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브렉시트, 포퓰리즘의 득세는 정말 인종차별주의자가 많아졌다는 방증일까?
2019년 12월 24일  |  By:   |  세계, 정치  |  No Comment

인종차별주의와 이민자를 향한 노골적인 혐오의 원인으로 많은 사람이 급진적인 포퓰리즘의 부상을 꼽습니다. 인종차별 구호를 외쳐대고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극우 단체들을 떠올려보면 그럴듯한 분석입니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퓰리즘 때문에’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자가 되었다고 인과관계를 단정 짓기에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호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관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진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한 사안에 각각 호오를 표시하고 의견을 냅니다. 모든 사안에 좋다/싫다, 찬성/반대 의견은 있을 수 있죠. 그러나 대부분 사안은 사실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반대로 누구나 이것 하나 만큼은 꼭 관철하거나 반대로 꼭 막아냈으면 하는 ‘강한 의견’이 있는 사안이 있습니다. 실제로 투표장에서 표와 직결되는 두드러지는 사안은 (매번 다를 수 있지만)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선호를 ‘preference’라고 부르고, 이와 대비해 특히 표심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은 (두드러진다는 뜻의) ‘salience’로 나누어 분석해야 한다는 정치학자들의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누구나 사안마다 정치적 선호는 있겠지만, 이를 분석할 때 모든 사안을 똑같이 취급해선 안 되고 가중치를 적절히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정치 행위를 분석할 때도 일반적인 선호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안을 따져보고 그에 대한 반응을 집중적으로 추적해야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로 인한 결과를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포퓰리즘 때문에 사람들이 인종차별주의자가 됐거나 안 그러던 사람이 외국인, 이민자를 더 혐오하게 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원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인종에 관한 두려움이나 사회적인 우려가 전에는 별로 신경 쓸 필요 없는 문제였는데 언젠가부터 중요한 문제가 된 이유, 그리고 여기에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으로 득세한 정치인들의 구호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정확한 분석을 도출하는 길일 겁니다.

 

인종차별과 포퓰리즘의 관계는 복잡한 실타래와도 같습니다. 어느 쪽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 없죠.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인종차별주의나 외국인 혐오 정서의 부상은 포퓰리즘의 득세와 상관관계가 거의 없고, 있더라도 낮습니다.

스웨덴은 인종차별이 거의 없고, 이민자를 향한 국민의 태도도 상당히 열려 있습니다. 그런 스웨덴에서 극우 정당 스웨덴 민주당은 의석수 기준 세 번째로 큰 정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반대로 아일랜드와 스페인은 스웨덴과 비교하면 인종차별이나 이민자에 대한 혐오 정서가 분명 팽배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극우 정당은 별 힘을 쓰지 못하고 보잘것없는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포퓰리즘이 더 많은 지지를 받으며 정치적인 입지를 다졌지만, 같은 기간 유럽과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이민자를 향한 혐오는 대체로 감소세가 뚜렷합니다.

인종차별주의나 이민자, 외국인을 향한 혐오 자체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인종에 관한 갈등이나 이민자로 인한 정체성의 혼란과 같은 사회 문제에 사람들이 전보다 더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며, 더 중요한 문제로 여기게 됐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즉, preference가 아니라 salience의 문제가 되면서 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상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어떤 사안을 중요하다고 여기게 될까요? 여러 가지 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테러 공격이나 난민이 대거 유입하는 등 외부적인 충격 때문일 수 있고, 언론이 어떤 사안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 자연히 인식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과 정당이 주도하는 정치적 담론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정치학자 윌리엄 라이커가 지적한 것처럼 우리가 목격하는 정치적인 현상은 정치권의 “정치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의제 설정(Agenda Formation)”이 낳은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성공적인 정치인은 자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환경을 만들어낸다. 그러려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정당이 유리한 이슈를 찾아내 이를 부각하고, 반대로 불리한 이슈는 최대한 묻어둬야 한다.

라이커는 유리하게 환경을 구축하는 능력을 더 강조했습니다.

인종이나 이민, 정체성에 관한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자꾸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서 이를 표심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로 만들어내는 건 정치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는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인종 문제나, 이민자, 외국인으로 인해 국가나 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때는 어김없이 포퓰리즘이 득세하곤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있죠. 그런데 이런 연구 결과를 정체성에 관한 논쟁과 포퓰리즘이 유권자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잘못 짚으면 ‘포퓰리즘이 인종차별주의자를 낳았다’는 섣부른 결론이 나오겠죠.

대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원래 이 문제에 대한 막연한 우려 혹은 두려움이 있는데, 자꾸 이 사안이 중요하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큰 사달이 날 것처럼 미디어가 이야기해대니까 사람들도 자꾸 그 걱정과 두려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게 그 사안은 마음속에 있는 여러 가지 주제 가운데 켕기는, salience한 문제가 되고, 사람들은 이를 토대로 투표하게 됩니다. 밴더빌트대학교의 래리 바텔 교수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사실 한 사회에 포퓰리즘 정서가 얼마나 받아들여지는지와 우익 포퓰리즘 정당의 지지율 사이에 분명한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 성공한 포퓰리즘 정치인과 포퓰리즘 정당의 비결은 대개 원래 사람들의 마음속에 늘 있던 포퓰리즘 구호에 솔깃할 수 있는 그 지점을 제대로 건드린 데서 찾아야 한다. – 래리 바텔

유럽의 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은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이민자와 외국인, 소수자를 끊임없이 범죄자나 도덕성이 없는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범죄율이 높아진 것도, 국가의 정체성을 갉아먹는 것도 다 이민자 탓으로 돌립니다. 존 사이즈, 마이클 테슬러, 린 배브릭 교수가 2016년 미국 대선을 분석한 공저 “정체성의 위기(Identity Crisis)”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은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트럼프의 승리를 누군가에 대한 적대감이나 편견, 혐오의 결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미국 사회와 문화가 변화하는 데 대해 많은 사람이 느끼던 불만과 불안한 정서를 트럼프가 아주 분명한 어조로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의 가려운 부분을 정확히 긁어줬고, 켕기는 지점을 콕 집어 처방을 제시했다. 적잖은 유권자가 ‘이 문제만 해결해준다면 기꺼이 그 사람을 찍겠다’고 생각하던 문제의 맞춤형 답안을 들고나온 후보였다. – “정체성의 위기” 중

 

이민자, 난민, 외국인,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중요해진 데는 우파 포퓰리스트뿐 아니라 좌파, 진보 진영도 적잖은 공이 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특히 유럽에서 치러진 선거는 대체로 경제 정책을 둘러싼 전통적인 의미의 좌우 대결이었습니다. 그러다 20세기 말이 되면서 좌파 정당들이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하자, 경제 정책에서 좌우 정당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죠. 유럽에서는 실제로 경제 정책에서 차이가 줄어들면서 좌우 정당은 상대방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데 사회문화적인 이슈를 들고나옵니다. “(경제 정책은 거기서 거기라도) 저쪽보다 우리 편이 기본적으로 더 낫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정당들은 자꾸 사회문화적으로 대립할 만한 소재를 찾았고, 서로 다른 주장을 부각했습니다. 유권자들도 경제 정책보다 자연히 사회문화적인 문제에 주목하게 됐죠.

2016년 미국 대선도 사회문화적 이슈가 두드러졌던 선거였습니다. 트럼프뿐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도 버락 오바마보다 인종과 이민자 문제를 훨씬 더 많이 언급했죠. 트럼프가 선점한 의제에 관해 트럼프의 주장에 반론을 펴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클린턴 캠프에서도 이 문제를 중심으로 차별점을 부각하는 것이 득표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 2016년 선거에서 인종, 이민자,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비롯한 사회문화적 이슈는 단연 두드러지는, salience한 주제였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치러진 최근 선거에서 표심과 지지 정당, 지지 후보가 가장 극적으로 바뀐 유권자 집단은 교육 수준이 낮은(대학 졸업장이 없는) 노동자, 서민들입니다. 이들은 포퓰리즘 정당의 든든한 지지 기반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좌파, 사민주의 노선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지지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던 이들이 경제보다 이민자, 국가 정체성 등 사회문화적 이슈가 선거에서 중요해지자 포퓰리즘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겁니다.

포퓰리즘 정당은 끊임없이 유권자의 마음속에 있는 걱정과 두려움의 기저를 건드리며 불안을 자극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나 이민자, 난민에 대한 혐오는 포퓰리즘의 득세와 큰 상관이 없습니다. 정치적인 선호와 성향보다 투표장에서 표심을 좌우하는 ‘켕기는 이슈’가 바뀐 배경과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묘사하며 기저의 불안을 자극하는 포퓰리즘 정당의 전략이 지금 당장은 효과를 거두지만, 두드러지는 이슈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기 마련입니다. 지금 한창 잘 나가는 포퓰리즘 정당과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넘어서려는 이들이라면 포퓰리즘 정당이 짜놓은 룰에 얽매이지 말고 ‘두드러지는 문제’가 무엇이 될지 새로운 흐름을 예측하고 찾아내야 할 겁니다.

(워싱턴포스트, Sheri B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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