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판정 받은 트럼프와 앞으로 펼쳐질 수 있는 시나리오들
2020년 10월 4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Richard Pildes, 워싱턴포스트 멍키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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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대학교(NYU) 로스쿨의 리처드 필데스 교수가 워싱턴포스트의 블로그 멍키 케이지에 쓴 글입니다. 앞서 지난 8월에 뉴욕대학교 정치학과의 조슈아 터커 교수가 필데스 교수와 대선 후보가 중도에 사퇴하거나 사망할 경우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지 논의한 내용을 칼럼으로 썼는데,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고 입원하면서 필데스 교수가 내용을 새로 업데이트했습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 외에 증세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해 우리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불안을 조장하려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만약 다음 두 경우에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상황(incapacitated)이 됐을 때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할지 미리 생각해봐야 할 겁니다. 두 경우란 우선 선거 전에 대통령 후보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아니면 선거를 치러서 이겼지만, 취임식 전에 당선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경우입니다.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공화당이 전국적으로 꾸린 조직이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Republican National Committee)입니다. 먼저 첫 번째 시나리오, 즉 대선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대통령 후보를 교체할 수 있습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회원은 총 168명입니다. 50개 주와 6개 미국령에서 각각 3명씩 꾸려집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규정에 따르면, 전당대회 때 각 주에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는 데 주어진 대의원 숫자만큼의 투표권을 그 주의 전국위원회 회원 3명에게 부여합니다. 예를 들어 알래스카주는 전당대회 때 (대의원 총 2550명 가운데) 28표를 행사했습니다. 그럼 기존 후보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돼 후보를 교체할 때도 알래스카 출신 전국위원회 회원 3명이 총 28표를 결정하는 겁니다. 만약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의견이 3명 사이에 갈라지면, 표도 1/3씩 나눠서 행사하게 됩니다. 유력한 대체 후보가 있을 경우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신속히 후보를 새로 추대하겠지만, 만약에 공화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릴 경우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경우는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대선까지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면 검토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아직 대선까지 시간이 충분하다면 정당은 얼른 새 후보를 추대해 각 주 선관위에 이를 알리고 투표용지를 새로 인쇄하면 될 겁니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죠. 투표일을 한 달여 앞둔 지금 후보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더라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때문에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다면 우리가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건 앞으로 2~3주 뒤의 일일 겁니다. 투표일을 보름여 앞둔 상황에 이미 우편투표로 표를 행사한 유권자도 수천만 명에 이를 수 있는 시점입니다.

또 주마다 이미 후보를 바꿔 투표용지를 새로 인쇄하려면 통과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을 텐데, 이미 그 기한은 모든 주에서 오래전에 지났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이 문제를 50개 주 법원으로 가지고 가서 새 후보의 이름을 넣은 투표용지를 새로 인쇄해 선거를 치르라는 법원 명령을 내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더라도 선거일까지 새로 투표용지를 인쇄하기에도 이미 시간이 빠듯합니다. 그러니까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2020년 대선 투표용지 후보란에 있을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는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고, 그래서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더라도 11월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선거에서 승리한 뒤 다음 임기를 시작하는 1월 20일 전에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이땐 상황이 정말 복잡해집니다.

우선 미국은 주별로 정한 선거인단이 자기 주의 투표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 제도를 채택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 주의 유권자 투표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더 많은 표를 받았는데, 대통령직은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을 때 선거인단이 자신의 표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미국의 많은 제도가 그렇듯 선거인단에게 어느 정도 재량을 부여하는지는 주마다 다릅니다. 어떤 주에서는 선거인단이 자기 주에서 승리한 후보에 표를 던져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물론 그런 의무가 없더라도 지금껏 거의 모든 선거인단이 유권자들의 뜻을 따랐죠.) 그런 주의 선거인단은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대통령을 대신해 지명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확률이 높습니다. 심지어 이런 경우에는 선거인단이 재량껏 최선이라고 여기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다고 법으로 명시해놓은 주도 있습니다. 선거인단은 그 주에서 투표 결과 승리한 후보를 배출한 정당이 임명합니다. (대부분 승자독식 방식을 따르는 미국 주에서 예를 들어 민주당 후보가 한 표라도 더 받으면 민주당이 그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을 전부 임명하는 식) 그 주 공화당이 선거인단을 허투루 임명하지 않는 한 선거인단은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지명한 새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겁니다.

문제는 오히려 그 주에서 유권자들의 표를 가장 많이 받은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을 두고 있는 주들입니다. 물론 법이 아주 촘촘하지는 않아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이 선거에서 이겼지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도 유권자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주의회가 선거 관련 법안을 제정할 때 이렇게 특수한 상황까지 예견하고 상정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 경우 선거인단이 공식적으로는 사실상 후보 자격을 상실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할 의무가 있지만, 주 선관위에서 정상을 참작해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지명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도 선거인단을 처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무시하고 법을 글자 그대로 적용하기엔 정치적인 부담이 매우 클 겁니다. 즉 선거인단이 유권자의 뜻대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고,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새로 추대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더라도 주 선관위는 형식적인 경고 정도만 하고 실질적인 제재는 가하지 않는 식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마침 대법원이 최근에 정확히 이 문제, 즉 선거인단이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를 따라야만 하는 주에서 승리한 후보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을 때 선거인단은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에 관한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이 사안에까지 대법원이 판결을 내린 건 아닙니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주 선거법에 선거인단은 유권자들의 투표 결과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있는 경우, 유권자들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는, 이른바 배신 투표를 한 선거인단을 주 정부가 처벌할 권한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이 쓴 다수의견에는 이번 판결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후보에 관한 선거인단의 투표에 관한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습니다.

요컨대 트럼프 대통령에게 문제가 생겨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불행한 상황이 펼쳐지면,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트럼프를 대신할 후보를 지명해 추대할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 주에서 선출된 선거인단은 결국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추대한 후보에게 표를 던질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만한 시나리오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만약 공화당 전국위원회를 비롯한 당내 의견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갈리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공화당 선거인단도 대체 후보 한 명에게 표를 몰아주지 못하고, 그 결과 트럼프 대통령 한 명이었다면 과반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당선됐을 상황에서도 어느 후보도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때는 하원이 선거인단에게 받은 표 상위 세 명의 후보 가운데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이때 하원의 표는 하원의원 한 명당 한 표가 아니라 한 주가 한 표를 행사합니다. (현재 의석대로라면 공화당 하원의원이 더 많은 주가 26개, 민주당 하원의원이 더 많은 주가 23개, 펜실배니아주는 공화-민주 동수)

물론 지금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그러나 한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병세가 어떻게 진척되느냐에 따라 이 문제가 활발히 논의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