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호감도를 측정하는 맥주 테스트, 뒤집어서 봅시다
2020년 1월 6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2004년 미국 대선의 결과에 정치평론가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조지 W. 부시는 많은 이들에게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대통령이었죠. 부자들에게 부를 몰아주었고, 선포한 전쟁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으며, 말솜씨도 형편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많은 미국인들이 다시 부시에게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이 선거 결과를 이리저리 파헤치고 분석하면서, 한 가지 설득력 있는 설명이 등장했습니다. 선거를 두 달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유권자의 대부분이 맥주 한 잔을 함께 하고 싶은 상대로 존 케리가 아닌 부시를 꼽았다는 것이었죠. 당시 USA투데이에 실린 칼럼은 이를 두고 “부시 대통령이 가진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꽤나 괜찮은 사람, 오늘 당장 내 집 앞에 나타나도 불편하지 않을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정치인의 호감도를 분석하는 방식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맥주 한 잔 테스트”의 의미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였다면 어떨까요? 즉, 유권자들이 내가 맥주 한 잔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을 고른 것이 아니라 나와 맥주 한 잔 하고 싶어할 것 같은 사람을 고른 것이라면요?

2009년 늦가을, 마사 코클리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고(故)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선거 운동 중이었습니다. 공화당 쪽 후보인 스캇 브라운에 밀리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코클리가 유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난이 일자, 그는 날선 반응을 보였습니다. “내가 이 추운 날씨에 펜웨이파크 앞에 나가서 악수라도 해야 된다는 겁니까?” 결국 몇 주 후 실시된 선거에서 코클리는 브라운에 패했고, 그 결과는 민주당의 의석수에 치명타를 입히고 말았습니다.

정치인의 호감도를 측정하는 맥주 문제는 사실 “왜 일어날 가능성이 극도로 희박한 상황을 유권자들이 상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유발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의 의미가 거꾸로라면 유권자들은 훨씬 더 이성적인 존재가 됩니다. 정치인이 당선 후 어떤 결정들을 내리게 될지를 유권자들이 예측할 방법은 사실상 없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책임을 물을 방법은 제한적이죠. 그러니 유권자 입장에서는 어떤 정치인이 가장 나의 이익을 잘 이해하고 증진시킬 가능성이 높은지를 추정해볼 수 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 대한 특정 후보자의 태도는 그래서 아주 강력한 판단 근거가 됩니다. 후보자가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양한 상황에서 내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죠. 반대로 나 같은 사람을 싫어하는 정치인, 즉 나랑 맥주 한 잔 하기를 꺼려할 것 같고 속으로 나를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일 것 같으면 나를 배신할 것 같다는 것이죠.

뒤집은 맥주 테스트는 코클리의 말실수가 왜 치명적이었는지를 알려주는 설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코클리는 스스로 레드삭스 팬들과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정치인이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0년 고든 브라운이 한 노인 여성을 편협하다고 비난했을 때,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 지지자들을 두고 ”한심한 인간들(basket of deplorables)“이라고 말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을 내려다보는 엘리트주의자라는 자신들에 대한 의심을 확인시켜준 것이나 다름없었죠.

어떠한 여론조사에서도 유권자들에게 어떤 후보가 당신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어할 것 같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진 적은 없으니 나의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가설은 또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바로 민주당 대선 주자 가운데 조 바이든이 꾸준히 선두를 지키고 있는 현상입니다.

바이든은 정치 인생 초기부터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교감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8년 대선 캠페인에 대한 회고록 ”What It Takes“의 저자 리처드 벤 크레이머는 바이든이 자신을 만나러 온 모든 사람과 교감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유세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고 묘사합니다. 바이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뉴욕“지의 최근 기사 역시, 사람들에 대한 바이든의 애정에 대해 비슷하게 적고 있습니다. 유세 현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별의별 사소한 이야기에도 다 귀를 기울이고, 모두를 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처럼, 모든 아이들을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자식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구식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도 공화당과 협치하겠다고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는 점도 이런 맥락과 함께라면 조금 달리 보입니다. 공화당원들이 너무 과격하고 당파적이라 협상의 상대로 대할 수 없다고 강조하는 다른 후보들은 그런 언행을 통해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모든 이들을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바이든은 사람들에게서 최선의 모습을 보려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이 현실적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는 그가 자신의 잠재적인 지지자들에 대해 팔짱을 낀 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암시합니다. 유권자들이 바이든에 대해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가 나, 나의 아버지나 장모님, 심지어는 미친 삼촌과도 기꺼이 맥주를 한 잔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일 거라는 점이죠.

이 점에서 조 바이든은 그의 주요 라이벌들과 크게 대비됩니다. 내가 믿는 종교는 결혼이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가르친다 말하는 지지자에게 뭐라고 답변하겠냐는 질문에 엘리자베스 워런은 웃으면서 ”한 여성과만 결혼하세요“라고 답했지만, 곧장 ”한 사람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요“라고 심술궂은 말을 덧붙였죠. 이 답변의 문제는 워런이 동성 결혼의 강경한 지지자라는 점이 아닙니다. (바이든이야말로 오히려 오바마보다도 전에 동성 결혼 법제화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죠.) 문제는 그가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 또 그 사람의 배우자까지 바보로 여긴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입니다.

유권자가 스스로 특정 정치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보다 그 정치인이 나를 얼마나 좋아할지에 더 관심이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합니다. 정치인을 평가하고 판단함에 있어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그 사람과 있을 때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내 의견을 말하면 나를 비웃지 않을까? 우리집에 초대해서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면 재미있게 놀다 갈 사람일까?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사상적 순수성 검증은 더욱 위험한 일이 됩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일상 생활에서 공공 정책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망설임없이 폄하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정치인은 ”진짜 맥주 테스트“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민주당이 마음 깊이 새겨야 할 점입니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미국인들이 ”민주당은 나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민주당에서 환영받을 것이다“라는 질문에, 일반 응답자의 44%, 부동층의 38%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2004년 케리가 부시에게 패배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와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민주당이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부시보다도 더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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