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버블을 넘어서 (3/7)
2018년 3월 28일  |  By:   |  IT, 경제  |  1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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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고고학 유물을 발굴할 때처럼 인터넷을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시스템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겁니다. 그 첫 번째 층은 1970~80년대에 개발돼 적어도 이용자 수에서는 1990년대 들어 임계점에 다다른 소프트웨어 프로토콜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프로토콜이란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통용되는 용어로 여러 대의 컴퓨터가 서로 연락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방식을 뜻합니다. 인터넷의 기본 데이터 흐름을 관장하는 프로토콜도 있고, 이메일을 보내는 프로토콜도 있으며, 웹페이지 주소를 규정하는 프로토콜도 있습니다.) 이 프로토콜 영역 위에 바로 웹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라는 2층이 있습니다. 웹 기반 서비스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트위터 등은 정보화시대의 거대권력으로 자리매김한 2층 출신입니다.

첫 번째 층을 “인터넷 1층”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인터넷 1층은 개방형 프로토콜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인터넷에 관한 규정을 만들고 관리, 운영하던 주체가 있다면 학계 연구진과 국제단체였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인터넷 자체를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죠. 실제로 이때 개방형으로 시작된 인터넷의 특성은 아직도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단지 사람들이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할 뿐이죠. 우리가 매일 주고받는 이메일은 개방형 프로토콜인 POP, SMTP, IMAP으로 운영됩니다.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프로토콜 HTTP도 개방형이고, 각 비트도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개방형 프로토콜 TCP/IP를 따라 오갑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규격이 어떻게 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방형 프로토콜이 작동하는지 하나도 모르더라도 이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나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웹페이지를 만들 때 HTTP를 소유한 어떤 기업에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고, SMTP를 이용해 이메일을 보낼 때 개인정보 일부를 광고주에 제공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터넷의 개방형 프로토콜은 누구나 참여해서 보태고 덜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키피디아와도 비슷합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것 가운데 가장 뜻깊고 영향력이 큰 체계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이런 프로토콜 덕분에 우리가 누린 혜택이 얼마나 많았는지, 하지만 동시에 그 혜택을 잘 인지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개방형 프로토콜을 이루는 핵심 기준 가운데 하나라도 개발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를 역으로 상상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리적 위치를 표시할 때 GPS라는 기준을 사용합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전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Global Positioning System) 정도가 되는 GPS는 원래 미군이 개발해 사용하던 것으로, 이 기술을 민간 분야에서 쓸 수 있게 허용한 건 레이건 행정부 때의 일입니다. 10여 년간 GPS를 가장 많이 사용한 건 주로 항공업계였습니다. 이어 개별 소비자들이 차량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GPS는 각 가정에 보급되었죠. 이제 우리는 지구를 돌고 있는 GPS 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스마트폰으로 받아 자연재해 시 대피 경로를 안내받기도 하고, 근처 맛집을 찾거나 포켓몬을 잡습니다.

그런데 만약 미군이 GPS를 민간 분야와 공공 영역에 공개, 양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1990년대 들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IT 업계가 소비자들의 욕구나 동향을 조사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지도 위에 자신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표시할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겠다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아마도 몇 년간 이 분야의 기준을 장악하고자 하는 기업들 사이에 대단히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겠죠. 기업들은 자체 GPS 위성을 띄우고 각자 고유한 프로토콜을 만들어 더 정확하고 우수한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을 겁니다.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죠. 승자가 된 기업이 자신이 만든 프로토콜에 따라 위치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서비스를 무척 효율적으로 운영했을 겁니다. 가상 시나리오 속의 이 기업을 지오북(GeoBook)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일단 지오북이 제공하는 위치정보 시스템은 소비자와 다른 회사들에도 편리한 만국 공통어가 됩니다. 수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지오북의 기준을 받아들이죠. 그러나 점차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독점적 공급자인 사기업은 지구상의 소비자 수십억 명의 위치 정보를 실시간으로 모두 주시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디에 갈 때마다 그 지역 맞춤형 광고를 내보내는 데 핵심적인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겁니다.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앱을 개발해 상용화하고 싶은 스타트업들은 지오북이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내 지오북이라는 빅브라더가 공동체는 물론 인류에 끼치는 폐해가 어마어마하다는 광범위한 비판이 일 겁니다.

이런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정말 간단합니다. 웹페이지나 이메일 주소, 도메인명과 마찬가지로 위치 정보는 개방형 프로토콜로 지정해둔 덕분에 문제 자체가 발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지오북과 같은 폐해를 실제로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GPS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되며 개방형 프로토콜 위에 이를 활용한 수많은 서비스가 개발돼 우리를 이롭게 했는지 사실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인터넷 1층에서는 전반적으로 이렇게 개방형, 분권형 웹이 번성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월드와이드웹이 점차 퍼지기 시작한 이래 우리가 새로 받아들인 개방형 프로토콜은 거의 없습니다. 1995년 이후 개발자, 전문가들이 고심하며 풀어야 했던 주요 문제들은 대개 개인정보, 커뮤니티, 그리고 결제 시스템에 관한 문제였는데, 이를 해결할 책임은 민간 부문의 사기업들이 졌습니다. 이는 결국, 2000년대 초반 마침내 우리가 여기서 “인터넷 2층”이라고 부를 새로운 층위의 강력한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

개방형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인터넷 1층을 개발한 사람들은 인류의 발전을 가져온 보석과도 같은 이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훗날 인터넷 문화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몇 가지 주요 요소를 개방형 프로토콜의 범주 안에 넣지 못했습니다. 이 가운데 사람의 신원을 네트워크상에서 보증하는 안전하고 공개적인 기준을 만들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픕니다. 페이지, 링크, 메시지 같은 정보들은 개별적으로 하나하나 확인이 되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정작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토콜을 거치지 않고도 인터넷을 쓸 수 있던 겁니다. 결국, 실제 이름과 위치 정보, 관심사, (특히 중요한 것으로 드러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실대로 적시하지 않고도 사람들은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했습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명확히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을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는 꽤 심각한 실수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의 신원 보증 문제는 이미 해결책이 나와 있습니다.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기본 골격 구조(base-layer infrastructure)”라고 부른 층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기본 골격 구조는 언어나 도로, 우편 등 물건을 사고팔고 시장에서 경쟁이 이뤄질 때 이를 지원하는 공공 부문의 사회간접자본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오프라인에서는 실제 여권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시장에서 사고팔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신원을 보증하는 문서를 발급할 수 있는 건 대개 국가나 정부 기관으로, 나라에서 발급한 문서가 확실하면 그 문서에 쓰여 있는 대로 그 사람에 관한 기록을 믿죠. 국가가 신원을 보증해주는 겁니다. 그런데 온라인상에서는 오프라인에서 국가나 정부 기관에 해당하는 권위체가 없는 사이 민간 기업들이 온라인상의 신원을 보증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신원을 증명하는 문제가 대단히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면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신원을 증명하는 데 필요한 공동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수확 체증”이라고 부르는 현상, 혹은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가 나타나 자체적으로 피드백이 강화되는 고리를 발견한 시장은 마이스페이스나 프렌드스터 같은 소셜미디어 스타트업을 통해 몇 차례 실험을 거쳐 마침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신원과 함께 자신의 친구, 지인들까지 보증하고 묶어내는 연결고리의 특허 표준을 만들어냅니다. 그 표준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페이스북이었습니다. 20억 명 넘는 사람이 페이스북을 합니다. 이는 페이스북이 닷컴 버블이 한창이던 1990년대 말 이 세상의 모든 인터넷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영향력도 크다는 뜻입니다. 네트워크 효과를 통한 이용자 증가를 발판 삼아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가치 있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창업한 지 14년 만에 이룩한 놀라운 성과입니다. 페이스북은 인터넷 1층과 2층의 경제적 특징을 구분하는 아주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개방형 웹이 표준이던 시대에 이메일이나 GPS 등을 규정하는 프로토콜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사기업은 지금껏 없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 20억 명의 사회적 신원을 증명하는 프로토콜과 데이터를 한 기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업을 사실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지분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창업주 마크 주커버그 한 사람입니다.

만약 철저히 중앙집권화된 대기업의 손에 데이터가 집중되는 현상을 팀 우가 말한 필연적 주기로 이해하고, 인터넷 초기 개방형 프로토콜이 꿈꾸던 이상주의를 말 그대로 철없던 시절에 꾸던 실현할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한다면 인터넷 1층의 원리와 이상을 폐기한 데 대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고,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길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아니면 에덴동산이든 무릉도원이든 그 이상향은 어차피 타락하고 강력한 권력의 손아귀에 들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둘 중 어느 경우라도 인터넷 1층 시절의 기본 구조를 복원하는 데 힘쓸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은 국가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어 반독점법을 비롯한 규제를 활용해 거대 기업을 길들이고 제약하는 것뿐입니다.

그 결과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오드리 로드가 남긴 명언 가운데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허물 수 없다.”는 말이 있죠. 어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겨난 문제를 그 기술로 해결하고 풀어내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기술 자체에 내재된 문제를 해결하고 뿌리 뽑으려면 새로운 도구를 써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소프트웨어와 서버의 영역 밖에 있는 힘을 빌려 와 이미 형성된 거대한 카르텔을 깨야 합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 해체하려는 주인의 집이 단층 건물이 아니라 복층 건물이라는 점입니다. 2층은 로드의 비유대로 주인의 도구로 허물 수 없지만, 1층을 떠받치는 개방형 프로토콜의 정신과 원칙은 좀 더 나은 건물을 짓는 데 가져다 쓸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는 사실입니다.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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