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가치관 변화 (2/2)
2019년 9월 11일  |  By:   |  세계  |  No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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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의 변화가 대학 교육을 받고도 학자금 대출을 갚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세대로 국한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캐서린 에딘, 티모시 넬슨,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앤드루 철린, 위트워스대학교의 로버트 프랜시스는 2000~2013년 14년에 걸쳐 대학교 졸업장이 없는 고령의 저소득층 남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를 분석한 결과를 올봄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보스턴, 찰스턴, 시카고, 필라델피아 근교에 사는 백인, 흑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인터뷰 대상이었습니다.

큰 그림에서 보면 이들의 견해와 가치관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더 높으며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전혀 달라 보입니다. 투표 성향도 정반대였습니다. 백인 노동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지층이었죠. 젊은 세대는 트럼프 득표율이 가장 낮은 유권자 그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저소득층 노동자들과 젊은 세대가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 나타내는 태도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자였더라도 노조 조직률이 높은 가운데 급여도 안정적이었고 퇴직 후에는 연금도 충분히 받을 수 있던 자신의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모든 게 열악해진 자신의 상황에 좌절해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기에 이른 겁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기존 종교에 등을 돌렸습니다. 이들이 종교에서 이탈한 속도는 밀레니얼 세대나 Z세대보다도 더 빨랐습니다. 미국에서 실제로 교회를 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1970년대부터 꾸준히 줄었는데, 대학 졸업장이 없는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 비율이 대학 졸업장이 있는 백인들 사이에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낮아졌습니다. 물론 종교에서 등을 돌린다는 게 기독교 자체를 저버리거나 신을 믿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신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게 된 겁니다. 주말마다 교회에 가지 않고 대신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파편적인 종교적 상징물이나 해석을 찾아 ‘자신만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종교적 요소를 스스로 골라서 이를 토대로 종교와 자신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 고유한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전통적인 종교를 저버린 데는 이른바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논문은 “종교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어렸을 때 믿고 따르던 종교를 저버리게 됐다고 답한 사람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성직자들을 사기꾼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라고 설명합니다. 논문 저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는 노동자 계급이 엘리트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 양상도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엘리트 정치인을 한데 묶어 비판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표를 몰아준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한 현상입니다.

셋째, 저소득층 남성 노동자들은 핵가족의 가치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양상은 젊은 세대와는 조금 다릅니다. 저소득층 노동자들의 혼인율은 교회에 가는 비율과 거의 비슷하게 낮아졌습니다. 다만 논문 저자들은 이들이 배우자와는 소원하게 지내거나 이혼하더라도 자식들과는 계속해서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한다는 데 주목합니다. 이미 연애를 통해 결혼한 뒤 자식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건 시기를 놓치고 실패했지만, 어쨌든 낳아서 키워낸 자식들과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커뮤니티를 되살리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이를 일종의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거라고 저자들은 분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앙, 가족, 커뮤니티 등 기존의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적립해나가는 좌충우돌 상황에서 저소득층 남성 노동자들과 젋은 세대가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바로 정신 건강이 이례적으로 나쁜 겁니다. 젊은 세대 미국인들 사이에서 불안과 우울증은 전에 없이 높은 수준이고, 자살율도 덩달아 매우 높습니다. 그런 가운데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절망 속의 죽음(deaths of despair)으로 불리는 약물 중독으로 인한 사망 혹은 자살율은 지난 20년간 치솟아 최근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기존의 제도와 가치관이 와해되는 상황에서 미국인들은 전에 없는 외로움과 불안에 고통받으며 이로 인해 목숨까지 잃고 있는 겁니다.

논문을 쓴 연구진들이 분석하고 묘사한 저소득층 노동자들은 삶의 의미를 간절히 찾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삶의 의미를 찾는 데 필요한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던 제도와 사회 구조가 없어진 데 있었습니다. 핵가족은 싫지만 아버지는 되고 싶었고, 기성 종교는 싫지만 정서적으로 기댈 곳에 목말라 했습니다. 노동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들이 살게 된 시대는 땀흘려 일하는 이들이 받는 경제적 보상이 갈수록 줄어들기만 하던 시대였습니다. 고통과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사회는 경제적 약자에게 중독성이 높고 끝내 목숨을 앗아갈 만큼 치명적인 약물을 처방한 뒤 이들을 사실상 방치했습니다. 자존감과 자부심을 느끼며 원하는 공동체를 꾸려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에 가깝습니다. 이들에게는 이 본성을 따라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바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의 설문조사를 보면 젊은 세대는 전통적인 가치관과 제도에 회의를 품고 있지만, 앞선 세대인 X세대보다 공동체를 꾸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관용도 그 어떤 세대보다도 큰, 품이 넓은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절망에 허덕이는, 모든 걸 체념한 세대로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들은 급변하는 경제 상황과 사회적 불의에 희생되고 상처받은 모든 이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입니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미투, 불법이민자 강제 추방 금지, 전국민 의료보험 등 굵직굵직한 사회적 이슈마다 젊은 세대는 늘 약자의 편에 섰습니다. 이는 이 세대가 태생적으로 진보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소셜미디어를 가장 잘 다뤄서 집회를 효율적으로 조직할 수 있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이들이 현재 경제 체제에서 공유한 세대의 경험이 이 세대를 자연스럽게 제도적인 권력의 남용에 저항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뭉치게 해줬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소득층 노동자들과 젊은 세대들이 단순히 가족이나 종교, 애국심이라는 가치를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존의 제도와 사회가 그런 가치를 위주로 살아가는 삶을 불가능하게 해버렸기 때문에 자연히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선 겁니다.

노동자 계급에 관한 논문을 쓴 저자들은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분명 엄청난 절망 속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동시에 이들이 넘어서려는 기존의 전통이라는 것이 완벽한 제도가 아니었으므로 희망적인 측면도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지금은 힘든 단순 반복 노동에 의존하던 제조업, 신자들에게 영혼의 안식을 제공해주지 못하던 교회, 여성에게 비대칭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던 전통적인 결혼 제도를 더불어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고통 속에서도 과거의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적잖은 이들이 불안정한 삶에 고통받을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자주적인 원칙을 세워내고 이전 세대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의 기초를 닦고 있다. 이들을 관찰하고 연구할 때는 노동자들이 흔들리고 주변부로 내몰리는 환경에 대한 철저한 기록과 분석 만큼이나 이들이 그 속에서 다시 만들고 세워나가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적잖은 이들이 불안정한 삶에 고통받으리라는 건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입니다. 실제로 이미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불안과 자살, 절망 속의 죽음이 급증하는 추세만 놓고 보면 지금을 국가적인 위기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훗날 역사는 아마도 지금을 과도기로 기록할 겁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이었지만 결국에는 구성원을 지켜주지 못했던 결함 있던 제도의 시대와 주변부로 몰린 노동자들과 주변부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던 젊은 세대가 만들어나갈 새로운 제도의 시대 사이의 과도기 말입니다.

(애틀란틱, Derek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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