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참전 군인 직접 비하했다”
2020년 9월 6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 옮긴이: 이번 주말 미국에서 단연 화제가 된 기사는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이 직접 취재해 정리한 애틀란틱의 단독 기사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전 군인을 비롯해 전쟁에서 숨진 미국인들을 가리켜 패배자(losers), 등신(suckers)이라고 조롱했다는 내용입니다.

녹취한 파일이 있는 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기사를 썼는데, 백악관은 즉각 반박하며 애틀란틱의 ‘가짜뉴스’를 거칠게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들이 애틀란틱의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고 확인하는 기사를 잇따라 냈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체로 우호적인 보수 성향의 폭스 뉴스마저 국방부를 출입하는 제니퍼 그리핀 기자를 통해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고 확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그리핀 기자를 당장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2018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에 있던 파리 근교 아인마른(Aisne-Marne) 묘지 방문 일정을 돌연 취소했습니다. 당시 백악관은 갑자기 비가 내려 “헬기가 운항이 어려워” 일정을 부득이하게 취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차를 타고 묘지까지 이동하는 건 경호 문제가 조율이 안 돼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두 가지 모두 거짓말이었습니다.

세계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목숨을 잃은 미군 참전 군인들이 묻혀 있는 아인마른 묘지에 트럼프 대통령이 가지 않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면 머리 스타일이 망가질까 봐 그랬던 것이고, 기본적으로 전쟁에서 숨진 미국 사람을 왜 기려야 하는지 대통령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아인마른 묘지 방문이 예정된 날 아침 몇몇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내가 묘지에는 왜 가야 하는 거야? 거기엔 죄다 패배자(loser)들밖에 없잖아.”

파리 방문 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또 벨로 우드 전투에서 숨진 1800명 넘는 해병대 장병들은 “등신(suckers) 같이 굴었으니 죽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벨로 우드 전투는 미국 전쟁사, 아니 세계 1차대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투입니다.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은 1918년 봄 파리로 진격하려던 독일군을 벨로 우드에서 막아 세웠습니다. 여기서 숨진 해병대 장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미군과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은 늘 최고의 예우를 다해 기려 왔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측근에게 이렇게 물었다는 겁니다.

“근데 이 전쟁에서 착한 편이 누구였던 거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왜 연합국(the Allies)의 편에서 전쟁에 참전했는지 잘 모르겠다고도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인이 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전쟁 포로 이력을 예전부터 비하하고 경멸해 왔습니다. 매케인 전 의원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5년 동안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 공화당 대선 경선 당시 매케인 의원에 관해 이렇게 말했죠.

“적군에 붙잡힌 전쟁 포로가 어떻게 영웅입니까? 나라면 포로로 안 잡힌 사람을 더 높게 치겠어요.”

그때부터 트럼프 대통령이 애국심, 병역 의무를 다하는 일, 국가를 위한 희생 같은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또 취재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정치인 가운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운 사람을 이런 식으로 경멸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매케인을 그렇게 끈질기게 공격한 트럼프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됐습니다. 이어 공화당 후보가 된 뒤엔 2004년 이라크에서 포로로 잡혔다 살해된 육군 대위 후마윤 칸의 부모를 공격하고 조롱했지만, 대통령에도 당선이 됐죠.

매케인은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 뒤에도 줄기차기 트럼프를 비판한 몇 안 되는 공화당 정치인이었습니다. 당연히 트럼프는 매케인에게 앙심을 품게 됐죠. 2018년 8월, 매케인이 숨지자 트럼프는 백악관 참모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패배자 자식의 장례식에 정부에서 절대로 아무런 지원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 3명에게 확인한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 매케인 전 의원의 죽음을 기리며 조기를 게양한 걸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욕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미친 거 아냐? 정신 나갔어? 저 새끼는 루저 새끼라니까.”

매케인 전 의원의 유족들은 장례식에 트럼프 대통령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백악관에 확인차 연락을 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어 기사가 발행된 뒤 백악관의 알리사 파라 대변인은 다음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이 기사는 완전히 잘못된 보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를 최고로 존중한다. 대통령은 가능할 때마다 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왔다. 군인들의 급여를 인상했고, 군비 지출도 늘렸으며, 퇴역 군인 지원에 관한 제도와 정책 개선에도 앞장서 왔다. 군 가족들을 향한 지원도 빈틈없이 시행했다. 기사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대통령을 모함하고 있다.”)

영웅적 행위에 관한 트럼프의 생각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본 또 다른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던 사람들을 왜 존경하고 영웅으로 추켜세우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전투 중에 격추당한 비행기 조종사를 왜 군에서 기리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적어도 두 번 트럼프 대통령은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패배자(loser)라고 불렀습니다. 이유는 세계 2차대전에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부시 전 대통령이 일본군에 격추된 적이 있습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포로로 붙잡히지 않았지만, 격추된 비행기에 타고 있던 군인 8명은 일본군에 붙잡혀 고문당하고, 처형됐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를 향해 트럼프 대통령은 논리고 뭐고 가리지 않고 인신공격을 퍼붓곤 하는데, 부시 전 대통령 일가는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습니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군을 향한 비아냥과 몰이해가 파리 근교에 묻혀 있는 세계 1차대전 참전 군인들에게까지 미친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태어나기 약 30년 전에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에서 복무하는 것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자원해서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대에 복무한 적이 없습니다. 베트남전 당시 나이로는 징집 대상이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징병 유예 판정을 받았죠. 발에 뾰족하게 자라난 뼈가 있어서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베트남을 다른 맥락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1990년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은 수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는데도 성병에 걸린 적이 없다며, “내가 성병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 때문에 성병은 나한테 일종의 베트남 같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7년 현충일,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데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한 이 가운데는 존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이 있었습니다. 켈리 전 장관은 얼마 뒤 백악관 비서실장이 됩니다. 트럼프와 켈리는 알링턴 국립묘지의 60번 구역을 찾았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이 가장 최근에 벌인 전쟁에서 숨진 장병들이 묻혀 있고, 그중에는 켈리 전 장관의 아들 로버트 켈리도 있었습니다. 로버트 켈리는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다가 29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원래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목적은 켈리 당시 장관과 함께 켈리의 아들이 묻힌 곳을 찾아 슬픔을 나누고 참전 군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로버트 켈리의 묘지 앞에서 켈리 장관에게 직접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난 사실 도무지 이해가 안 가네요. 이 사람들은 어떤 생각으로 전쟁에 간 걸까요?”

측근들에 따르면 켈리 장관은 처음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전장으로 달려간 미군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소 서투르게 표현한 거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켈리 장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말해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생각으로 전쟁에 가는 건지 진짜로 이해를 못 해서 한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옮긴이: 원문의 영어 표현은 “What was in it for them?”입니다. 더 직설적으로 옮기자면 “도대체 뭐하러 전쟁터에 제 발로 갔답니까?” 정도입니다.)

켈리 전 장관의 오랜 친구이자 전역한 4성장군 한 명은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럼프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한다는 개념 자체를 전혀 몰라요. 그러니까 당장 뭔가 (금전적) 이득이 되는 것도 없는 일을 열심히 하는 모든 사람을 머저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군인들이 돈 보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트럼프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조금도 이해하고 상상 자체를 못 합니다. 그래서 현충일에 국립묘지를 찾아 젊은 나이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해병대원의 부모에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겁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트럼프 대통령이 군대와 군대에 복무하는 것 자체를 경멸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군 장성들에게 직접 의견을 묻곤 했습니다. 다양한 해석과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군 조직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즉 역대 대통령은 누구나 군은 대통령이 아니라 헌법에 충성하는 조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실제로 트럼프가 대통령에게 주어진 군 통수권 관련 규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말한 군인들도 많았습니다.

이 문제는 실제로 지난 6월에 언론에서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게 됐죠.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지던 때였습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코앞까지 모여든 시위대를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로 해산하고 (군과 경찰의) 철통 경호를 받으며 길 건너 교회로 가서 성경을 (거꾸로)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군대까지 동원했고,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대통령의 동선을 사전에 모르고 따라갔다가 사진에 군복을 입은 채 나와 공개 사과까지 해야 했죠.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이례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히 비판한 글에서 지적한 내용도 트럼프의 군에 대한 몰이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50년 전에 처음 군인이 되었을 때 나는 모든 군인이 그렇듯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나와 같은 맹세를 하고 군인이 되었을 장병들이 동료 시민들의 헌법에 보장된 권리(집회, 결사의 자유)를 짓밟으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국민이 선출한 군 통수권자가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진 한 장을 찍는 쇼를 벌이는 데 그 많은 공권력이 동원됐고, 합참의장은 그런 줄도 모르고 군복을 입은 채 옆에 서 있었다.”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이 사건 이후 공개적으로 자신이 사전에 대통령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해 군복을 입은 채 등장한 건 잘못이라며 사과했습니다.)

돈밖에 모르는 트럼프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라고 보는 군인들도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 ‘돈 되는 일’이 아니면 그 어떤 노력을 들이는 것도 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니, 능력이 있는데도 돈을 벌려고 더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죄다 패배자로 본다는 거죠. (조 던포드 전 합참의장이 백악관 브리핑에 온 적이 있는데, 브리핑이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은 보좌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사람은 분명이 똑똑해 보이는데, 도대체 왜 군대에 간 거죠?”)

조금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가 실은 본인이 모자란 사람, 머저리(sucker)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병적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도 트럼프에겐 자기 목숨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한 등신이고,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거나 다친 사람도 마찬가지로 ‘못난 놈’이 됩니다. 트럼프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한 군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에요. 전쟁에 나서는 걸 영웅적인 행위로 절대 보지 않죠.”

트럼프가 자신이 죽을까 봐, 혹은 다쳐서 장애가 생길까 봐 정말 많이 걱정한다고 귀띔해준 이들도 있습니다. 걱정이 지나치다 보니 그런 일을 겪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기도 싫어하게 됐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전사한 장병들을 “아주 많이” 직접 맞이했다고 말했는데, 대통령이 된 뒤 해외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시신이 미국으로 오는 도버 공군기지에 트럼프가 방문한 건 딱 4번입니다. 한 번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임기로 있는 동안 전사한 장병들의 가족에게 거의 다 위로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가 대통령에게 전화 받은 적 없다는 유족들의 증언이 잇따르자 부랴부랴 위로의 편지를 써서 부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 퍼레이드에 대단히 집착해왔습니다. 다만 군사 퍼레이드에도 호오가 분명합니다. 2018년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할 때 트럼프는 백악관 관리들에게 상이군인은 퍼레이드에서 빼라고 부탁했습니다.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팔이나 다리가 잘린 사람들을 퍼레이드에서 보는 걸 거북해할 거라는 이유였습니다.

“그런 거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애틀란틱, Jeffrey Gold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