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염병 시대의 음모론, 오늘날 더 위험한 까닭은?
2020년 5월 25일  |  By:   |  세계, 정치, 칼럼  |  No Comment

워싱턴포스트 / 칼럼니스트 Max Bo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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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의 경험 중 가장 최악의 순간은 가장 평화로운 풍경을 배경으로 찾아왔습니다. 하와이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 있자니 자연은 인간의 고통에 얼마나 무심한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죽어 나가도 태양은 떠오르고 밀물은 들어옵니다. 온 세상이 전염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금, 우울하고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보면 인간이 고통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요!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 안식을 찾는 곳은 주류 종교일 수도 있고, 보다 극단적인 종류의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언제나 음모론이 득세하기 마련입니다. 음모론은 무작위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사실은 숨겨진 인간의 힘의 산물이며 따라서 이를 인식한 이들에 의해서 통제되거나, 최소한 이해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지난 세기의 대재앙들은 모두 ‘음모론 덕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무기 제조업자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설부터, 루즈벨트 대통령이 진주만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설, 국내의 배신자 때문에 동유럽과 중국이 공산주의에 넘어가게 되었다는 설, 군수업계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했다는 설, 코카인 중독을 유행시킨 건 CIA라는 설, 9/11 테러가 미국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설,  조지 부시가 석유탐사 기업 핼리 버튼을 돕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설은 모두 음모론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음모론에 대한 욕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이는 종종 손가락질받는 소수를 거악으로 지목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수 세기 동안 사람들은 프리메이슨이 정부를 이끌고 유대인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가톨릭 신자들이 교황의 제5열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똑똑한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들을 믿었죠. 전보를 발명한 새뮤얼 모르스는 1835년 가톨릭계 이민자들이 미국을 장악해 지배할 거라는 내용의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1850년에는 이와 같은 반가톨릭 히스테리를 기반으로 한 정당(Know Nothing Party)이 만들어지기도 했죠.

역병은 특히나 음모론의 좋은 토양이 됩니다. 14세기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질병이 퍼졌다는 음모론으로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코로나바이러스를 둘러싼 음모론들이 퍼져나가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중국 생물학무기 실험실이, 미군이, 빌 게이츠가, 인구 통제를 꿈꾸는 집단이, 심지어는 G5 송신탑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습니다. “플랜데믹”이라는 영화를 보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 병에 걸리고, 표백제가 치료제인 한편, 백신은 사람을 죽인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의 영화가 온라인에서 80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죠.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종교와 같은 지위를 얻은 카논(QAnon) 음모론에도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가 포함됐습니다. 이른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트럼프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 핵심이죠.

지금의 음모론이 역사 속의 음모론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 시대의 음모론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전파됩니다. 온라인 세상은 논란 없는 팩트 대신 서로 경쟁하는 내러티브만이 존재하는 탈진실의 공간으로, 카논 음모론과 같이 정신 나간 주장도 추종자를 모을 수 있습니다.

둘째, 걸린 판돈이 더 높아졌습니다. UFO가 뉴멕시코주 로스웰에 착륙했다고 믿거나, 엘비스가 아직 살아있다고 믿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짜라고 믿거나 백신이 더 위험하다고 믿는 것은 훨씬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인식이 널리 퍼지면 공중 보건에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백신 반대론자들은 적잖은 해악을 끼치고 있죠.

끝으로, 이번에는 고삐 풀린 ‘음모론 덕후’가 백악관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전 정권의 음모에 대해 개탄하고,  조 스카보로가 비서를 죽였다고 주장하는 한편, 중국의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거나, 하이드록시 클로로퀸이 효과적인 예방약이라고 말하고, 표백제 인체 주입을 이야기합니다. 대통령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세 활동을 막으려는 민주당 측에서 코로나 사태를 부풀리고 있다면서, 11월 3일 대선이 끝나면 코로나바이러스가 마술처럼 사라질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권위 있는 인물에 의해 퍼지면서 신뢰성을 획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화당은 최근 오레곤주 상원 후보로 카논 음모론 지지자를 지명했고, 당 전체가 현대판 “Know Nothing Party”로 변해가는 모습입니다. 한때는 주변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당당히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그야말로 기세등등입니다. 사람들이 좀 더 이성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현 상황을 이해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음모론이 판치면, 재앙은 더욱더 끔찍해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