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억(prospective memory)과 나이
2018년 5월 8일  |  By:   |  과학  |  No Comment

우리는 자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다가도 잊어버리곤 합니다. 아침에 버터 마지막 조각을 빵에 바르면서 퇴근길에는 꼭 슈퍼에 들러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야 어제 그걸 잊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가장 최근에 무언가를 잊은 건 언제인가요? 물건 사기, 누군가에게 전화 걸기, 약 먹기, 이메일 보내기 등 우리는 수많은 일을 잊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바로 우리가 몇 초, 몇 분, 몇 시간 혹은 며칠 뒤에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형태의 기억이지만, 이런 종류의 기억을 뇌과학자와 심리학자가 독립된 분야로 연구하게 된 것은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미래의 어느 적절한 시점에 수행할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을 미래 기억(prospective memory)이라 부르며 의도의 기억(memory for intentions)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기억을 말하는 과거 기억(retrospective memory)과 크게 다릅니다. 과거 기억은 어떤 지식이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인 반면, 미래 기억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필요한 의도를 떠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기억은 시험과 같이 특정한 요청을 받아 이와 관련된, 앞서 저장한 정보를 다시 인출하는 능력입니다. 반면 미래 기억은 이런 즉각적인 기억 요청이 없으며 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적절한 시점에 그에게 원래 그 시점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해보라고 요청하는 누군가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미래 기억이 까다로운 이유는 우리가 집에 오는 길에 슈퍼를 지날 때, 그 슈퍼를 보고 아침에 버터를 사기로 한 것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래 기억은 두 가지 이유에서 중요합니다. 우선 일상에서 기억 때문에 생기는 문제의 상당수가 바로 미래 기억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연구들은 우리의 기억 문제 중 삼 분의 이가 미래 기억 때문에 생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또한, 미래 기억은 일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약을 제때 먹고, 친구의 생일에 맞춰 축하 인사를 보내고, 약속한 회의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는 것 같은 일들은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미래 기억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미래의 의도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미래 기억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음식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이를 까마득히 잊었을 때처럼 우리의 일상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따라서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노인들이나 뇌 기능에 장애가 있는 이들이 간병인의 도움을 받거나 요양원에 가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미래 기억을 왜 연구자들은 늦게서야 발견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미래 기억을 그저 다른 영역의 기억이 일상에서 작용할 때의 특징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사기로 한 기억은 그저 다른 단기 기억이나 장기 기억과 마찬가지로, 그 물건을 기억한 뒤 이를 다시 인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그 물건이 나의 구매 목록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곧, 그 물건을 사기 위해 슈퍼로 가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계획을 잊게 되는 여러 가지 이유

이제 과학자들은 미래 기억을 두 가지 요소로 구분합니다. 바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기억하는, 일반적인 기억과 비슷한 ‘과거 요소’와 그 일을 할 수 있는 ‘적절한 때’에 그 기억을 떠올리는 ‘미래 요소’입니다. 두 가지 요소에서 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다른 일에 빠져있다 보면 적절한 시점을 놓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이는 미래 요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혹은 약속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려 했는지를 잊을 수 있으며, 이는 과거 요소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일보다 이를 적절한 시점에 기억하는 일을 상대적으로 어려워합니다. 이는 대개 미래 요소가 문제를 일으키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사야 할 물건 목록을 써서 주머니에 넣어 두어도 이를 집에 와서야 발견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의 심리학자 마크 맥다니엘과 퍼만 대학의 길스 아인슈타인은 사람들이 미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의도를 수행하게 되는 두 가지 기제를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그 일을 능동적으로 기억하려 애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한 순간, 특히 한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여러 수단을 동원합니다. 우리는 오븐에 넣은 케이크가 타지 않도록, 그리고 중요한 회의에 늦지 않도록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속 확인합니다. 또 다른 기제는 이런 노력 없이, 전혀 생각지 않던 의도가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에 떠오르는 겁니다.

우리는 이 두 번째 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주위 환경에서 주어지는 정보가 마치 커피숍을 지날 때 컵케이크를 사기로 했던 것을 떠올리게 되듯이 이와 관련된 원래 계획을 자극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수동적인 기제에는 사실상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 반면, 첫 번째 말한 능동적인 기제는 다른 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속적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수동적인 기제는 그 기억을 잊고 실수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따라서 중요한 일을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때 우리는 능동적인 기제에 더 의존하게 됩니다. 이는 항공 관제사같이 미래 기억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직업에서 근무 시간을 짧게 하고 휴식을 길게 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뇌과학자들은 이 두 가지 기제가 일어나는 영역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능동적인 기제의 경우 앞쪽 전전두엽 피질(anterior 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됩니다. 이 영역은 우리가 무언가 새로운 일에 관심을 가질 때 활성화되는 영역입니다. 수동적인 기제가 나타나면 두정(parietal) 영역과 복측(ventral) 영역이 활성화되었으며, 이 영역은 자신에 관한 기억과 시각적 자극을 발견하는 영역입니다.

미래 기억은 일상생활에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미래 기억이 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히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노인학 및 취약성 융합 연구소(CIGEV) 실험실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토론토에 있는 로트만 연구소에서 인지기억 심리학을 연구한 이 분야의 선구자 퍼거스 크레이크가 우리 연구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그는 나이 든 이들은 주의력이 많이 필요한 미래 기억이 약해진다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이 가설은 이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피험자들은 실험실에서 특정한 단어를 들으면 버튼을 누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몇몇 연구에서는 젊은이와 나이 든 이들이 비슷한 점수를 받았고, 몇몇 테스트에서는 노인들이 더 잘하기도 했습니다. 미래 기억에 관해 연구가 이루어질수록 더 많은 모순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나이-미래 기억 패러독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때론 노인의 미래 기억이 더 낫기도 하다

실험이 집안에서 이루어지고 누군가에게 하루에 두 번 전화하는 것 같은 일반적인 작업일 경우 노인은 젊은이들보다 더 나았습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테스트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두 가지를 던질 수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테스트와 일상 생활 테스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고 정말 미래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가?

실험실 테스트와 일상생활 테스트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실험실의 테스트는 주로 멀티태스킹을 필요로 하는 표준화된 테스트입니다. 실험실에서는 타이머나 메모지 같은 일상의 기억 보조도구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한 실험에서 피험자들은 비디오를 보면서 5분에 한 번씩 버튼을 누르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테스트에는 사실 아무런 실질적인 의미도 없습니다. 어쩌면 노인들이 바깥세상보다 실험실에서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반면 노인들이 익숙한 일상생활에서는 이미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으며 약속을 잊었다가는 실제로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깁니다. 게다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미래 기억의 시간 단위는 일상생활에서의 미래 기억들보다 훨씬 짧습니다.

또한, 젊은이와 노인의 삶은 비교하기 힘듭니다. 젊은이들은 학습에 익숙하고 다양한 작업을 관리해야 하며 예상치 못한 상황을 종종 해결해야 합니다. 반면 노인들의 삶은 대체로 예측 가능하며 정해진 패턴을 따릅니다. 젊은이들이 실험실의 테스트에 익숙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도 테스트 결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험실 테스트의 경우 젊은이와 나이 든 이 모두 자신의 미래 예측 능력을 과소평가합니다. 반면, 일상생활 테스트에서는 젊은이들만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이 때문에 그들은 테스트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래 기억은 정말 나이가 들수록 약해지는 것일까요? 실험실의 결과만 보면 분명히 나이가 들수록 미래 기억이 약해집니다. 하지만 피험자의 집에서 이루어진 연구를 보면 적어도 피험자가 건강을 유지하는 한 일상생활 능력이 계속 유지됩니다. 서로 다른 연령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의 미래 기억 능력을 비교한 연구는 아직 많지 않으며, 이 때문에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미래 기억에 대해 앞으로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합니다. 첫째, 일상생활에서 더 많은 실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피험자의 실제 일상생활과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그의 미래 기억 능력을 측정하는 정교한 실험 방법이 필요합니다. 둘째, 우리는 동기, 감정, 스트레스 등의 비인지적인 요소가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이-미래 기억 패러독스에 대한 연구는 노인들의 인지 기능을 유지, 혹은 더 강화할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나이 든 이들이 경험하는 결함이 사실은 다른 능력일 수 있다는 점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노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도 크게 바꿔야 할 겁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Matthias Klingel, Nicola Ballhau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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