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인대회, 수영복 심사 폐지로 달라질 수 있을까?
2018년 6월 11일  |  By:   |  문화, 세계, 칼럼  |  2 Comments

1921년 미스아메리카대회는 여성에게 수영복을 입혀 무대에 세운다는, 당시로서는 금기였던 이벤트로 세상에 선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수영복 입은 여성의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배경에는 미인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 미스아메리카 주최측은 수영복 심사와 이브닝드레스 심사를 없앨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국민 스포츠로 만들었던 미인대회,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요?

불행하게도 결론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미인대회는 여성만이 지나치게 외모로 평가 받는 우리 문화의 젠더 권력 관계를 강화시켜온 장본인입니다. 미인대회가 에세이 작문 대회나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바뀌지 않는 한, 수영복 심사가 폐지되는 정도로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미스아메리카대회는 1912년 노동절 휴가를 본격 관광철로 만드려는 아틀란틱시티 호텔협회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완전히 새로운 컨셉은 아니었습니다. 1880년에 이미 비슷한 전국 대회가 있었지만, 수익이 충분치 않아 막을 내렸죠. 일단 대회에 참가할 여성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관광객의 대다수를 이루던 중산층에게는 지나치게 상스러운 행사처럼 비치기도 했고요.

놀랍게도 초기 미스아메리카 대회 주최측은 대회의 미인상을 전형적인 미인이 아닌 여권 운동가들의 모습에서 찾았습니다. 초기 대회 당시 여성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이미지를 본따 “작가”, “용기”와 같은 단어가 써 있는 어깨띠를 두르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런 참가자들은 공적 분야에서 여성의 모습을 대중화하고, 여성들이 스스로를 변화의 주체로 여기게 하는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묘하게도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한 헌법 수정 제 19조가 미인대회를 주류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15만명이 원피스 수용복을 입은 미인들을 보기 위해 몰리다”라는 기사가 실린 바로 그날, “코르셋을 벗은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다”라는 헤드라인이 실리기도 했죠. 여성들이 시민, 선출직 공무원, 자립적인 개인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임에 따라, 미스아메리카가 표방하는 시대 역행적인 여성성이 큰 변화에 불편을 느끼는 미국인들을 달래준 것이죠.

초반, 미스아메리카 대회는 아마추어와 프로(모델, 댄서, 배우 등) 두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승자인 미스아메리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마추어 부문 참가자들 뿐이었죠. 참가자들은 짧은 머리, 흡연, 화장과 같은 엄격하게 “현대적인” 면모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초대 미스아메리카였떤 마거릿 고어만은 역대 최연소 우승자이자 최단신 우승자입니다. 우승 소식을 알리기 위해 기자들이 마거릿을 찾았을 때, 15세 소녀는 놀이터에서 구슬치기를 하고 있었죠. 길고 어두운 머리카락에 작은 체구, 커리어에 대한 욕심의 부재는 미인대회 심사위원과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미국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노동계 지도자였떤 새뮤얼 곰퍼스는 미스아메리카 초대 우승자에 대해 “강하고 열정적이며, 가정을 일구고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을 맡을 수 있는, 미국이필요로 하는 여성의 상징”이라고 평했습니다.

수영복 차림이 잘 어울렸던 것도 우승자의 덕목이었습니다. 대회 공식 사진에서 고어만은 187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양말을 무릎 아래로 끌어내린 차림을 한 채 밝게 웃고 있습니다.

오늘날 원피스 수영복은 순수함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1921년만 해도 아틀란틱시티의 해변에서 원피스 수영복과 다리를 드러낸 여성의 옷차림은 불법이었죠. 고어만의 수영복 사진이 찍히기 불과 며칠 전,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소설가 루이스 로진이 스타킹으로 무릎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기도 했으니까요.

시장이 미인대회 참가자들의 수영복 차림을 허용하자 반발이 잇따랐습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여성유권자연합이 엄격한 수영복 규정을 유지하도록 시 정부에 로비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여성을 시민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를 거치며 미인대회의 인기가 치솟았고, 수영복 심사가 큰 요인이었으니까요. 여성단체들은 “돈에 미친 남성들이 여성적 매력을 착취”한다며 수영복 심사를 비난했습니다. 미스아메리카는 1940년대에 들어서야 애국심과 교육이라는 요소가 대회 정신에 추가되면서 일종의 장학금 수여 이벤트로 바뀌었습니다.

그 동안 수영복 심사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8년 항의 시위를 주도했던 여성들은 “브라를 불태우는 이들”이라 불리며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작 불태워진 브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대회 조직위는 운동과 건강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수영복 심사를 지켜나갔습니다.

이처럼 수영복 심사에 대한 비판은 미인대회 자체와 그 역사를 함께 합니다. 하지만 수영복 심사는 미인대회가 특정한 모습의 여성성을 부각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죠. 오랫동안 미스아메리카 대회는 임신중절 또는 결혼을 했거나 아이가 있는 여성의 참여를 금지했습니다. 참가자의 결혼 여부나 자녀 관계 자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처녀성에 대한 신화와 일방적인 의미의 섹슈얼리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했죠.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은 성적인 동기를 가지고 대회를 지켜보는 것이 당연했지만, 참가자들은 무성적 존재로 남아야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1984년 우승자이자 최초의 흑인 미스아메리카였던 바네사 윌리엄스는 한 성인 잡지에 본인의 동의를 받지 않은 누드 사진이 실렸다는 이유로 왕관을 빼앗겼습니다.)

미투 운동의 시대에 미인대회를 옹호할 말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미스유니버스 페루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인대회와 성추행, 폭력의 관계를 암시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죠. 신체 사이즈 대신 여성 대상 폭력 범죄에 대한 통계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또한 현 미스아메리카 조직위원장이자 1989년 미스아메리카 우승자, 동시에 폭스 뉴스의 로저 에일리스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그레첸 칼슨만큼이나 “미인대회 스타일 대상화”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본 여성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수영복을 입은 여성에게 점수를 매긴다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미스아메리카 대회가 미국인들에게 가르친 그 무엇이죠. 하지만 수영복 심사를 없앤다고 미인대회를 통한 여성의 대상화가 사라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참가자들에게 장래희망과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한 생각을 물은지 오래 되었지만 미인대회는 근본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여성에게 상을 주는 대회입니다. 외모가 여성의 가치에 있어 근본적인 부분이며 이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의견을 가져도 된다는 사상을 심어주는 것이 미인대회의 근간입니다.

어쩌면 여성 참정권 획득 100주년을 코앞에 둔 오늘날, 미인대회에서 수영복 심사가 없어졌다는 것이 성평등이 가까이 왔다는 증거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의 가치가 진정 동등하게 취급되는 세상에서 여성 미인대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워싱턴포스트, Kimberly A. Ham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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