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직업, 결혼… 행복한 삶에 정답이 있을까? (2/5)
영국 통계청은 영국인 표본 20만 명을 대상으로 지난 2011년부터 매년 얼마나 행복한지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약 1%는 아주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표본이 영국 인구 전체의 분포를 잘 반영해 선정됐다고 가정하면 전체 영국인 가운데 약 50만 명이 끔찍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면 아주 불행한 1%에 속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구체적으로는 주급이 400파운드가 일종의 마지노선이 됩니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2만 파운드, 우리돈 약 2,940만 원인데,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보다 많이 벌게 되면 그 순간부터 (행복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즉, 주급 400파운드가 (영국 물가를 고려했을 때) 생필품을 사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 생활임금이라면 그보다 돈을 벌면 더 벌수록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건 맞지만, 행복해지는 정도는 줄어든다는 거죠.
미국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미국 시간 활용 조사(American Time Use Survey)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하다고 답하는지와 소득을 비교해보면 소득이 비교적 낮은 구간에서는 소득이 오를수록 행복하다는 답변도 같이 늘어나지만, 고소득층 구간에서는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매우 옅어지거나 오히려 반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돈이 많아지는데 오히려 불행해지는 겁니다. 또한, 연봉이 10만 달러가 넘는 사람이 연봉이 2만5천 달러보다 낮은 사람보다 딱히 더 행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할 거라는 통념의 근거도 생각보다 탄탄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소득층은 어떤 일을 하든 좀처럼 뚜렷한 목표를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원하는 걸 다 가진 삶을 살다 보니 무엇을 하든 대단하지 않은 일로 여겨지고,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될수록 돈을 더 버는 데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실제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분석한 데이터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만큼 일도 더 많이 하고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감수합니다. 문제는 그러는 사이 희생하게 되는 시간이 여가나 가족,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등 주로 행복과 직결되는 데 쓰던 시간이라는 겁니다. 부자가 되면 알아서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부자가 되는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자가 되고 난 결과만 본 반쪽짜리 계산입니다. 많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했지 그 돈을 손에 넣는 과정을 간과한 겁니다. 그런데도 중산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연봉 5만 파운드 소득 구간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담론의 덫(narrative traps)”에서 전혀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지금 힘들고 불행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벌면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죠. 막연한 기대를 넘어 거의 신념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연봉 5만 파운드를 받게 된 사람 중에 “이 정도면 됐어”라며, 돈 말고 행복을 진지하게 추구하기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만큼 담론의 덫이 우리 모두를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만큼 돈을 벌고 있다면, 담론의 덫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돈을 더 벌 궁리 말고 다른 것을 좇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내 돈을 벌 궁리 대신 최저 생계 수준에 못 미치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돕는 데 시간과 품을 들여보는 건 어떨까요? 남을 돕는 일은 행복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지름길입니다. 아마도 그 효과는 곧바로 나타날 겁니다.
“이 정도면 됐어”라는 자세로 돈과 부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에는 사실 수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중압감, 사회적인 평판이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압력이 그런 것들이죠. 특히 소셜미디어를 통해 남들이 사는 모습이 너무 쉽고 빠르게, 여과 없이 전달되는 세상에서는 남과 비교하다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지기는 쉬워도 사회적인 압박이나 기대치를 떨쳐내는 일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또한, 실제로 돈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지 않더라도 “이 정도면 됐어”라고 선언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바쳐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소유하고자 열심히 사는 삶보다 어딘가 단조롭고 나약해 보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수준임을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옭아맨 굴레를 벗어던지는 해방의 열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돈과 부를 좇는 삶의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평가하고 재단할 때 그 사람이 얼마나 가졌느냐를 잣대로 삼게 되는 겁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더 많이 벌려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야망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이 됩니다. 이내 우리네 세상은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사람과 비교하며 그 사람보다 가진 것이 적어서, 또는 목표로 한 재산을 모으지 못해서 불행한 사람들로 가득한 끔찍한 세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스스로 지금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굳이 돈의 잣대를 들이대며 게으르다거나 야망이 없다는 평가를 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부를 추구해야 행복해진다는 ‘담론의 덫’은 근거가 빈약한 환상일 뿐 아니라 더 많은 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른 사람, 패배자로 낙인찍어서 더 큰 문제입니다.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돈을 더 벌겠다며 많은 것을 희생하는 대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하는 일에 품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부를 향한 욕망은 밑 빠진 독과도 같습니다. 절대 채울 수 없을뿐더러 필요한 것 이상의 상품을 계속 사서 쓰게 되는데, 이는 지구를 병들게 하는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고 자연 그대로 둬도 되는 땅도 개발해 인간의 편리를 위한 상품을 만드는 데 쓰게 하며 각종 원자재와 수자원도 더 쓰게 합니다. 얼마든지 다시 쓰고 채워 쓸 수 있는데도 새것에 중독된 현대인의 삶은 엄청나게 낭비하는 습관을 낳았고, 이는 심각한 환경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중요한 진리를 부모는 어려서부터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정책결정자라면 우리나라 최고 부자 순위를 발표해 모두가 부러워하(다가 결국엔 불행하)게 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최고 납세자를 공개해 그 사람을 더 우러러보게 하는 건 어떨까요? 구글에 세계 최대 갑부 순위를 쳐보면 제프 베조스, 빌 게이츠를 비롯해 억만장자들의 이름과 재산이 검색 결과로 뜹니다. 하지만 세계 최대 납세자 순위를 검색한 결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각국의 세율을 비교한 자료 정도가 나올 뿐이었습니다. 만약 우리의 사고회로가 남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면, 좀 더 의미 있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내용으로 경쟁하고 비교할 수 있도록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 모두의 행복에 좀 더 도움이 될 겁니다.
(가디언, Paul Do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