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음주 금지” 규정이 낳는 역효과
임산부가 술을 마시면 뱃속에 있는 태아의 건강에 해롭다.
이 말에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특히 지나친 알코올 섭취는 태아의 발달과 성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끼칠 수 있다는 데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합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 마시는 건 괜찮다는 의견에 관해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음주를 허용해도 되는지에 관한 논란만 하더라도 문제는 대단히 복잡합니다. 여기에 임산부가 술을 마시지 않도록 권고하거나 혹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가지 정책에 상당한 부작용이 따른다는 연구 결과가 새로 나왔습니다.
공공보건연구원의 미낙시 수바라만 박사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의 사라 로버츠 교수가 미국 50개 주의 “임산부 음주 억제 혹은 예방 정책”을 연구, 분석한 결과를 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실었습니다.
2016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43개 주에서 임산부의 알코올 섭취를 경고하거나 억제하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책 가운데 8개를 골라 분석해봤더니, 6개 정책은 오히려 아기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개 정책은 아기의 건강과 무관) 연구진은 아기의 건강을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아기의 비율과 조산 비율로 정의하고 측정했으며, 그에 따라 추가로 드는 비용도 추산했습니다.
연구진은 지난 1972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태어난 1억 5544만 6714명의 출생 기록을 살폈습니다. 여기서 태아의 체중과 조산 여부를 측정했고, 이를 각 연도별로 어느 주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임산부의 알코올 섭취에 관한 정책에 노출됐는지를 판단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임산부의 음주는 태아의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문을 식당이나 술집에 붙여놓는 정책은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아기의 숫자를 7,375명 늘리는 데 영향을 미쳤고, 임산부가 술을 마시면 이를 아동학대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시행한 주에서는 달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태어난 아기가 12,372명 더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추가로 발생한 비용은 우리돈으로 8천억 원이 넘습니다.
연구진은 알코올 섭취를 억제하는 정책은 임산부가 음주 사실을 쉬쉬하며 필요할 때도 의사를 보러 가지 않으려 하게 돼 결과적으로 아기의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임신한 상태에서는 술에 입이라도 대는 것이 큰 범죄로 취급받다 보니 임산부들은 술 때문에 태아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는 것이 두려워 산부인과에 아예 발길을 끊게 된다는 겁니다.
연구진은 임산부에 국한해 알코올 섭취를 억제하려는 정책보다는 전반적으로 알코올 소비 자체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임산부의 음주를 줄이는 데도 오히려 더 효과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주류 판매 시간이나 장소를 제한하거나 주류세를 높여 술값이 비싸지면 사람들이 알코올 섭취를 줄이게 되고, 이는 자연히 임산부의 알코올 섭취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PLOS One, Meenakshi S. Subbaraman & Sarah C. M. Robe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