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잠깐, 더 오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스포츠팬의 삶
스포츠팬의 삶은 어쩌면 천국보다 지옥에 더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이를 증명하는 데이터도 나왔습니다.
영국 서섹스대학교의 경제학자 피터 돌튼(Peter Dolton)과 조지 맥케론(George MacKerron)이 현재 심리 상태를 입력하는 행복 추적기 앱의 데이터 3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겼을 때 느끼는 행복은 내가 응원하는 팀이 졌을 때 느끼는 불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용자들이 심리 상태를 입력한 시간과 장소를 영국 축구 경기가 열린 시간, 장소 데이터와 대조해 축구팬들이 경기가 끝난 뒤 입력한 심리 상태만을 추려내 분석한 결과인데, 다시 말하면 우리팀이 이겼을 때 기쁜 것보다 우리팀이 졌을 때 축구팬들이 느끼는 슬픔이 두 배 정도 더 컸습니다.
지난 일요일 월드컵 결승전에 이 공식을 대입해보면 (이 세상에 프랑스를 응원한 팬과 크로아티아를 응원한 팬의 숫자가 같았다고 가정)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뒤 세상은 더 불행한 곳이 됐습니다. 축구가 불행의 근원이자 행복을 앗아가는 주범이 된 것이죠.
연구진이 분석한 데이터를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지금 얼마나 행복하세요?”
이 앱이 하루에 여러 차례 무작위로 3만2천여 명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그때그때 조금씩 다릅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심리상태를 가장 행복하면 100점 만점으로 매겨 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누구와 함께 무얼 하고 있는지도 짧게 덧붙일 수 있으며, 위치 정보도 함께 전송됩니다. 연구진은 이 정보를 모아 응답자가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를 관전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어 시간대, 요일에 따른 효과를 감안해 결과를 조정했습니다. 하루 중에도 대체로 기분이 좋은 시간대가 있고, 일주일 중에 특히 기분이 쉽게 우울해지는 날이 있기 마련이죠. 또한, 연구진은 한 사람의 행복 지수를 추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원래 쉽게 행복해하는 사람인지, 반대로 기본적으로 불만이 많고 우울한 사람인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연구진은 해당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데이터를 받았기 때문에 앱 사용자의 연령대나 재산까지는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과를 살펴보죠. 내가 응원하는 팀이 이긴 지 한 시간 안에 팬들은 보통 때보다 약 3.9% 더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행복과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반대로 내가 응원하는 팀이 패한 지 한 시간 안에 심리 상태에 답한 팬들은 보통 때보다 7.8%나 더 슬퍼했습니다. 이는 일 하거나 공부할 때,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느끼는 답답함이나 짜증, 스트레스보다 두 배 가까이 더 우울한 수치입니다.
연구진은 경기가 끝난 뒤 느끼는 기쁨과 슬픔의 차이가 극명한 것도 놀랍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더 벌어진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즉, 승리 후 느끼는 기쁨은 얼마 가지 않아 사라지곤 하지만, 패배 후 찾아오는 슬픔은 훨씬 오랫동안 팬들을 괴롭혀 결과적으로 승리 후 느끼는 행복의 네 배나 되는 불행을 안겨줍니다. 이 차이는 응답자가 직접 경기장에 가서 경기를 관전했을 때 훨씬 크게 나타났습니다.
돌튼 교수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된 축구팀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열성팬인 자신이 아주 좋은 사례라고 털어놓습니다.
“솔직히 제가 (영국 축구의 성지로도 불리며 중요한 경기가 펼쳐지곤 하는) 웸블리 구장에 뉴캐슬 경기를 보러 직관 갔을 때 진 것만 일곱 번이나 됩니다. 아마 웬만한 축구팬보다 제가 겪은 슬픔과 고통이 더 클 겁니다. 어쨌든 나만 이상하고 힘든 것이 아니었군요.”
어쩌면 돌튼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보고 세상에 자기 같은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불행해지는 지름길과도 같은 스포츠팬의 삶을 택하는 걸까요?
연구진은 우선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팀의 실력을 냉철하게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략적인 숫자를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팀이 앞으로 다섯 경기에서 3승 정도만 해줘도 만족하고 감사할 거라면 계속해서 스포츠를 봐도 됩니다. 패배의 아픔이 승리의 기쁨보다 두 배나 더 크고 쓰라리더라도 말입니다. 그렇지만 실제 많은 스포츠팬이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매번 실력 이상의 성적을 거둬줄 거라고 기대합니다. 기대를 넘어 확신하는 이들도 많죠. 게다가 과거에 그렇게 생각했다가 아무리 쓴맛을 봤더라도 ‘이번에는 다르겠지’하고 또 무언가에 정신이 홀리곤 합니다. 축구장을 찾는 팬들 대부분은 팀이 아무리 연패에 빠져있어도 오늘 그 연패를 끊어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들어섭니다.”
물론 데이터를 모은 스마트폰 앱이 사람의 심리 상태와 행복, 불행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즉, 우리팀이 결국은 또 졌더라도 경기 중에 우리 선수가 기록한 기가 막히게 멋진 골을 보며 함께 환호하던 순간,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뭉친 팬들과의 연대감, 그냥 축구장에 있는 것만으로 느낄 수 있는 짜릿함과 희열 등 90분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 볼 생각도 안 들 만큼 훨씬 더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는 말이죠.
이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아깝게 탈락한 잉글랜드 대표팀의 선전은 스포츠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또 한 번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소비 진작 등 경제적인 효과가 상당했죠.
물론 스포츠가 가져다주는 효과가 늘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미식축구 경기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응원하는 팀이 기대에 못 미치는 졸전 끝에 패하면 가정폭력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 Andrew Van D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