. 당신은 과거에 수많은 뱀을 보았고, 또 숲 속에는 뱀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뇌는 이런 일련의 예측을 계속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은, 이러한 예측 활동이 바로 의식이며, 곧 세상에 대한 끊임 없는 예측, 그리고 새로운 감각 정보에 의해 그 예측이 확인되거나 혹은 오류로 판명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바로 의식이라는 것입니다. 숲 속의 검은 줄무늬는 당신이 한 발을 내딛음으로써 그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였음을 알게 되며, 이로써 그 줄무늬가 뱀이라는 예측은 그 신호가 너무 강해 당신의 시각 신호가 뱀이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당신에게 말하기 전에 오류로 판명됩니다. 즉,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매 순간 만들어갑니다. 이런 활동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뱀”에 대한 예측이 뇌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면, 실제로 뱀을 보고 나서 당신을 도망가게 만들 아드레날린 호르몬은 이미 늦었을 것입니다.
뇌는 우리의 심장 박동, 폐의 활동과 면역계, 호르몬 수치 등을 또한 정보로 받아들입니다. 인체의 상태에 대한 상시적인 관찰 정보를 말하는 “내부감각정보(interoception)”는 일반적으로 의식보다 낮은 수준의 상태에서 처리됩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앞서 이야기한 우리의 감정을 결정하는 정서(affect), 곧 쾌감과 불쾌감, 흥분의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정보입니다.
뇌는 신체 내부로부터 오는 정보 또한 외부로부터 오는 정보를 처리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합니다. 곧, 무엇이 이런 변화를 일으켰는지를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예측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바렛은 자신이 내키지 않았던 한 남자와의 만남을 이야기합니다. 그와 커피를 마실때 그녀는 자신이 긴장하는 것을 느꼈고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 내가 잘못 알았구나. 나는 그에게 끌리는 것이 틀림없어.”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독감 때문에 말이지요. 그녀는 그와 커피를 마실때 일어난 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곧, 그녀의 뇌가 신체로부터 오는 정보를 통해 그녀 몸의 이상한 반응이 그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문화적인 설명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바렛은 우리의 뇌는 “신체 예산(body budget)”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신체 예산이란 “쿨한 과학 용어”인 항상성(allostasis)을 쉽게 표현한 것입니다. 스트레스가 너무 많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해 이 신체 예산의 균형이 깨어질 경우 우리의 의식은 부정적인 정서를 가지게 됩니다. 이는 그 균형이 얼마나 많이 깨어졌는지에 따라, 그리고 문화적 맥락과 과거의 경험에 바탕해 “정신이 무너지는 느낌” 혹은 “우울한 기분”으로 해석되게 됩니다.
바렛은 불안증과 우울증이 마치 심장병이나 당뇨, 치매 처럼 신진대사 질환의 일종이라 생각합니다. 과로, 수면 부족, 영양실조 등은 만성적인 신체 예산의 결손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예산의 균형을 잡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 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신체 예산에 가장 나쁜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면,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펠드만의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다수는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그녀 역시 이를 인정합니다. “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매우 흥미롭게 여기고, 이것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나를 관종이라 비난할때 나는 상처를 받을까요? 물론이죠. 나는 매우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래서요? 나는 과학자에요. 내 일은 진창 속에서 진실을 끄집어 내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대한 작업이며, 전형적인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한 장에서 바렛은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그녀의 다음 책은 올해 말에 나올 “뇌에 관한 7과 1/2개의 강좌”로, 더 가벼운 내용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해변에서 뇌과학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군요.” 물론 지금까지 그녀의 책이 읽을만한 것이었다해도, 여전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저녁 칵테일 시간이 되기 전에 당신의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게될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