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보유고의 지정학
2018년 4월 30일  |  By:   |  경제, 세계  |  No Comment

왜 어떤 나라는 외환 보유고를 열어봤을 때 미국 달러가 많고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을까요? 최근 발표된 논문에서 배리 아이켄그린 교수와 공저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미국과의 동맹 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국가가 외화를 어떤 화폐로 보관할지 결정하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통화의 안정성, 유동성과 국가 간의 교역 정도와 같은 금융 관련 요인입니다. 두 번째는 동맹 관계와 같은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요인입니다. 이 가설은 왜 핵보유국이 아닌 독일의 외환 보유고에는 달러의 비중이 높은데 핵보유국인 프랑스는 보유 외화의 달러 비중이 작은지를 설명해줍니다. 연구자들은 핵 보유 정도와 미국에 얼마나 안보를 의존하는지에 따라 보유 외환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35% 정도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습니다.

외환 보유고도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정확히 외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각 국가의 보유 외환 가운데 각 통화의 비율에 관한 역사적인 데이터를 살펴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므로, 연구자들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890~1913년 19개 국가의 보유 외환 통화 구성을 분석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영국의 파운드, 프랑스의 프랑, 독일의 마르크, 미국의 달러, 그리고 네덜란드의 길더, 이렇게 다섯 가지 통화가 주축을 이루던 시기입니다. 여전히 금이 국제준비자산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외국 통화는 준비 자산으로서 그 비중이 빠르게 커지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전은 국가 간 동맹 관계가 빠르게 생겨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비밀로 3국동맹을 맺은 뒤 보유 외환에서 독일 마르크화의 비중을 크게 높였습니다. 또 러시아의 경우 1894년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이후 프랑의 비율을 외환 보유고에서 증가시켰습니다.

연구자들은 역사적 사례를 오늘날 상황에도 적용해 분석했습니다. 미국에 더 이상 안보를 의존해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국가들은 외환 보유고에서 현재 수준보다 달러의 비율을 30% 가까이 줄이고 이를 유로나 엔, 그리고 위안화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미국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미국이 부채의 대가로 다른 국가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연간 1,150억 달러 늘어나게 되리라 예측했습니다. (N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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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보유고에서 달러화가 차지하는 비중(x축)과 전체 교역에서 미국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y 축). 파란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미국에 안보를 더 의존하고 있는 국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