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앞으로 친환경 기업에만 단체복 맞춰준다
2019년 4월 5일  |  By:   |  세계  |  No Comment

미국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개인 고객뿐 아니라 기업 고객에게도 꽤 많은 옷을 팔아왔습니다. 얇고 가벼운 점퍼나 플리스 재킷, 조끼의 왼쪽 가슴에는 파타고니아 로고가, 오른쪽 가슴에는 회사 로고가 박힌 맞춤형 단체복은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직원이 많은 회사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그저 옷을 잘 만들어 파는 것 이상의 가치를 추구해온 파타고니아가 이번에는 앞으로 기업 고객을 가려 받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친환경 기업으로 인증받지 못하는 기업은 직원들에게 파타고니아 로고가 새겨진 단체복을 입힐 자격이 없다고 과감히 선언한 겁니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책임 있는 자세로 사업을 하는 기업 고객을 우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친환경 기업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몇 가지가 있는데, 우선 파타고니아도 속한 B 코퍼레이션(Certified B corporation)이 있습니다. 기업 활동으로 번 이윤을 친환경 캠페인이나 공익사업에 쓰겠다고 약정한 기업만이 B 코퍼레이션으로 인증받을 수 있습니다. 또 환경을 해치지 않는 사업만 하는 기업이어야 받을 수 있는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 인증을 받은 기업도 파타고니아 제품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기존의 기업 고객과의 계약은 그대로 유지하며,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 이번에 세운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친환경 기업과 사업을 앞세우며, 정유, 에너지 업계는 물론 정치, 종교, 금융업계의 기업들까지 광범위하게 친환경 기업 목록에서 빼버리면서 파타고니아의 일방적인 고객 가려 받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에서 홍보 대행사 베스티드(Vested)를 운영하는 비나 킴은 최근에 파타고니아에 새로운 회사 로고를 새긴 조끼를 단체로 주문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베스티드의 고객 대부분이 금융 회사들인데, 파타고니아가 새로 정한 친환경 인증 기준을 충족하는 회사들이 거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비나 킴은 결국, 파타고니아 대신 다른 브랜드에서 단체복을 맞췄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금융 기업도 얼마든지 B 코퍼레이션 인증을 비롯해 친환경 기업 이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크라우드펀딩 방식으로 프로젝트 기금을 모으는 웹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나 트위터 공동창립자 이브 윌리엄스가 세운 투자회사 오비어스 벤처(Obvious Ventures),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는 몇 안 되는 은행인 뉴욕의 아말가메이티드 은행(Amalgamated Bank) 등이 이름 있는 기업 가운데 대표적인 B 코퍼레이션입니다.

반면 개인들이 소규모로 만든 수공예품 등을 거래하는 디지털 플랫폼 엣치(Etsy)는 지난 2017년 자발적으로 B 코퍼레이션 인증을 철회했는데, 당시 엣치는 상장 기업으로서 B 코퍼레이션 인증을 유지하는 것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파타고니아는 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하는 미국 IT 기업 직원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로 유명한데, 정확히 언제부터 이런 유행이 자리를 잡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난 1999년에 <슬레이트>에 실린 글에 컴퓨터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들이 마치 교복처럼 늘 파타고니아 옷만 입고 있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한때 벤처캐피털 업계의 중심지였던 스탠포드대학교 근방 샌드힐 로드(Sand Hill Road)를 기원으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서 시작된 유행이 샌프란시스코로 옮겨갔고, 이어 실리콘밸리 전체에서 수수하지만 아주 실용적인 작업복으로 고소득 연봉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으며, 어느 순간에는 월스트리트의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서부룩(West Coast look)’을 들여와 따라 입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가 실리콘 밸리 직장인들의 교복으로 자리 잡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HBO에서 방영한 드라마 “실리콘 밸리”였습니다. 극 중에서 피드 파이퍼라는 스타트업의 사업 개발 담당자로 일하는 제러드 던을 연기한 배우 잭 우즈는 늘 파타고니아의 스웨터만 입고 있었습니다. “실리콘 밸리”를 연출한 리처드 토연은 지난 2014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촬영에 앞서 거의 몇 달을 실리콘밸리에 머물며 사람들의 모든 것을 관찰했다고 말했습니다. 가방은 무얼 메고, 신발은 어떤 걸 신으며, 머리 스타일은 어떤지까지 자세히 관찰한 거죠.

“파타고니아를 빼면 가히 패션을 완성할 수 없는 동네였습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새로 들인 자판기 가운데 가장 매출이 짭짤한 자판기는 또 다른 실용적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의 점퍼, 조끼 등을 파는 자판기입니다. 한 달에 유니클로 자판기로 기록하는 매출이 1만 달러가 넘습니다.

한편 잘 나가는 벤처캐피털리스트처럼 자기 자신을 꾸미고 싶은 사람이라면 VC 스타터키트라는 사이트에서 약 55만 원($499)을 들여 묶음 상품을 살 수 있는데, 여기에는 파타고니아의 (로고 없는) 플리스 조끼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밖에 B 코퍼레이션인 신발회사 올버즈(Allbirds)의 죽은 유칼립투스 나무 섬유질로 만든 운동화, 페이스북 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피터 씨엘의 책, 와인 잡지 와인 스펙테이터 정기 구독권도 묶음 상품 목록에 있습니다.

앤젤리스트(AngelList)에서 일하며 부수적인 프로젝트로 VC 스타터키트를 구상해 만든 제품 기획자 수무크 스리다라는 VC 스타터키트에서 번 돈을 모두 올레이즈(All Raise)라는 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올레이즈는 더 많은 여성 창업자와 투자자가 테크 분야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기관입니다. 스리다라는 파타고니아의 새로운 방침을 일리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가치를 부각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결정을 내렸어도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계속 파타고니아 옷을 입을 겁니다. 자기 회사 로고는 빠지더라고 크게 개의치 않을 거예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Melia Russ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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