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양극화 속에 코로나19를 맞은 미국
2020년 3월 29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바이러스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습니다. 팬데믹이 된 코로나19가 덮친 미국이란 나라도 당연히 둘이 아니라 하나죠. 그런데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정말 같은 나라에 사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대조를 이룹니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 심각한 경기침체가 다가오자 공화당과 민주당이 모처럼 초당적으로 긴급 지원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과정에서도 코로나19 상황 자체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이 여러 차례 보였습니다.

NBC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밋더프레스(Meet the Press)에서 다룬 “코로나19 시대 속 정치적 양극화”의 핵심 내용을 추렸습니다.


1번 세상 (앤드류 쿠오모 뉴욕 주지사, 3/24 브리핑)

상황은 하나도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악화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예전에 전문가 한 명이 제게 지금 상황을 가리켜 미국 전체로 (바이러스라는) 화물열차가 오는 상황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지금 코로나19로 인한 환자와 사망자 숫자 추이를 보면 그냥 열차가 아니라 고속열차가 빠르게 미국으로 돌진하는 것 같습니다.

 

2번 세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3/24 폭스뉴스 인터뷰)

4월 12일 부활절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얼른 미국 경제가 다시 활발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부활절 예배에)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1번 세상 (랄프 노르댐 버지니아 주지사, 3/23 워싱턴포스트 보도)

버지니아주는 모든 초중고등학교에 남은 학기 휴교령을 내렸다.

 

2번 세상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리버티대학교(Liberty University)의 제리 팔웰 주니어 총장, 3/23 뉴스 어드밴스 보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주 전체의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리버티대학교는 봄방학이 끝나자 원래대로 학생들에게 학교 기숙사로 모두 돌아오라고 권고했다. 제리 팔웰 주니어 리버티대학교 총장은 최대 5천 명의 학생이 원래대로 기숙사에서 생활한다며, 수업은 강의실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진행하더라도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또 교수들도 캠퍼스에 있는 교수 연구실이나 빈 강의실에서 강의를 진행하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번 세상 (민주당원)

CBS와 유고브(YouGov)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원들에게 코로나19와 관련해 누가 제공하는 정보를 가장 믿는지 물었습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 87%), 주지사(75%), 전국 언론(72%), 가족과 친구(72%)가 하는 말은 신뢰도가 높았고, 종교 지도자(44%)는 신뢰가 낮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말을 진짜로 믿는다고 답한 이들은 14%에 그쳤습니다.

 

2번 세상 (공화당원)

CBS와 유고브가 진행한 같은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원들이 내놓은 답을 보면 민주당원들의 답을 거꾸로 뒤에서부터 읽는 것 같습니다. 공화당원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해 가장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나 기관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90%가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믿는다고 답했습니다. 질병통제예방센터(84%), 가족이나 친구(81%), 주지사(65%)의 말을 믿는다는 답변은 민주당원들과 비슷했지만, 종교 지도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가 71%로 높았고, 반대로 전국적인 언론이 보도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13%로 매우 낮았습니다.

 

물론 지금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흔치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대체로 과학적인 사실과 근거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과학자, 의료·보건 전문가들이 1번 세상에, 그러한 과학자와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는 이들이 2번 세상에 산다고 거칠게 나눌 수 있습니다.

전례 없는 사태 속에 과학적 사실이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탓에 의견이 갈리는 면도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사실과 전문가들이 내놓는 경험과 연구를 기반으로 한 지식과 조언을 덮어놓고 비난하며 그 반사이익으로 인기를 얻은 정치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지금 우리가 누구의 말을 믿고 따르느냐에 따라 상당히 큰 차이가 날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는 수백, 수천 명, 최악의 경우 수백만 명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며, 미국과 전 세계 경제가 이내 회복할 수 있는 경기 침체에 빠질지,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불황의 늪에 빠질지가 걸린 문제입니다.

 

“부활절까지 경제활동 재개” 군불 때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미국 경제가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보기 괴롭다며, 오는 4월 12일 부활절까지는 경제활동을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코로나19 백악관 태스크포스를 비롯해 참모들과 논의를 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들어 경제활동은 재개하되 이른바 ‘고위험군’에 속하는 노인층과 기저질환이 있는 이들만 선별적으로 거리두기를 지속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다른 나라 정부와 보건 당국이 일제히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일축한 정책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비판은 철저히 무시하며,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이들이 올리는 트윗만 모아 이를 두고 ‘미국인의 의중’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폭스뉴스에서 방송한 타운홀 미팅에서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 있다. 손만 잘 씻으면 된다.”라고 말한 것도 이런 사고의 단면을 잘 보여줍니다.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진이 이 방안을 두고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바이러스를 제대로 억제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경제활동을 재개하면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병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 자명하다는 겁니다.

현재 의료 시스템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모두 치료하더라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영국에서 25만 명, 미국에서 110~1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매우 낙관적인 조건에서 전망한 사망자 숫자가 이렇다. –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진

이 연구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영국 전역에 봉쇄 조치를 내리는 데 영향을 미쳤고, 미국 정부가 더 강력한 거리두기 정책을 시행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MF 수석 경제학자를 지냈으며 지금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리스 옵스펠트는 “너무 섣불리 움직였다가 감염이 급속도로 퍼져 환자들이 의료 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으면 지금까지 기울인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될 겁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맞게 될 위기는 경제 위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클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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