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칙금 많이 걷는 경찰과 범인 잘 잡는 경찰
2018년 10월 2일  |  By:   |  세계  |  No Comment

지방정부나 경찰이 거두는 각종 범칙금, 과태료는 정부 재정에서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런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주로 저소득층, 미국의 경우 유색인종이 많이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 더 많이 거둬들인다는 점은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를 비롯한 시민운동 단체들이 줄곧 지적해온 문제입니다. 지방의회나 정부 산하 위원회에 대표자가 없으면 더욱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도 정치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2015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일어난 소요 사태 이후 미국 법무부 산하 인권위원회는 퍼거슨시 경찰들의 편견과 공정하지 못한 처사 등을 두루 조사해 퍼거슨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보고서는 퍼거슨시 경찰이 범칙금이나 과태료에 재원을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경찰에 자꾸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내게 되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경찰의 인종차별이 명백히 드러날 뿐 아니라 경찰의 이런 행태가 인종간 불평등을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많이 거두는 경찰일수록 담당 구역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잘 해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연구 방법

우리는 먼저 미국 인구조사국이 각 시정부와 지방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상세히 기록해 정리한 정부 조사 데이터 2007년과 2012년 자료를 확인했습니다. 이어 미국 연방수사국 FBI의 범죄 통계보고서에서 같은 해의 기록을 찾아 한데 놓고 비교했죠. 범죄 통계보고서에는 전국적으로 일어난 범죄와 경찰을 비롯한 사법 기관의 활동이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보고자 한 질문은 간단했습니다.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열심히 거둬 재원을 확보하는 데 능숙한 경찰이 마찬가지로 범죄를 수사하고 범인을 잡아내는 일도 잘 해낼까요?

총 6천여 개 도시의 2007과 2012년 재정과 범죄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범칙금이나 과태료로) 재정을 확보하는 것과 범죄를 처리하는 능력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나타났습니다. 즉 시 정부가 벌금이나 과태료, 법을 어긴 이들에게 압수한 자산에 시의 재정을 더 많이 의존하는 곳일수록 경찰이 폭력 범죄나 강도 등 해결해야 할 범죄를 처리하는 비율이 낮았습니다.

우선 단순히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경찰력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범칙금이나 과태료는 알아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경찰이 직접 현장을 돌며 단속에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 일이죠. 그러다 보면 사건을 수사해 범죄를 해결해야 하는 경찰마저 범칙금 거두는 일에 투입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범칙금/과태료 재정 수입과 범죄 해결률 사이의 반비례 관계는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당장 규모가 작은 경찰서에는 범죄 수사만 전담하는 부서를 두기 어려운 사정일 확률도 높습니다. 순찰을 할 때도 사건을 수사하고 범죄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찾는 일보다 범칙금 고지서를 떼 실적을 채우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을 수 있습니다. 강력 범죄를 해결하는 일은 자꾸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죠.

 

가상의 도시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인구 5만 명의 미들타운이라는 소도시가 있습니다. 미들타운은 일인당 소득, 인종별 인구 구성, 범죄율을 비롯한 모든 통계가 전체 미국의 평균과 같은 가상의 도시입니다. 미국의 시 정부와 지방 정부들이 범칙금이나 과태료로 충당하는 재정은 전체 수입의 약 2%입니다.

우리는 분석한 데이터를 토대로 간단한 예측 모델을 만들었는데, 전체 시 재정 가운데 범칙금이나 과태료가 차지하는 비율을 토대로 범죄 해결률을 예측하는 모델입니다. 미들타운 경찰 당국이 거둬들이는 범칙금이나 과태료가 전체 시 정부 수입의 1%라면 우리 모델은 미들타운 경찰이 전체 폭력 범죄의 53%, 강도나 절도 등 재산 관련 범죄의 32%를 해결한다고 예측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시 정부 수입의 3%를 범칙금이나 과태료로 충당한다면 폭력 범죄 해결률은 41%, 재산 관련 범죄 해결률은 16%로 급격히 낮아집니다.

실제로 저소득층 커뮤니티에선 필요할 때 경찰을 좀처럼 보기 어렵기도 합니다. “경찰은 필요할 땐 없고, 도대체 저기에 경찰이 왜 있어야 하나 싶을 때만 있더라”는 볼멘소리가 나올 만도 합니다. 원인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범칙금/과태료를 걷는 데 많이 동원될수록 사소한 법규 위반을 단속하는 일에는 경찰이 필요 이상으로 몰리고, 정작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 범죄를 해결하는 데는 투입할 인력이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범인도 못 잡고 범죄도 해결 못 하는 경찰이 되어버리기도 하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시민들이 경찰, 나아가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실제로 마주치는 공무원이라고는 경찰밖에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게 세금으로 녹을 받는 경찰이, 나아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가 원래 해야 할 일은 소홀히 하면서 상대적으로 사소한 일로 시민들에게 벌금을 거둬가는 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으로 비친다면 공동체의 치안을 안심하고 경찰에게 맡기려 하지 않을 겁니다. 범죄를 해결하지 못하는 경찰에 시민들은 수사 과정에 덜 협조할 것이고, 이는 범죄 해결률을 더 낮추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40여 년 전 제임스 윌슨은 저서 “경찰이 하는 다양한 일(Varieties of Police Behavior)”라는 책에서 제목 그대로 다양한 경찰의 업무를 망라했습니다. 사건을 푸는 데 공격적으로 달려드는 경찰도 있고,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찰도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예의바르게 대하는 이도 있고, 무례한 이도 있습니다. 범인을 잡고 범죄를 해결하는 데 주력하는 경찰이 있는가 하면 경찰의 임무를 더 넓게 해석하는 경찰도 있습니다.

우리 연구는 시 정부의 수입원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경찰의 성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경찰이 범칙금이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쏟게 되면 특히 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큰 저소득층 유색인종들이 경찰을 바라보는 관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경찰의 행위가 미치는 간접적인 영향은 훨씬 더 큽니다. 시 정부가 범칙금이나 과태료처럼 특정 계층에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큰 방법으로 재원을 충당하지 않도록 하면 경찰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치안을 강화하는 데도 이바지할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 Rebecca Goldstein & Michael Sances & 유혜영)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